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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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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n 23. 2021

주말은 시간을 훔쳐가는 도둑이 있을 거야.

쉬엄쉬엄 가도 좋으련만.

어제 점심 산보를 하다 나도 모르게 시간 참 빠르게 흘러간다고 읊조렸다. 벌써 일 년의 반이 지났다. 주중은 바삐 간다 쳐도, 주말은 조금 과장해서 살짝 눈을 감고 뜨면 월요일이다.


뭐, 특별히 하는 일도 없다. 금요일은 정시 퇴근 후에 식사하며 맥주를 꼭 한잔한다. 혼술이라 더 마시고 싶어도 흥이 안 나고, 눈이 깜박깜박 감긴다. 그리곤 각자의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 아들을 꼬셔 영화를 보던지, 밀린 책을 읽으며 지나는 시간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지만 애 속하게도 체력이 받혀주지 못한다. 이내 꾸벅꾸벅 졸다가 언제 잠든지도 모른 체 아침을 맞이한다. 가끔 안경도 쓰고 있어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 같은 의지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토요일은 원래 바쁘고 할 일 많은 날이었다.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아이들 밥도 챙기고, 첫째 학원을 보내면 둘째와 밀도 깊은 시간을 보냈었다. 놀이터를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종일 땀을 흘리며 따라다니기 바빴다. 그런 시간이 점점 추억 뒤편으로 사라진다. 둘째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끝나면 꼭 친구들과 놀다 오거나 집에 데리고 온다. 나의 역할은 간식을 챙겨주거나 편히 놀라고 방으로 피신하는 정도이다. 마냥 좋다기엔 허전함이 든다. 둘째 얼굴에 활짝 핀 미소를 보며 원래 내 것이었는데 하는 유치한 생각에 고개를 젓는다.


어찌 되었든 오후 12시부터 4시 정도까진 혼자 있는 시간이 되었다. 대충 챙겨 입고 동네 한 바퀴를 돌다 와서 테이블에 앉는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포트에 물을 끓이는 동안 커튼을 활짝 편다. 환한 빛은 기다렸다는 듯 거실 곳곳을 침투한다. 구수한 커피 향을 맡으며 책을 읽는다. 이보다 평온할 순 없어. 자아도취의 극점을 찍으려는데 고개가 놀이기구라도 탄 듯 위아래로 마구 흔들린다. 책 속에 고정된 글자는 유체이탈도 아니고 제멋대로 튀어나와 춤을 춘다. 분명 책을 읽었는데, 페이지만 넘겼을 뿐 기억에 하나도 남지 않는 것은 뭘까.

바쁜 구간이 시작된다. 아내가 퇴근하고 올 시간이 다가왔다. 청소와 설거지를 마치면 아이들에게 안 하던 숙제 독촉을 한다. 마치 아내가 왔을 때 농땡이 안치고 내 할 일 다 했어하며 인정에 목마른 아이 같다. 늘 그렇듯 별말 없음에 뾰족이 입을 내민다. 이상하게 토요일 저녁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은 그저 빈둥거리다 지나가버린다.


벌써 일요일이 되었다. 아침에 눈 뜨면 한숨부터 나온다. 아이들이 깨면 온라인 예배를 마치고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지나가는 시간에 초조해진다. 가만있으면 불안해서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집안 곳곳을 닦는다. 그러고 나면 먼지 제거를 한다. 어릴 때도 내 담당이었다. 어머니께서 파란 걸레를 주면 바닥부터 찻장 위까지 열심히 닦았다. 걸레는 금세 더러워져 물로 빨아보지만 쉽사리 얼룩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제는 걸레 대신 물티슈를 사용한다. 귀신같이 먼지가 있는 곳을 잘 안다. 이 녀석들은 주로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 슥슥 치우고 나면 벌써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날이 더워 한증막 같다. 대청소가 마치면 오후도 끝이 난다.


저녁을 먹고, 근처 YES24로 향한다. 대형 테이블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꺼낸다. 얼마 전부터 매일 한 편씩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집에 있으면 집중도 안 되는데, 신기하게도 이곳에 있으면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다른 사람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도 자극받는다. 어찌어찌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곤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을 떨쳐내려 하지만, 생각이 뱅뱅 맴돈다. 도둑이라도 들어 시간만 쏙 빼간 것 같다. 슬프도다. 몹시 슬프도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곤 장렬히 지는 주말의 꽃을 바라보며 노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가지런히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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