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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17. 2021

공모전에 떨어지는 글을 쓰는 이유

떨어져도 괜찮네.

그날이 왔다. 핸드폰으로 사이트를 접속해서 결과 발표 페이지를 열었다. 위에서부터 차근히 살펴본다. 없다. 또 없다. 결국 맨 아래까지 확인해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괜찮다 하면서도 씁쓸함마저 감출 수는 없다.


두 달 전부터 모 일간지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다. 글감이 주어지고, 써서 제출하면 한 달여 정도 뒤에 결과가 나온다. 마치 시제를 받고, 과거 시험을 보는 선비처럼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주제도 독창적이기에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집에서 써도 충분함에도 굳이 한적한 카페나 근처 서점의 빈 공간을 찾는다.


늘 시작이 어렵다. 며칠은 뜸 들이다 시간을 다 보낸다. 일단 빈 페이지에 첫 단어가 새겨지면 그때부터는 속도를 낸다. 수시로 궤도를 이탈하고, 엄한 곳으로 갔다 오기를 반복한다. 한 가지 논점으로 글을 끌어가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러면 불쑥 머릿속에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뭐하러 사서 고생이람. 쓴다고 밥이 나오니, 떡이 나오니. 그 시간에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영화 보는 것이 어때? 맨날 떨어지면서 무슨 글 이래.'


맞아. 뭐 하는 건지.... 아냐. 적지만 상금도 있고, 글도 실리잖아.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 뭐. 손으로 유혹하는 생각을 떨쳐낸다. 번민과 다르게 어느새 글은 중반에 이르렀다. 이제부터는 종결을 위한 소몰이를 해야 한다. 되돌아 갈 길이 없기에 계속 채찍을 든다. 어찌어찌 결론 단락에 이르렀다. '휴'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근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쓴 문장이 어색했다. 지금까지 달려온 이유가 모두 이곳에 모두 담겨야 한다. 계속 키보드 del키만 누른다. 앞 뒤 순서를 바꾸고, 다른 단어를 넣어보다가 아예 새롭게 다시 쓴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잃어버린 듯 헤맨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고. 일단 저장 버튼을 누른다. 어차피 시간은 많이 남았고, 기한까지 수정이 가능했다.


일단 쓰고 나면 다시 보지 않는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며칠이 지나서야 볼 용기가 생긴다. 찬찬히 들여다 보며 오타나 흐름이 이상한 문장을 수정한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문장을 마주한다. 그러나 별 반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단어 정도 고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탈락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선정된 작품을 읽어본다. 소재야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데, 기가 막히게 풀어냈다. 글을 읽는데, 걸리는 문장 하나 없네. 글에 들어간 힘이 하나도 없고, 마치 옆에서 친한 친구가 이야기 는 듯 자연스럽다. 잔뜩 힘이 들어간 내 글이 부끄러웠다. 읽는 분도 얼마나 부담되었을까. 미안해요. 다음엔 좀 빼볼게요.


한동안은 다시 쓸 엄두가 안 난다. 그렇지만 어느새 새로운 주제를 받고 노트북 앞에선 나를 발견한다. 물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를 하고 있지만. 그러면서 쓰는 이유는 그런 것 같다. 늘 쓰는 일상 글에 벗어나 새로운 글을 쓰는 짜릿함이 있다. 어찌 되었든 하나의 글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도전이 자극된다. 이제는 안정에 자꾸 기대고만 싶은데, 나를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물론 결과를 열어보는 두근거림도 빠질 수 없다. 이러다 언젠가는 마지막 끝트머리에라도 걸린다는 꿈도 꾸어본다.


이번 달은 언젠가 써보고 싶었던 주제였다. 역시나 시작부터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지만, 입가에 지어진 희미한 미소를 감출 수 없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이번에도 후회 없이 써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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