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우도도, 우리도.
하늘연달 제주 열여드레
제주의 시월을 이틀 남겨두고 있었다. 이방인이었던 엄마와 나는 어느덧 한 달 중 반을 이곳에서 살았다. 첫날 낱장으로 찢어온 스케치북 도화지에 엄마가 직접 그려 넣은 손그림 달력은 야속하고도 옹글게 채워졌다. 일과 여행, 그리고 생활 사이를 오가던 2주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방통대에 재학하며 일을 했지만 대학생으로도, 회사원으로도 나를 규정할 수 없었던 것처럼 제주에서도 나를 조각내야 했다. 엉덩이가 뽀개질 듯하고 발이 저린 채로 작은 테이블에 앉아 13인치 노트북을 타닥거리는 동안, 펜화로 여행을 그리는 엄마가 마주 앉아 있다는 건 참 다행이었다.
내일은 아빠가 서울에서 제주로 장거리 퇴근을 할 예정이었다. 가장을 맞이하기 전날 우리 모녀는 둘만의 섬, 우도로 향했다. 이곳에서만큼은 여행의 기분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 연차도 사용했다. "오늘만큼은 나를 찾지 마세요."
우리를 마중 나온 월정리의 아침제주의 하늘이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사실 뭐든 상관없었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청청하면 그런대로 바다에서, 오름에서, 카페에서.. 그도 아니면 돌담 옆에서 우리 모녀는 노닐었다. 우도를 갈 때만큼은 맑기를 바랐던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하늘은 파랗고 티 없이 밝았다. 기분 좋은 바람은 목동이 되어 흰 구름을 몰고 있었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해를 넘듯 월정리 정류장으로 달려오는 201번에 올랐다. 캐리어와 함께 혼자인 여자와 등산복을 입은 두 명의 아주머니, 1년은 족히 된 듯한 커플이 함께 성산항 입구에서 내렸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단 하나의 목적지, 우도 선착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지자 덩달아 급한 마음이 들었다. 뛰는 듯 걷는 듯 처음 닿은 동네를 걸으면서도 '회센타'라는 단어는 놓치지 않았다. 돌아오는 저녁은 ‘회’라는 암묵적인 동의와 함께.
4년 전 한강 크루즈 이후로 처음 타는 배였다. 대기 줄에 합류해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거대한 여객선 두 척이 바다로 나갔고, 갈매기들은 이 배를 따라갔다가 저 배를 따라오곤 했다. 드디어 우리가 탈 '우도랜드 1호'가 왔다. 소득이 없던 엿장수가 탑승 직전 한 팀에게 엿을 건네고 있었다. 거대한 굉음을 내며 버티고 선 배 위에 올라 우리가 서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집에서부터 먼 제주로 떠나온 우리 모녀는 우도로 새로운 일탈에 나섰다.
호객행위에 머뭇거리고 싶지 않아 전날 전기차를 미리 예약했더니 업체에서 마중을 나왔다. 우도의 항구는 천진항, 하우목동항 두 곳인데 공사로 인해 천진항이 일시 폐쇄된 상태라고 했다. 하필(?) 천진항 쪽 업체를 예약한 우린 덕분에 봉고차로 우도 골목길 드라이브도 잠시 즐길 수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섬뜩한 각서를 쓰고 헬멧을 골랐다. 감자를 고르듯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라 하나 노랑 하나를 집어 머리에 이었다. 수년 전 딱 한 번 타본 ATV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달랐다. 전기차 업체 직원은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쉽게 탈 수 있다고 했지만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가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한동안 헤매고 나니 동네 슈퍼 갈 정도의 실력은 얼추 된 것 같았다. 시리도록 맑은 바다와 마주한 상점들. 우린 그 사이를 스릴 있게 달렸다.
우도에서 먹은 첫 끼니는 생뚱맞게도 김밥과 순두부찌개였다. 전기차 업체에서 준 약도가 보물지도라도 되는 듯 들여다봤지만, 소문이 무성한 수제버거나 짬뽕은 왠지 끌리지 않았다. 마음 가는 대로 향한 곳은 해안길472의 우도돌담집이었다. 모진 바람을 견뎌낸 돌담과 장독대, 들꽃이 참 예쁜 곳이었다. 아기자기한 내부 창가에 나란히 앉은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고, 모녀의 소근소근한 수다와 함께 냄비 부딪히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만 원 이하 음료수 한 캔, 만 원 이상 음료수 두 캔 서비스’라는 문구에 당당히 손을 들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주인아주머니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콜라·사이다 한 캔씩을 건네받은 뒤에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안내 팻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 순번을 매겨놓은 것처럼 멀찍이 떨어진 숫자 탓에 ‘1만 원 이하 주문시 콜라 한 캔 / 2만 원 이상 주문시 콜라 두 캔’임을 못 알아본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생떼 손님이 된 듯 민망했던 마음은 막바지로 끓고 있는 순두부찌개의 등장과 동시에 녹아내렸다. 천국에서도 맛볼 수 있는 두 메뉴 모두 군더더기 없이 맛있었다.
우도돌담집허기를 급속 충전한 뒤 다시 달렸다. 끊긴 계단이 마치 제단과도 같아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봉수대(망루)였다. 아무렇게나 생긴 돌바닥에 어렵사리 주차를 마치고 올라갔다. 눈앞에 펼쳐진 우도 바다는 초입보다 짙고 씩씩했다. 내게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우도 바다를 햇볕과 바람에 실눈을 뜨면서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엄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 끝엔 대여섯 사람이 모여 있었다. 단출한 짐과 함께 뿔소라를 파는 할머니였다. 호기심에 달려갔지만 이미 파장, 우리 바로 앞사람을 끝으로 솔드아웃이었다. 자연인 혹은 야인처럼 바위에 걸터앉아 초장에 뿔소라를 찍어먹는 일은 아쉽지만 상상으로 미루어야 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뿔소라를 손질하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콸콸콸 물이 쏟아지는 빨간 대야 안에 문어, 소라, 전복, 해삼이 각방을 쓰며 우릴 유혹하고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홀로 뿔소라 한 접시에 호가든을 마시는 아저씨였다. 홈쇼핑이라면 없던 구매욕도 생기게 할 장면이었다. 노상에 실패했던 우리는 아쉬운 대로 이곳에서 뿔소라를 경험하기로 했다.
휴게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검은색 쟁반에 뿔소라 한 접시, 젓가락 두 쌍, 초장이 나왔다. 뿔소라 껍데기 두 조각은 장식이었다. 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도는 뿔소라를 씹자 토도독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고소하면서도 싱싱한 바다 내음이 입 안으로 딸려 들어왔다. 곧바로 ‘한라산’에 오르고 싶었지만 전기차를 두고 음주는 엄금 사항. 애주가의 미덕을 발휘해 엄마에게만 술을 권했다. 함께하는 자리가 아니면 굳이 마시지 않는 것 또한 애주가의 미덕임을 아는 엄마는 나와의 의리를 지키겠다고 했다. 바람 한 입에 뿔소라 한 점, 뿔소라 한 입에 바다 한 번 바라보며 연신 감탄했다. "제주는 뿔소라네"
다음 행선지는 바다 바로 앞에 자리한 카페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엄마의 제안으로) 땅콩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부드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그 위로 뿌려진 고소한 땅콩가루의 궁합은 최고였다. 견과류를 싫어해 '땅콩 아이스크림' 현수막을 본 체 만 체 했던 내가 새로운 반전을 맞는 순간이었다. 시선은 바다를, 손은 바닷바람에 금세 미지근해진 아메리카노를 붙잡고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온 식구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 이전의 여행들, 캠핑 계획, 스카이댄스처럼 나부끼는 나의 진로... 늘 반복되는 일상의 이야기지만 새로운 즐거움을 낳는 엄마와의 대화는 계속해서 흘러가고 흘러오는 바다와 닮아 있다.
쌍둥이 전기차들 사이에서 우리의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어느덧 떠날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기프트숍, 포토존을 들러 기분을 냈고 주민이 거주하는 구역에서 길을 헤매기도 했다. 전기차 키를 반납하고 헬멧을 벗는 순간, 무사 귀환의 안도감에 웃음이 났다. 다시 봉고차에 올라 터덜터덜 하우목동항으로 향했다. 진동과 거품이 떠들썩할수록 시야에서 멀어지는 우도를 바라보자니 떼놓고 이별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우도의 하루는 순간 고요해진 바람처럼 잦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