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by 희연동나비란



아빠의 다이어리를 훔쳐본 적이 있다. 지친 마음에 계획보다 일찍 본가로 내려간 명절 전날, 집은 내가 올 줄 몰랐다는 듯 무방비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익숙한 듯 거실 소파에 몸을 던졌고, 등에선 돌 같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검은색 가죽 양장 다이어리였다. 화려한 꽃과 자연의 싱그러운 색을 좋아하는 엄마의 물건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단숨에 아빠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가족이라도 사생활은 함부로 훔쳐보면 안 된다는 내 안의 규칙과 그럼에도 열어보고 싶은 충동 속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양장 표지를 넘겼다.

다이어리에는 업무 일정이나 간단한 생각들이 적혀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용어가 많았다. 엔지니어로 30년간 살아온 아빠가 쓰는 단어는 문과로 살아온 나의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흥미가 떨어지려던 순간, 한 페이지 가득 다이어리 속 경계를 넘어가며 대자보처럼 빽빽하게 쓴 페이지가 보였다. 자신의 팀원이 잘 따라오지 못하는 속상함과 그럼에도 책임져 실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 상사의 업무 압박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 노후에 대한 걱정과 건강검진 결과에 대한 후회까지. 평소 무뚝뚝하고 말이 없어 무던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아빠는, 그 종이에 감정을 토해 놓고 있었다. 나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다이어리를 닫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현장체험학습에서 본 글이 잊히지 않는다. 광주로 간 역사 기행이었다. 친구들과 신나게 점심을 먹고 전남도청 근처에 위치한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 갔다. 민주화 운동 현장 모습과 공수부대의 잔혹한 진압 사진을 봐도 큰 충격이나 감흥은 없었다. 그동안 교과서나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봐왔던 것들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에 간 친구들을 기다리며 전시관을 꼼꼼하게 살펴보다 구석쯤에 놓인 한 편지를 읽게 됐다.

전남도청으로 나가겠다는 17세 학생이 어머님께 전하는 편지였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순 없다며, 그런데 무섭기도 하다며, 그래도 나는 나가야겠다고, 어머니께서 나를 한 번 믿어달라고. 그 소년은 누가 봐도 어린 글씨체로 편지지에 빽빽하게 자신의 감정과 각오를 적어놨다. 남은 체험학습 일정 동안 그 편지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30여 년 전 나랑 동갑이었다는 동질감과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결연했다는 이질감이 편지에 더욱 몰입시켰으리라. 그러나 그 편지가 지금까지도 내 기억 한 편에 이토록 크게 자리 잡게 된 것은 글에 담아낸 솔직하고도 진실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이 전달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것을 드러내고, 그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행위이다. 아빠가 다이어리에 토해낸 감정이 그렇듯, 당시 광주 학생이 편지에 담아낸 두려움과 결연함이 그렇듯, 글을 쓰는 행위는 불확실한 이 세상 속에서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것들을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고, 풀어냄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소중한 기술일 테다.

작가의 이전글진진의 선택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