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전염의 시대가 올 줄 몰랐던 2019년 시월, 엄마와 나는 제주로 향했다. 돌하르방과 야자수, 한라봉 초콜릿, 주차장과 콘도의 셔틀런만 기억에 남았던 수학여행 이후 처음으로 간 제주였다. 커다란 캐리어 두 개와 등에 맨 백팩, 목에 건 카메라까지... 설렘을 잔뜩 안은 두 명의 여행자는 느즈막한 오후 제주 공항을 벗어나 101번 버스에 올랐다. 육지와 다를 바 없는 제주시의 북적한 간판을 속독하고 한갓진 도로를 수십여 분 내달리고 나서야 목적지인 월정리에 내려졌다. 파란 트럭과 함께 마중을 나오신 노부부의 안내를 따라 한 달간 우리의 집이 되어줄 숙소에 짐을 끌렀다. 서둘러 바다로 나갔지만, 해가 진 월정리의 첫인상은 얼굴을 모르고 신방에 든 신랑 신부처럼 서먹했다. 여덟 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편의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음식점과 상점이 문을 닫은 뒤였고, 검게 잠긴 바다만이 철썩임으로 제 본분을 지키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여섯 시 반, 평소라면 늦잠으로 흘려보낼 시간이지만 제주의 첫 일출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전날 어둠이 가리고 있던 월정리의 골목과 하늘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발갛게 물든 해가 막 떠오르려던 참이었다. 요란하지만 전혀 춥지 않은 바람과 개운한 공기가 가장 먼저 뺨에 닿았다. 파스텔톤 하늘에 얼기설기 걸친 전봇대 전선은 아직 음표를 그려 넣지 않은 오선지 같았다. 집으로부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제주 동쪽의 바다는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작심하듯 떠오르는 태양과 근면하게 돌아가는 풍력기, 아침 조회를 위해 몰려드는 새들, 고요하지만 부지런하게 맞는 하루의 시작. 지금껏 봐온 삼면의 바다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담겼다.
빠르고 더디게 흘러간 제주살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바다도, 회도, 오름도, 흑돼지도 아니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때때로 발견이라 부를 수 있는 골목들이었다.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월정리, 김녕리, 함덕리, 조천리, 신촌, 세화리···". 렌터카 없이 버스로만 정류장을 경유하는 뚜벅이에게 골목은 그 자체로 여행이었다. 담쟁이가 감싸 오른 전봇대와 오래된 나무, 투박하고 정겨운 돌담, 우연히 피어난 들꽃, 소유와 거주의 유혹을 부르는 빈 집터, 그리고 약동하는 이방인의 눈빛에 포착된 생활의 흔적과 빨래 나빌레라······. 파랗고 빨갛고 초록한 정수리(지붕)를 스스럼없이 내어 보이는 덕에 한 뼘 더 자란 기분이었다. 올려야 하고 올려다봐야 할 것투성이인 도시에서는 찾기 힘든 삶의 높이였다.
지긋지긋하게 익숙한 일상을 제 발로 뛰쳐나온 새로운 삶의 파편. 공원의 나무 한 그루까지도 철저한 계획 아래 심어진 신도시에 살던 나는 하루아침에 낮고 생동한 제주의 한 마을에 내려앉았다. 여유와 영감을 찾고 싶었던 이 무지한 초행자를 제주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안아주었다. 그렇게 한 달을 살았다. SNS 속 맛집이 아닌 작은 마트와 시장에서, 감성을 강요하는 포토존이 아닌 이름 모를 포구(浦口)에서, 투명 카약 대신 투명한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속도대로 여정을 그려 넣었다. 제주의 비와 구름, 볕과 별을 보았다. 그리고 하늘에 휘감긴 전봇대의 오선은 더 이상 비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