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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21. 2021

춘천에 두고 온 것 들

다시 가야 할 이유

춘천에 있는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목소리 끝에 평소와 다름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는 듯 보였다. 한 번 왔으면 좋겠단 말에 덜컥 날을 잡았다. 그리고 그날이 다가왔다.


도착한 남춘천역은 찌뿌둥한 하늘이 검붉은 구름을 가득 품고 있었다. 계단 아래에서 자전거에 손을 기댄 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웃고는 있지만 하늘빛과 닮았다.

근처 시장 국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이제 막 준비를 한 듯 난처해 보였지만 들어오라고 했다. 뜨끈한 국물에 아침 허기를 달랬다.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자전거 대여소를 찾았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유리창에 붙은 명함으로 연락을 했더니 비가 오는 날은 대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난감할 데가. 선배도 나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문득 국밥집의 낡은 자전거 한대가 떠올랐다. 밑져야 본전이지. 가게를 다시 찾아 식사를 치우는 주인아저씨께 양해를 구했다. "허허" 웃으며 안 탄 지 오래돼서 괜찮겠냐며 돌려만 달라고 했다. 앞바퀴에 바람만 넣으면 될 듯 보였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를 헤치고 공지천으로 향했다. 비는 오는 것도, 오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했다. 비가 온다고 해서였을까. 텅 빈 자전거 길을 내달렸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가슴속에 꾹꾹 눌러 놓았던 답답함이 창고 대방출처럼 쏟아졌다. 그저 입에서 '좋다'한 말이 흘러나왔다. 한참을 달렸을까 선배는 잠시 쉬자고 했다. 한적한 벤치 앞에 자전거를 두고 앉았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땀을 식혔다. 그리곤 나를 보고 씩 하고 웃었다. 아침의 우중충한 웃음과 달랐다. 그러면 된 거지.

길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쯤 꼭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다시 도로를 진입하고, 도심을 가로질러갔다. 어디를 가는 걸까. 복잡한 인파 속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도착해보니 유림고개라고 70년대 분위기를 재연한 길이었다. 어릴 적 동네가 떠올라 기분이 묘했다.

어느 길 앞에 멈춰 자전거를 세우고 좁은 언덕길을 올랐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빈티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카페였다. 예스러운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마침 비도 내리지 않아 야외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밤에 오면 더 아름답다는 말에 다시 꼭 오고 싶었다. 그때는 야경을 바라보며 맥주를 꼭 마셔야겠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에 기댄 채 선배의 고민을 나눴다. 그저 나는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답은 선배 마음 안에 있으니깐. 이야기는 선배의 새로운 소설로 이어졌다. 이미 기승전결이 머릿속에 모두 담겨 있었다. 열심히 쓰고 있으니 연말에는 세상 밖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오래된 동네를 바라보며 듣는 소설 이야기는 무척 낭만적이었다. 긴 시간 머물다 나왔다.

인근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역시 닭갈비는 춘천이지. 지글지글 읽어가는 자태를 바라보니 몹시 허기졌다. 한 입 쏙 집어넣으니 하루의 피로가 온데간데 사라졌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이었다. 공깃밥까지 볶아 싹싹 비웠다.

돌아오는 길, 아쉬운 마음에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차를 한 잔 더했다. 좋은 사람과 헤어짐은 늘 슬프기 마련이다.

떠나는 열차 안에서 받는 선배의 문자,



나중에 또 뵙기를....굿나잇



그래요. 꼭 그러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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