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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고무 Nov 12. 2019

누구나 친구가 되는 ‘무국적 식탁’

국적도, 이름도 없는 레시피

유네는 가끔 지인들을 초대해 저녁을 만든다. 나는 그 저녁 식사를 일컬어 '무국적 식탁'이라고 말하는데, 이유는 정말 처음 보는 괴이한 형태의 '경계 없는' 저녁이기 때문이다.


먼저 그 식사에 초대되는 구성원들을 나는 잘 모른다. 유네의 지인들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고, 그 지인의 지인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오묘한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무국적 식탁에 앉아있는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자주 만나게 된 유네의 직장동료 행미와 대학원 동기 엘린은 이제 유네만큼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를 이어준 유네의 요리 메뉴들 또한 국적도, 이름도 없다. 유네의 요리 방식은 대충 이렇다.

"우리 자몽을 오븐에 구워볼까?"

"이 크림수프에 코코넛 우유 한번 넣어볼까?"

"엘린이 아프리카에서 사 온 향신료를 어디에 넣어볼까?"

"이거 남은 반죽인데 이걸로 난을 만들어볼까?"


이 괴랄한 레시피들을 나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맛들은 그녀가 다녀온 여행지들의 음식이 한데 뒤섞인 듯 복합적이어서 이게 '어느 나라의 음식'인지 물을 수 없다. 그런데 또 어딘가 묘하게 노스텔지어적인 구석이 있어서 토속적 입맛의 내가 이 경계 없는 탈국적의 음식들을 자연스럽게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패한 적도 있다. 언젠가 유네는 갑자기 홍콩에서 먹었던 딤섬이 너무 먹고 싶다며 딤섬 요리를 시도했다. 그러나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구멍이 송송 뚫린 허술한 레시피들로 섬세한 딤섬 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유네가 중국집과 중국 재료 슈퍼에 가서 그들의 향신료와 딤섬 피 비율을 물어 물어 겨우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딤섬 작업은 실패했다. (물론 그녀가 이 슬픈 딤섬들을 가지고서 다음날 아침 완자탕을 만들어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했지만)

유네표 샐러리 만두. 샐러리와 다진 고기, 고수, 산초분을 넣어 만들었다.


지금까지 유네의 집에서 우리가 함께 만든 요리는 꽤 많다. 태국에서 사 온 재료로 만든 그린 커리, 자몽 구운 크림 파스타, 바질과 남은 재료로 볶은 버섯요리, 망한 딤섬을 새롭게 업싸이클링한 완자탕, 중식 전문점 뺨치는 마라탕과 향라육슬. 여기에 그녀가 해장용으로 차려준 아침 밥상과 디저트 메뉴까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유네가 만든 이러한 요리들 중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메뉴를 하나만 꼽자면 '샐러리 만두'다. 나는 고기만두, 갈비 만두는 들어봤어도 샐러리 만두는 처음 들어봤다. 유네가 처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유네는 샐러리와 만두를 제일 좋아하는 행미를 위해서 자기주장 강한 두 개의 요리(재료)를 하나로 결합했다.


먼저 샐러리를 잘게 다져서 다진 돼지고기와 1:1 비율로 합친다. 그리고 여기에 산초분을 살짝 뿌린다. 후추도 넣고, 소금 간도 하고. 고수도 아낌없이 찢어 넣는다. 고기 대신 새우를 다져서 넣기도 한다. 새우는 손이 많이 가지만, 그 또한 맛있다.


저 야무진 유네의 손을 보라(왼쪽), 명절이 따로 없는 만두 빚는 집(오른쪽)


우리는 만두피도 직접 만든다. 시장에서 사 온 찹쌀가루를 잘 반죽한 뒤, 홍두깨로 얇게 핀 다음 각자 원하는 모양의 아트워크-만두 하나씩 만들어 찜기에 넣는다. 만두 찜기를 열면 가끔 가자미도 등장하고, 토끼도 튀어나온다. 꽤 창의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도 결론은 "샐러리 만두는 맛있다"이다. 샐러리의 향과 돼지고기의 조합은 기분 좋게 삼삼하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맛을 조화롭게 하는 산초분의 역할 또한 결정적이다. 샐러리 때문에 아삭 거리는 만두 식감도 새로운 재미이다.


이렇게 보면 유네는 엄청난 요리 노동가처럼 보이겠지만, 그녀가 이렇게 노동하는 이유는 그녀가 동시에 엄청난 애주가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한상 차려놓으면 우리는 그녀에게 술을 대접한다. 나는 이 무국적 식탁에서 다종다양한 취향을 가진 파티원들이 사 온 여러 가지의 주종을 맛보았다. 람빅, 괴즈, 내추럴 와인 등 이름만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이 술들을 나는 여기서 처음 경험했다.


12월 첫째 주 토요일, 우리는 또 유네네 집에 모여 샐러리 만두를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날짜가 잡히면 유네는 만두와 어울릴 새로운 메뉴를, 그리고 우리는 술을 고민한다. 향기가 좋고 재미있는 술을 골라야 한다. 그것이 유네의 무국적 식탁에 초대받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침 식사에도 우리는 반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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