용산을 걷다

남영동, 그리고 용산의 숨은 이야기 찾기

by Wynn

화창한 가을날, 용산을 걸었다.

지난 토요일 오후 '강남의 탄생' 책의 저자인 한종수 작가님과 함께 20여 명의 참가자들이 용산의 역사 체험 걷기 행사를 진행했다. 남영역에서 용산역까지 이어지는 근현대 역사의 길을 걸으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우리 역사 속 숨은 이야기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첫출발은 용산의 남영역이었다.

서울역 아래, 숙명여대 인근의 남영역은 1호선 전철을 탈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는 곳이었다. 이곳이 조선 시대에 군대가 주둔하던 지역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남영(南營)이라는 지역명은 도성 남쪽에 있는 군부대가 머물던 군영을 의미했다. 남대문 밑에서 도성의 변란을 대비하여 군대를 주던 하는 곳. 그곳이 바로 남영이었다. 오래전부터 조선의 군대가 이곳에 주둔했지만, 조선의 국력이 약해지면서 이곳에는 외국 군대들이 점령을 하기 시작했다. 청나라부터 일본, 그리고 미국까지 130년 동안 다른 나라의 군대가 이 지역에 주둔했다.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완전히 이전하면서 이제야 우리가 그 자리를 되찾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용산 걷기 프로그램은 시작되었다.


남영역에서 용산 방향으로 3분여를 걸으니 검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햇빛을 가린 검은 7층짜리 건물.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그 장소.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고문으로 세상을 떠났던 그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영화 1987의 촬영 장소인 이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5층의 창문이었다. 고문실이 있었던 5층의 창은 빛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 정도로 상당히 좁았다. 고문받는 사람들이 투신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창이었다.

철길 바로 옆에 있기에 수없이 지나가는 전철 소리에 묻혀서 어떤 비명 소리도 밖에서 듣기 어려운 위치였다.

솔직히 내부를 보고 싶었지만 현재는 민주 인권기념관 건립을 위해 내부로의 출입이 어렵다고 했다.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경찰에 의해서 고문받았던 그곳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씁쓸한 우리의 과거 군사 독재 시절이 떠올랐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우리는 발길을 옮겼다.

낭영동 대공분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지나서 우리는 캠프 킴 (Camp Kim)이라는 과거 미 8군 공연장 앞을 지나갔다. 이곳 역시 지금은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지만, 그 입구는 아직 철거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캠프 킴은 주한미군의 연회장이 있는 지역으로, 미군을 위한 공연 활동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원로 배우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했고, 우리 연예 활동의 시작점이 된 것이었다. 작가님 말에 의하면 "한류의 원조"라는 공간. 확인은 되지 않지만 한 때는 이곳에서 발생하는 경제 규모가 서울의 경제 규모보다 컸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적으로 큰 영향 주었던 장소였지만, 이제는 그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역사 뒤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철거가 한창인 캠프 킴

그리고 약 10여분을 걸어서 전쟁기념관과 용산 대통령실을 지났다.

용산 전쟁기념관은 과거의 육군본부가 있던 곳이라고 했다. 1980년 12.12 쿠데타 당시 국군의 지휘부가 있던 곳이었지만, 그날의 흔적을 남기기 싫었던 신군부가 이곳을 전쟁 기념관으로 멋지게 탈바꿈해 놓았다고 했다. 이날은 사생대회가 있는지, 많은 학생들이 잔디 위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과거의 역사야 어떻든 간에 모두가 따뜻한 가을 햇살을 맞으며 행복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전쟁기념관 앞에는 대통령실이 위치해 있었다. 정치의 중심지라서 그럴까? 그 앞은 역시나 1인 시위하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님들, 그리고 역전의 용사님들로 어수선했다. 근처 대로에서는 집회가 있었고, 이 때문에 경찰의 기동대대가 겹겹이 대통령실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경찰 틈을 빠져나와서 삼각지와 삼각지 맨션을 둘러봤다. 과거 삼각지 교차로 이야기와 인근 맨션의 구원파 이야기를 듣고 용산 속에 숨겨진 일제 강점기 건물을 찾았다. 그리고 골목길을 돌고 돌아서 아직도 존재하는 구한말 일본 회사의 창고와 일반 민간 회사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일본 스타일 그대로 남아 있는 창고와 건물들이 아직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니 100년 전 그 시대가 여전히 우리 삶에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산 대통령실

용산의 대표 건축물인 화려한 아모레퍼시픽 건물 뒤편으로 가보니, 폐쇄된 미군 부대 입구가 있었다. 바로 이곳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었다. 용산기지 14번 게이트 인근. 한반도는 물론, 만주까지 점령하기 위한 일본군의 침략 기지가 있던 장소. 수많은 독립군과 한국사람들을 탄압하던 그 중심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바로 그 장소는 미국 7사단이 그대로 사용했고, 미군정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군과 중공군이 점령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폭격을 맞아서 사라진 바로 그곳이다. 이후에는 주한미군 용산기지의 일부로서 활용을 했고, 현재는 공사로 인해 일반인 출입이 어렵다고 한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수도의 중심부는 우리가 아닌 외국 군대의 주둔지였다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중국과 일본, 미국 그들의 땅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 사실을 제대로 몰랐던 나도 부끄러웠다.

용산역 쪽으로 내려오면서 큰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현재 공사를 준비하고 있는 그 장소는 바로 용산 참사가 있었던 곳이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재개발 보상 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에 화재로 모두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대참사였다. 13년이 지난 그곳.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이제는 고층 건물 공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개발이 무엇인지, 돈이 무엇인지. 또 한 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빌딩 속의 용산 참사 자리

다음 장소는 용산 역사박물관. 이곳은 일본이 만든 용산 철도 병원 건물이었다.

일제 강점기 철도 병원으로 활용하다가 중앙대학교 병원으로 사용되었고, 이제는 다시 역사박물관으로 바뀐 곳이었다. 박종철 사건 발생 시 남영동에서 가까운 이 병원에 연락이 왔고 당직을 하던 오연상 의사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가서 고문사의 진상이 조금씩 밝혀졌다고 한다. 이제는 역사를 담은 박물관으로 활용이 된다니 꼭 한 번 가족들과 들려보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용산 박물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우리는 마지막 장소인 용산역 광장으로 향했다.

용산역 광장에는 강제징용노동자 상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용산역으로 끌려왔고,

용산역에서 사할린과 쿠릴열도 등으로 기차를 타고 다시 끌려갔다. 그것을 추모하기 위해 2017년에 만든 동상이 강제징용노동자 상이었다. 동상 속에는 노동자의 한이 그대로 보였고, 일제가 놓은 철도의 비극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3시간 동안의 용산 역사 탐방은 끝을 맺었다.


나는 단순히 용산을 이렇게 생각했다.
집값이 비싼 부자 동네,

대통령실이 있는 대한민국의 권력 중심,

과거 미군의 기지가 있던 군사지역
그런 지역으로만 생각했던 용산.

사실 그곳은
우리의 슬픈 과거가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미래도 공존했다.


용산 땅을 거닐며

내가 몰랐던 역사를 다시금 되새겨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 역사를 잊고

새로운 미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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