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대명사[pronoun, 代名詞]: 사람이나 사물, 장소나 방향을 직접 가리키는 기능을 하는 품사.
영화 클래식은 로맨스 영화, 첫사랑 영화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봤단 뜻이겠지? (개봉 당시인 2003년 관객 수는 1.8만 명에 그쳤지만) 그런데 난 서른이 넘도록 클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이 없었고 대략적인 줄거리도 몰랐으며 주연이 손예진, 조승우, 조인성이라는 딱 그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는 장면이라고는 조인성과 손예진이 비 오는 날같이 한 재킷을 쓰고 달리는 장면, 거기에 유명한 OST인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노래가 등장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영화는 끝났지만' 글쓰기가 없었다면 여전히 클래식을 보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작품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영화를 봤다. 러닝타임은 무려 132분.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 시절 영화들은 보통 1시간 30분 내외가 일반적이었던 것 같은데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떤 장면들이 나올까 궁금했다. 엔딩크레딧까지 다 올라가고 내게 남은 건 있을법한 첫사랑의 아련함이 아니라 '이게 뭐지?' 하는 충격이었다.
메인 서사가 손예진과 조인성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조인성 캐릭터는 매력이 하나도 없었다. 손예진의 정략결혼 설정 자체도 상당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도 전혀 와닿지 않는다) 조승우와 손예진이 서로 좋아하게 되고 사귀는 것도 친구를 속이고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두 커플의 서사는 소나기+로미오와 줄리엣을 오마주 한 느낌이 들었다. 소나기를 잔뜩 맞고 수박을 먹던 장면은 보는 내가 다 추웠고, 보는 내내 '손예진 연기하느라 진짜 힘들었겠다. 우느라 에너지 소모 많이 됐겠다'뿐이었다.
의외의 발견이 앳된 얼굴의 이기우였다. 이기우 캐릭터 역시 자꾸만 픽픽 쓰러지길래 어떤 복선이 있나 싶었는데 나중에 결혼사진 보니까 그것도 아니었다. 중간에 가정 학대 및 자살 시도 장면은 엄청 충격적이었고, 당시 미디어 노출 기준의 의아함도 생겼다. 영화를 다 보고도 그 장면들이 제일 기억에 오래 남았다.
영화가 끝을 향해가니 뜬금없이 조성모의 아시나요 뮤직비디오 같은 장면이 나오더니 조승우가 전쟁통에 시력을 잃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손예진과 다시 만난다. (영화의 명장면으로 알고 있다) 시각장애인이 약속 장소에 지팡이나 안내견 없이 택시에 내려서 길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흙길을 밟고 올라와 카페에 앉는다는 것도 놀라웠다. 전날 와서 연습했다는 설정이 있다지만 글쎄. 두 사람이 마주 앉고 손예진이 조승우가 자길 보지 못한다는 장면에서도 정말 눈물 한 방울이 안 나왔다. (누가 우는 장면만 봐도 우는 사람이 나인데) 그러다 보니 이 영화의 어떤 감정선에 내가 몰입 할 수 있는지 어떤 부분이 아련한 건지 모르겠고, 사람들은 이 영화의 어떤 부분들이 좋은 건지 궁금해졌다.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이라서 그런 걸까?
그렇지만 나는 이 영화가 별로라고 요목조목 까려고 글을 쓴 게 아니다. 작품적인 분석과 평론은 그게 직업이신 분들이 충분히 잘 해주실테니까. 완결 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하고 싶어서다. 내가 창작 생활을 한 이후로 누군가의 창작물을 보고 무작정 비난은 하지 않으려고 자주 마음을 다잡는다. (책이든 영상이든 만들어보니까…. 나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닌 경우가 참 많았다) 어쨌든 지금은 슈퍼스타가 된 세 배우의 젊고 아름다운 시절을 두고두고 볼 수 있다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다. 순수하고 깨끗한 얼굴들, 그걸 바라보는 카메라. 그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한 느낌은 든다. 누구든 처음부터 잘 만드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그렇게 본인의 기록을 견디며 미래를 산다는 일이 꽤 힘겨운 일이니까. 생각과 감정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게 어떤 수단으로든 기록되고 박제된다는 일은,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평가받는다는 일은 어쩌면 그 속에서 수없이 나를 또 부정하고 부정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나의 과거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모자랐거나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하고, 더 과감하고 용감하게 그러면서 신중하게 창작 생활을 하고 싶다. 용기와 두려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앞으로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다 들 수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다 사랑받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잘하고 싶은 마음과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 놓는 일, 창작물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 일이 지금 내게 필요한 덕목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