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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안 Dec 12. 2021

[D-312] 감히 넘볼 수 없겠다는 위압감이 들어도

지난주는 통번역 대학원 준비로 문자 그대로 나의 멘탈이 붕괴한 주였다. 


처음 단계는 "무서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부정"이었다.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하는 소년이 잘못을 저지르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대학원에 간다는 말과 잊을 만하면 뉴스에서 들려오는 대학원 지도교수님의 갑질 소식은 나에게 대학원은 가면 안 되는 곳으로 자리 잡았었다.


하지만 나는 언어로 끝을 보고 싶었고, 

수많은 외국어 중에서도 중국어가 좋았고, 

자연스럽게 중국어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었고,

중국어를 할 때 비로소 진짜 내가 되는 느낌이 좋았다. 


10월쯤 중국어 출판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다짐한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좋아하고 그나마 재능이 있는 외국어로 밥 벌어 살기로 결심했으니 이 길 안에서 내가 싫어하는 걸 마주하더라도 싫다고 회피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넘으려고 노력하고 안고 가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통번역 대학원이 첫 번째로 중국어 번역가 길에서 마주친 엄청나게 크고, 높고, 가시가 콕콕 박힌 장애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장애물을 넘어보기로 했다. 시도하는 과정에서 가시에 찔려 피가 나고, 쓸리고, 멍이 들어 결국 넘지 못하더라고 무조건 해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두 번째 단계는 "해탈한 척하기"였다.

해탈한 체라고 쓴 이유는 진정한 해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고 입시학원을 알아봤다. 신속하게 청강 신청을 하고 그다음 날 바로 오전에 A학원, 오후에 B학원으로 청강을 하러 갔다. 그리고 다시 무너졌다

중국어 기사문을 한국어로 시역(눈으로 읽으며 번역)하는 건 나름 괜찮았다. 문제는 한 - 중이었다. 선생님이 한국어 기사를 읽어주면 중국어로 통역하는 시간이었는데 아무런 말도, 한자도 쓰지 못하는 내가 너무 초라했다. 솔직히 이게 당연하긴 하다 어제까지 초등학생 1학년이 읽는 동화책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신세계에서 매년 20억을 투자해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날 고려대에서 강연하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 방법은~~ 

을 중국어로 말해보라고 하면 당연히,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은 너무나도 술술 잘 말해서 그 사람들과 나의 실력이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서럽고 속상해 다시 멘탈이 무너졌다. 


세 번째 단계는 "두려움과 위압감에 짓눌리다"였다.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애써 기워서 두 번째 학원으로 청강을 갔다. 이게 웬걸? 수업 오픈 채팅방 참여자 명단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기억을 쫓아보니 함께 계절학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던 한 기수 위의 같은 과 학생이었다. (나이는 같다.) 반가운 마음은 수업 시작과 동시에 사라졌다. 같이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이미 22학년도 통번역 대학원 시험에 합격해 학원에서 강사가 된 상태였다. 물론 그 친구가 노력했던 시간에 나도 다른 일에 노력을 쏟아 붙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나이에 선생님-학생으로 만나니 기분이 참 묘했다. 

이 기분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스터디원과 시역을 하는데 나는 한 단락 아니 한 문장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스터디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그분은 중국인이었는데 그분이 나에게 이 부분은 이렇게 해석해야 해요 가르쳐주셨다. 진짜 도망치고 싶었다. 정신이 산산조각 난 것 같았다.

마침 시간이 전화중국어 시간과 겹쳐 잠시 20분 자리를 비우겠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나는 자리를 비웠다. 전화 중국어는 끝났지만 나는 선생님께 돌아왔다고 말씀드릴 수 없었다. 한 명, 한 명 돌아가면서 번역을 시키는데 나는 정말 한 문장도 못할게 뻔하니까 너무 부끄럽고, 나에게 화가 나고, 수치스러웠다. 

결국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일이 아직 안 끝난 척을 했다.


수업을 끝내고 나 따위가 통번역 대학원 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편입 준비할 때도 편입 시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이건 1년 하면 100% 된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통번역 대학원 시험은 두려움과 위압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이미 보지도 않은 통번역 시험에 내가 잡아먹힌 것 같았다. 고작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체류기간이었지만 중국어는 중국에 가서 기초부터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도 이런 내가 이해가 안 갔다. 그렇지만 나를 뒤덮은 두려움과 위압감은 쉽게 사라질 줄 몰랐고 이미 수강생들과 내 중국어 실력은 저 깊은 바다 심해에서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 우주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듯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도저히 서질 않았다. 이 공부의 목적도 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튜브 이연님이 출연한 세바시 영상을 접했다. 


네 번째 단계는 "두려움과 기대의 공존"이었다.

이연님의 영상 속에서도 이연님은 처음 그림을 그리기로 했을 때 덜덜덜 떨면서도 했다고 했다. 그 말이 참 와닿았다. 짙은 안갯속을 걷는 것 같았는데 조금은 안개가 약해진 것 같았다. 내 방 벽을 마주 보며 멍을 때리던 중 "시도조차 하지 않는 손해는 얼마나 클까?"라는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통번역 대학원에 죽을 때까지 도전하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아'

'편입하고 나서 내 인생은 정말 달라졌는데 어쩌면 이 대학원이 두 번째 전환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대학원을 가던, 가지 않던 일정 시간 이상은 중국어 공부를 깊게 해야 하는데 학원 가면 알아서 굴려질 테고

학교 가면 또 알아서 굴려질 테니 나 혼자 하는 것보단 이게 나을지도 몰라'

등등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는 혼자서 잘한다기보단 주변에서 절대 끝내지 못할 양을 주면 어떻게든 다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꾸역꾸역 하는 편이라 푸시가 필요한 타입이기도 했다. 주변의 푸시를 받으면서 중국어를 가장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은 통번역 입시학원 - 통번역 대학원이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면 학교에 못 가더라도 중국어 실력만큼은 엄청나게 성장해있을 테니 내가 잃는 건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되자 기대가 됐다. 

중국에서 중국어를 배운 경험이 있고, 글 쓰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워낙 좋아해 20살부터 가장 처음 대학은 국어국문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했었다. 이후 혼자서 글을 끄적이고, 독서하고 , 글 쓰는 대외활동도 하고, 에세이로 고료를 받기도 하고, 라디오 콘텐츠도 해보고, 친구랑 인스타에 데일리룩과 이야기도 만들어보고,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20살부터 좋아하고 그나마 재능이 있어서 주변을 맴돌았던 것들을 이제는 정말 전문적으로 배워서 평가를 받고 나아가 진짜 돈을 벌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통번역 대학원 시험은 중-한, 한-중, 에세이로 나눠진다.-한국외대 통번역대 기준) 대입할 때 논술을 못해서 아쉬웠었는데 이번 기회에 원 없이 글 쓰는 법을 공부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통번역 대학원 시험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뤄진 집약체가 아닐까? 

그럼 내가 또 한 번 좋아하는 것들을 전문가의 푸시와 함께 나를 던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다시 궁금해졌다.


두려우면서도 몸이 덜덜 떨리는 것만큼의 크기만큼 1년 후의 나는 어떻게, 얼마나 성장해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이제 공부의 목적이 서서히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중국어 실력에 도달하는 것" 이 그것이었고 하나, 둘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부하기 전, 신상 촬영을 빨리 끝내고 업로드 후 반납하는 것이 가장 크고, 빠르게 끝내야 할 일이었다. 

토요일 오후, 마지막 상품 업로드를 하고 업로드한 상품 공유를 끝냈다. 청강 수업 때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펼쳤다. 사실 수업시간에 단어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독해고 자시고 눈앞이 깜깜해진 기억 때문에 숙제를 하지 말까라는 생각도 했다. 중국어를 보는 게 너무 무서웠다. 무서운 마음을 애써 재워두고 숙제를 펼쳤는데 나의 무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떻게 해야 매끄럽게 해석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를 보며, 해석에 재미를 느끼는 나를 보며, 그냥 대학원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 정리를 모두 끝내고 정말 친한 친구에게 통번역 대학원을 준비한다고 말하자, 친구는 기뻐하며 말했다.

"축하해 요안아! 드디어 네가 가고 싶은 길로 확실하게 가는구나!" 

기뻤다. 그리고 너무 고마웠다. 

통번역 대학원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걱정이 많았으니까. 물론 내가 그 힘든 여정을 버틸 수 있을지 착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걱정인 걸 알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나와 통번역 대학이 너무 잘 어울린다며, 이제 내가 진짜 한 발을 내딛는 것 같다고 좋아하며 말했다. 나보다 더 기뻐하는 친구의 반응에 내 정신은 조금 더 안정을 찾았다. 서로 각자 일에 최선을 다해 버텨보자는 말과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끝으로 그렇게 전화는 끝났다. 이 친구 말고도 힘들 때 연락하면 맛난 음식을 사주겠다며 언제든 연락하라며 응원하는 친구도 있었다. (난 정말 인복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입시 시작 전 마지막 휴일을 보내고 있다. 어제 최종화였던 해피니스 방송을 엄마랑 보면서 기분 좋게 토요일을 마무리했고, 오늘은 푹 쉬고 다시 헬스장에서 운동도 하면서 체력 강화 프로젝트를 할 예정이다. 글을 자주 쓰러 올진 모르겠지만 아직은 초반이고 글 쓰는 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 중 하나니 쉬는 틈틈이 쓸 시간은 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매거진을 처음 시작할 때, 이 공간에 어떤 글이 채워질지 나도 궁금하다는 글을 썼었다. 아직 몇 편 올라오지 않은 지금도 이렇게 휙휙 바뀌었는데 내년엔 또 얼마나 변화가 생겼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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