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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r 22. 2021

백 투더 퓨처  속 타임머신 타고 떠난 시간여행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디로 가볼까?

몇 년 전 재미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80년대 인기 있던 백 투더 퓨처란 영화 속에서 묘사된 30년 후의 미래와 지금을 비교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이안을 타고 2015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 공중을 떠다니는 스케이트보드, 3D 광고, 저절로 끈이 묶이는 신발 등 신기한 세상이 펼쳐졌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비디오로 그 장면을 보며 ‘와’하는 감탄사를 연신 쏟아 냈던 기억이 난다. 영화 보고 흥분해서 스케이트보드 타고 높은 곳에서 점프하다가 무르팍이 깨졌던 아픈 추억도 있다.
 
올해가 벌써 2021년이다. 영화 속 배경보다 시간이 더 많이 흘렀지만, 아직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는 현실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미국 보잉사가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우리나라도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니 조만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저절로 끈이 묶이는 신발은 이미 나이키에서 출시되어 주인공이었던 마이클 제이 폭스에게도 선물로 주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타임머신 자동차가 생긴다면 어디를 가면 좋을까? 타임머신이니깐 과거든 미래든 어디로든 갈 수 있잖아. 먼저 과거로 간다고 생각하니 먼저 두 곳이 떠 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과 20대 중반 여자 친구와 헤어진 영등포 어느 커피숍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수능 공부에 몰두해야 할 시기였다. 내내 괴롭혔던 수학 점수도 조금씩 오르면서 자신감을 찾아갔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밤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조종사가 되어 거대한 비행기를 몰았다. 꿈을 깨고 나서도 흥분이 가지 않아 허공에 붕 떠 있었다. 그리곤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부모님께 공군사관학교 가겠다고 선언했다.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화를 삼키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허락하셨고, 수능과 전혀 다른 공부를 시작했다. 시험은 역시나 떨어졌고, 고등학교 3학년에 돼서야 다시 수능 공부로 돌아갔다. 1년의 공백은 컸다. 수능을 폭삭 망하는 바람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때 헛꿈만 꾸지 않았다면 지금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나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고 싶다. “꿈 깨 이 녀석아!”

그녀는 군대 제대 후 사귄 여자 친구였다. 복학까지 반년 정도 시간이 남아 영어 학원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만났다. 작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꿈도 확실하고 무척 야무졌다. 사귀는 동안 주로 도서관을 다니며 나름 건전한 교제를 했다. 1년 반 정도 별 일 없이 마음을 키워 갔다. 그날은 그녀에게서 보자는 연락이 먼저 왔다. 자주 가던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구석에 앉아 있던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녀는 울먹이며 헤어지자고 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궁금함이 온몸 가득 차올랐음에도 묻지 않았다.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잡지도 않고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좀 더 시간이 흘러, 채 소화되지 않은 감정으로 매우 힘들었다. 그 뒤로도 만남과 헤어짐은 반복했지만, ‘마음이 식어서, 성격이 안 맞아서, 크게 싸워서.’ 등 그때마다 이유가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커피숍에서 나오는 나를 붙잡고 이유를 꼭 물어보라고 전해주고 싶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홀로 답답해하며 아파하는 시간을 덜어주고 싶다. 글을 쓰면서 궁금증이 다시 올라왔다. 그녀는 왜 헤어지자고 했을까.

마지막으로 가고 싶은 곳은 15년 후의 미래이다. 정년까지 회사에 다닌다면 그때가 은퇴하는 해이다. 아내와 약속한 것이 있다. 은퇴하면 바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때가 되면 코로나도 종식되고 마음껏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겠지. 각자 좋아하는 나라를 선택해서 여행을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몇 달이고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바다 근처의 조용한 해변 도시면 좋을 것 같다. 포르투갈에 있는 세상의 끝 카보 다 로카도 살고 싶은 곳 중 하나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이면서 깎아지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해변이 동화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아침에 커피와 책 한 권 들고 해변에 앉아 여유롭게 독서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리모컨을 들고 삶의 재생 버튼을 두 배 정도 느리게 설정해서 천천히 가고 싶다. 그러다 슬슬 지루해질라치면 정리해서 훌쩍 스위스 몽트뢰로 떠나는 것이다. 2주간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맥주 하나 손에 들고 공연을 보면서 종일 재즈 음악에 심취한다. 겨울까지 머물면 기차를 타고 알프스 산맥으로 떠날 것이다. 절경을 구경할 뿐 아니라 그때까지 다리가 허락한다면 스키를 타고 하얀 눈 세상을 헤쳐가고 싶다.
 
과정은 달라져도 마지막 종착지는 아이슬란드로 합의했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이다. 오로라는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로망과도 같다. 도저히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운 순간을 두 눈에 담고 싶다. 어쩌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을 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곳으로 가서 앞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갈 노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응원을 해주고 싶다. 잘 살았어요. 고생했어. 토닥토닥.
 
글로만 상상했을 뿐인데, 이미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타임머신이 없는 한 과거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은퇴 후 유럽 여행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리라. 그래서 현재에 더욱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은 몹시 슬프지만, 그때 마주할 가슴 뛰는 순간들이 있기에 ‘괜찮아’라고 다독여본다.
 
15년 후 미래가 궁금하다. 아내 손을 꼭 붙잡고,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을까. 아님, 어떤 다른 인생을 살고 있으려나. 하늘 나는 자동차가 현실이 되었으니, 타임머신 자동차도 개발되면 참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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