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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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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r 24. 2021

자투리

계속 지켜가고픈.

퇴근하고 지하철에 타면 조용히 나만의 시간이 된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댓글을 쓴다. 한적한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은 하루의 긴장을 털어내고 새로운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 공간이 침범당한다. 평소와 달리 가득한 인파로 마치 출근하는 기분마저 든다. 무얼까. 생각해 보니 밤 10시까지 연장된 영업시간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나가는 시간이 맞물렸다. 곳곳에 울긋불긋 붉은 꽃이 폈다. 독한 술 냄새가 마스크 너머로 전해진다. 어제는 내 옆으로 아슬한 젊은 여성이 있었다. 대학생 정도 되었으려나.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계속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리더니 기어코 바닥에 쓰러졌다. 다행히 금방 일어났지만, 내 마음까지 불안 불안했다. 비틀거리는 모습에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자리에 앉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공간은 사라졌어도 어유로움마저 놓진 않았다. 앉지 못한다면 서면 그만이다. 출입문 바로 옆, 유리막에 기대어 책을 보았다. 밀물과 썰물처럼 사람들이 오고 갔다. 작은 돛단배를 타고 그 위에서 덩실댔다. 작은 시간은 상대적으로 크게 다가온다.

하루의 불안과 다음의 안도가 오가는 요즘, 나를 지켜낼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찾은 것이 '자투리'이다. 잠깐의 짬에 걷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언젠가 거대한 여유가 찾아오더라도 이 시간은 계속 지키고 싶다. 차곡차곡 쌓이면 무언가도 될 소중한 순간들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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