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 만들어진 자리에서, 오늘을 걷다
북촌을 걷다보면 이 동네의 이름이 유난히 자주 입에 오릅니다.
'북촌에서 만나자', '북촌 곪고이 참 좋더라'.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진 고유명사처럼 말이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북촌은 왜 북촌일까?
정말로 '북촌에 있어서' 붙은 이름일까,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긴 이야기가 있는 걸까.
북촌마실을 운영하며 이 동네를 자주 걷다보니,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북촌'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지만, 사실 '북촌'은 한 번도 공식 행정 지명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에게 북촌은 주소가 아니라 방향이었습니다.
청계천과 종로를 기준으로 그 북쪽에 있는 마을들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북촌'이라고 불렀습니다. 남쪽은 '남촌'이었고요.
아주 일상적인 표현이었죠. '위쪽 동네', '아래쪽 동네' 처럼요. 그런데 이 말이 수백년을 지나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북촌이라고 불린 지역은 경복궁과 창덕궁 근처입니다.
궁궐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도 이곳은 자연스럽게 조정의 고위 관료와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동네가 되었죠.
그래서 북촌은 처음부터 장사를 위해 만들어진 곳도, 볼거리를 위해 조성된 공간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형성된 동네, 생활의 리듬이 먼저 자리 잡은 곳이었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을 들여다보면 '북촌'과 '남촌'이라는 구분은 단순한 지리 개념을 넘어 사회적 의미를 갖기도 했습니다.
유학자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종각 이북 지역 '북촌'에는 노론이 살았고 그 남쪽 지역 '남촌'은 소론과 남인 등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정치와 행정 중심에 가까운 이들은 북촌에, 상업 활동이 활발했던 계층은 남촌 일대에 더 많이 모여 살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도시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배치는 그 시절의 질서와 관계를 조용히 드러냅니다. 북촌 역시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온 동네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서울의 모습은 빠르게 변합니다.
남촌 일대에는 일본인 거주지가 형성되고, 북촌과 종로 일대에는 조선인의 삶이 이어지는 공간으로 남게 됩니다.
1930년대, 이 시기에 정세권이라는 인물이 북촌에 등장합니다. 그는 부동산 개발사 '건양사'를 세워 북촌 곳곳에 한옥 주택을 지었고, 조선인이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북촌에 한옥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단순히 '옛 동네여서'가 아니라, 지켜내려는 선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북촌은 과거의 골목을 그대로 품은 채, 지금의 시간 위에 서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생활 흔적과 일제강점기의 역사, 그리고 오늘의 일상이 하나의 골목 위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북촌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천히 걷다보면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지키려 애썼던 사람들의 시간이 공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북촌을 걷는 일은 관광이기보다 시간을 건너는 산책에 가깝습니다.
북촌마실은, 북천과 서촌을 가장 깊고 의미있게 경험하게 해주는 로컬 스토리 브랜드입니다.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문화 공간으로 북촌과 서촌을 공유하며,
궁궐, 한옥, 골목, 로컬 가게, 숨은 이야기까지 발굴하고 기록합니다.
북촌을 더 이상 익숙한 골목이 아닌 '발견'하고 '경험'하고 '소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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