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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나 Apr 18. 2024

스스로를 가두었던 한계

- 어떤 나이로 살아갈 것인가?

딸 : “생각과는 다르게 엄마에게 영업력이 있나 봐”

나 :  “ 그런가 봐, 나도 모르던 새로운 모습이야.”  

며칠 전 딸이랑 나누었던 대화이다.



   

 결혼 후 거의 20년을 주부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누군가에게 맞추어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 욕심을 부리는 것은 모성이 없는 엄마라도 정의했고, 그렇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으로 삶의 끝까지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나에게 능동적이고 사업가적이고, 그런 대표로서의 기질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상상해 보지 않았다.

사업을 하고 자기 일을 하는 여자들을 보면서, 부럽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가 결혼하면 다시 손주를 키워주는 삶을 살 거라고 내 삶을 단정 지었다.     

그런 삶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자의든 타의든 다시 돈을 벌어야 했고,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는, 삶의 바닥이라는 인식의 지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고,

 공인노무사가 되었다.     


 공인노무사가 되어서도, 노무사로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을 거쳐, 나는 개업노무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 채용법인 대표님께서 여자 노무사의 영업적 한계와, 영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이 또한 가스라이팅이다. 내 삶은 가스라이팅의 연속이었다.) 대해 자주 말했었다.


그래서 더욱더 과연 내가 영업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럽고 확신할 수 없었다.     

영업을 할 수 있어야지, 노무사로서 자문도 하고 사건도 할 텐데

과연 내가 영업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불신의 시간을 지나서 나는 요즘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스스로 한계 지었던 것보다 나는 영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한계 지었던 것보다 나는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한계 지었던 것보다 나는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새로운 나를 40대 후반에 발견했다.    

 



 내 유튜브나, 브런치 글을 읽고 댓글로 40대에 노무사가 합격한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 일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답글을 달아야 하나 망설이게 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객관적인 나이라는 한계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는 것이다.


     

나의 20대 30대는 아이들을 키우는데 전념한 시기였다.


나의 40대는 사회적 나이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다.

20대에 겪었어야 했을 사회적 경험을 40대에 했다.     

그래서 나는 40대를 30대처럼 살았다.


지금 나는 49세이지만,

30대의 체력과 지구력과 무엇보다 열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과거의 나는 누구보다 스스로를 나이에 가두었다.

20대 동료노무사님이 나를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내가 꼰대가 되면 어떡하지?

그런 의심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다짐한다.     

나는 물리적 나이에 상관없이 나의 나이로 살아갈 것이다.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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