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자본주의> 리뷰
[프롤로그 :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용어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한 바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후대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자본주의를 “사적소유와 노동력의 상품화에 기초해서 자본의 이윤 추구를 본질적 동기로 하여 작동하는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으로 이해한다.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은연중에 마르크스주의의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로는 “시장경제”가 있다.
신고전파의 이론으로 경제학을 처음 접했지만, 가치 창출의 원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분석에 깊은 감명을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자본가에 종속된 노동자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사측에서 자본가에게 봉사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갖고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그럼에도 시민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사회주의 보다, 개인의 자유로운 이기심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가 보다 더 개연성 있다고 생각해 신뢰한다. 때문에 자본주의 대신 시장경제로 현대 경제체제를 지칭하기로 한다.
[Part 1] ‘빚’이 있어야 돌아가는 사회가 풍요롭다
소비 생활을 함에 있어서, 특정 시기에 필요한 지출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비에 충당할만한 소득이 당장은 없을 때가 많다. 생애소득의 관점에서 보면 훗날 소득과 저축으로 충분히 지불능력이 있음에도, 당장의 소비를 포기해야만 할까. ‘빚’, 대출은 이와 같은 소득과 소비의 시점 불일치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시장경제의 법칙에 따라 이자라는 대가를 응당 지불해야 한다.
은행에서는 대출을 여신(與信), 예금을 수신(受信)이라고도 표현한다. 말 그대로 은행거래는 신용을 주고받는 거래 행위다. 은행은 자본가에게 신용을 주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가는 생산활동에 자본을 투입한다. 돈과 자본은 생산요소로서 투입되는지 여부가 그 차이를 가른다. 자본 투입으로 생산이 증대되면, 소비자는 더 많은 소비와 선택 가능성이라는 풍요를 누릴 수 있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해서는 거래수단으로서 지불할 더 많은 화폐가 필요하기도 하다. 화폐의 공급이 늘어나면,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므로 같은 상품을 살 때 더 많은 화폐를 지불해야 한다. 때문에 시장경제에서 물가 상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과 다르다. 경제 전반의 물가수준의 상승이 장기간 지속되어야 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 시장경제 국가라면, 정부와 금융당국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정부는 지출을 줄이고,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국채를 매각하는 등 공개시장조작으로 시장에 유통되는 화폐를 흡수한다. 그렇게 물가안정 목표에 수렴하도록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시행된다. 단기적인 물가 상승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그럼에도 우리는 물가상승에 예민하다. 기본적으로는 이득(물가 하락 등)보다 손실(물가 상승 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발생하는 탓도 크다. 하지만 물가상승 그 자체가 고통스럽고, 물가상승을 야기하는 빚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한편 EBS <자본주의> 제작팀의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대한 시각은 굉장히 공격적이다. 연준이 민간기관이라며, 마치 임의로 기준금리를 설정하고 화폐를 발행할 뿐만 아니라 정부에게 빚을 지우는 것처럼 서술한 부분은 상당한 곡해다. 민간영역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 문화적 배경의 특수성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국은행도 연준처럼 화폐를 발행할 때 국채를 매입한다. 정부로부터 이자를 받고, 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세도 낸다. 세후 이윤의 대부분은 국고로 귀속된다. 연준도 마찬가지다.
중국 위안화의 미국 달러 대체 가능성은 EBS <자본주의> 방영 후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요원하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2022년 1월 기준 국제 결제 통화에서의 위안화 비중은 3.20%에 그쳤다. 달러화(39.90%)와 유로화(36.56%), 파운드화(6.30%)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미국 달러화만큼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확보한 미래는 여전히 아득하다.
[Part 2] 금융시장은 도박판이 아니다
EBS <자본주의> 제작팀은 파생상품이 “투자를 가장한 도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시각에서는 모든 금융상품이 도박이다. 주가가 올라야 수익이 발생하는 주식은 내가 선택한 말의 순위가 높아야 배당을 받는 경마와 비슷하다. 자금을 예치하면 이자를 얻는 예금 마저도 화투판에서 광 파는 행위와 유사하다. 보험 역시 특정 이벤트(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배당을 받는 사설 스포츠토토와 다를 것 없는 구조다.
유통시장에서의 주식 거래는 언제든 금융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며, 발행시장에서의 리스크를 감소시킨다. 은행 예금은 생산활동에 잉여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 보험 역시 개인에게 갑자기 닥치면 큰 돈이 들어 위험한 보험사고로부터 가입자를 보호한다. 대수의 법칙에 따라, 보험사는 언제든 보험금을 지급할 여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생상품 역시 도박이 아니다. 파생상품은 어느 일방의 리스크를 상대방에게 이전시키는 기능을 한다. 파생상품을 이용해서 헷지를 하면, 거래 기간 내내 주가 및 환율 등을 원하는 수준에 고정시킬 수 있다. 물론 “공짜 점심은 없다.” 리스크 이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파생상품에는 가격 발견 기능이 있다. 기초자산(주식, 금, 환율, 돼지고기 등)이 미래에 어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시장 참여자의 기대가 집약되어, 파생상품의 가격으로 나타난다.
다만 문제는 금융시장 참여자 간에 갖고 있는 정보가 비대칭하다는 점, 그리고 금융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인센티브 구조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또한 파생상품의 파생상품이 꼬리를 물 때, 그 신용등급을 제대로 부여하지 못한 신용평가 기법의 취약점이 노출됐다는 점이다. 이는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지, 금융시장을 싸잡아 도매급으로 도박판에 비유할 일은 아니다.
금융지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말에는 십분 공감한다. 미국 연준을 1987년부터 18년 간 이끌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금융맹이 문맹 보다 더 무섭다. 글을 모르는 것은 사는 데 다소 불편하지만, 금융을 모르는 것은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과장 섞인 말이지만, 금융이 우리 삶 지근거리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새삼 환기시켜준다.
[Part 3] 필요와 욕망은 구분 가능한가
욕망은 줄이되, 필요는 충족되어야 소비에서 충분한 만족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필요와 욕망을 무 가르듯 구분해내는 것이 가능할까. 소비자 입장에서, 욕망은 자기 합리화 과정을 거쳐 필요로 둔갑한다. 필요하지 않은데 소비하는 것 보다, 필요한줄 알았으나 나중에서야 소유욕 때문에 과소비 했음을 인지하게 되는 게 내 경우에는 보통이다.
생산자와 판매자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일이 곧 필요를 발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2010년 이전만해도 상상의 영역이었을 뿐, 딱히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스마트폰도 이제는 필수재가 됐다. TV·냉장고·세탁기를 전통적으로 3대 가전이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시쳇말로 3대 이모님이라며 건조기·식기세척기·로봇청소기로까지 필수 가전이 확장됐다.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고 필요를 발굴하는 일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혁신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에 욕망, 탐욕 같은 도덕의 언어를 들여오는 건 너무 큰 이질감을 주는 듯하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시장경제의 논리 안에서도 건전한 경제 생활에 대한 가이드를 줄 수 있다. 소득 수준에서 가능한 소비를 해야 한다든지, 현재소득과 미래소득을 같이 고려하여 적정한 수준의 부채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등. 시장경제의 언어를 사용하고, 그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금융지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Part 4-5] 지속 가능한 시장경제를 위한 아이디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는 시장경제의 냉정한 결과물 같지만, 시장경제 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기능한다. 시장경제의 풍요는 다수의 개인이 자유롭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서 온다. 그런데 시장에서 밀려난 이들이 많아지면 시장의 활력이 떨어지고, 풍요를 잃게 된다. 경기의 쇠퇴로부터 부자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유효 수요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케인즈식 처방에 따른 사회주의적 정책도 충분히 시장경제에 적용 가능하다. 최근에는 기본소득론이 눈에 띄는 주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기지사 시절 기본소득 정책들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본래 기본소득은 나이나 소득 등의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이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정책이다. 최소한의 소득이기 때문에 근로의욕을 꺾지 않을뿐더러, 창의성 발휘의 배경이 되는 안정감을 제공해줄 수 있다. 보수 진영으로부터 사회주의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을 받지만, 기본소득은 오히려 굉장히 자유주의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부자에게도, 가난한 이에게도 동등하게 지급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중복 지출에 해당하는 사회보험을 폐지시킨다. 정부는 최소한의 생활 수준 유지를 위한 소득을 제공할 뿐, 그 소득을 어디에 소비하든 관여하지 않는다.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할 경우, 의료비로만 지출할 수 있는 사회보험과는 상반된다.
과세 강화 역시 여전히 유효한 대안이다. 특히 경쟁을 제한하거나, 생산활동에 직접 기여한 바 없이 발생하는 소득이 그 대상이다. 상속 및 증여에 따른 이전소득, 매수-매도 시점 간 시세 차이에 의한 자본이득이 그 사례일 것이다. 과세와 정부 규제가 시장경제에 해악인 것만은 아니다. 시장에서의 경쟁을 촉진하고, 건전한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하는 규제라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