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 추천으로 <기상청 사람들>이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기상청에서 '날씨'를 주제로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단박에 마음을 빼앗겼다. 주인공들의 본격적인 사랑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꺼진 아재 감성에 작은 불씨가 지펴지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드라마를 볼수록 자꾸 내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바로 엄동한 선임 예보관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생각난 장면
▲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엄동한 선임예보관 14년 간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다 함께 지내며 멀어진 관계로 괴로운 아버지를 그린다. ⓒ JTB
엄 예보관은 14년 동안 기상대와 지방청을 돌다가 본청으로 발령이 나 처음으로 가족과 오롯이 생활하게 된다. 본인 집인데도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라 뻘쭘하고, 화장실 사용부터 집안에서의 편한 복장까지 가족들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점점 위축된다.
더구나 어느새 사춘기가 된 딸은 자신이 근처에만 와도 몹시 불편해 하며 피하기가 바쁜 모습이었다. 속상한 마음에 엄 예보관은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고민을 털어놓고, 그러다가 영영 멀어질 수 있으니 지금부터 노력하라는 조언을 듣고 가족들과 잘 지내보기로 굳게 마음을 먹는다.
케이크까지 사서 집에 갔건만 밥 먹던 딸은 자신을 보자마자 방으로 사라지고, 주방 상부장에 있는 그릇을 꺼내는 아내를 도우려다 오히려 접시들을 깨고 만다. 아내의 핀잔에 그간 담아 두었던 서운함이 폭발한 엄 예보관. 그는 아내에게 월급을 주지 않은 적이 있냐, 딴짓을 한 적 있냐 그저 열심히 일만 했는데, 내가 무얼 그렇게 잘못했냐며 화를 냈다.
그 말을 듣던 아내는 딸이 태어나고 백일 만에 아이가 아빠를 만나게 된 이야기와 일로 바쁜 엄 예보관이 아이 입학식과 졸업식에 한 번 참여한 적 없었던 일을 토로한다. 혼자서 애를 키우는 걸 본 동네 사람들이 한동안 미혼모로 오인했다는 말까지 아내가 전하자 엄 예보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장면을 보는데, 내내 마음이 짠했다. 나 역시도 아버지가 지방 근무를 오래 했고,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온전히 함께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어려움이 발생했다.
저녁형 인간이었던 우리와 달리 아침형 인간이었던 아버지는 생활 방식부터 달랐다. 밤 늦도록 생활하는 모습을 못마땅해 했고, 이내 잔소리로 이어졌다. 서로 충돌하며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오랜 기간 떨어진 세월은 심지어 치약 짜는 습관마저도 다르게 만들었다.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합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아버지도 나름 살갑게 대하려 노력했지만, 그 자체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와 누나는 되도록 아버지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반복되는 상황 가운데 어느 날 아버지는 술을 잔뜩 드시고 집에 와서는 우리 앞에서 한참 동안 속상한 마음을 화산이 분출하듯 쏟아냈다. 드라마 속 엄 예보관처럼 말이다.
그때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도 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히는 데는 함께 살지 않았던 기간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내가 결혼하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되고 보니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해가 된다.
지방 근무를 하더라도 놓치기 싫은 것
▲ 일 하느라 가족 관계를 돌보지 못한 엄 예보관과 아내가 싸우는 장면. ⓒ JTBC
이런 배경 탓인지 결혼하고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반드시 곁에서 지켜보겠다고. 그런 나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지방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직장에 들어왔음에도 아직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함께하며 한 땀 한 땀 마음 속에 추억의 옷을 만들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이 영원하리라 믿었다.
이제까지는 운 좋게 지방 근무를 잘 피해왔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을 거라는 걸 잘 안다. 이미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몇 차례 지방 근무를 다녀왔다. 사실 3년 전에 지방에서 근무할 타이밍이었는데 본부에서 근무할 기회가 생겨 겨우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변수가 생길 듯하다. 지방에 갈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필 이 시점이라서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본사에서 근무하면서 야근을 밥 먹듯 했고,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있는 시간이 늘었다. 자연스레 아내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야 했고, 그 속에서 나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다행히 아들과 운동도 하고 공통의 관심사도 만들어 가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 전보다는 관계가 나아진 상황인데 지방 근무를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함께 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나의 자리는 다시 좁아질 것이다. 근심스러운 마음으로 지난 주말 아내에게 말을 꺼냈는데 예상과 달리 담담한 아내의 반응에 놀랐다.
가만히 방에 누워 홀로 상상을 해 보았다. 최대 3년 정도는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 그 사이 첫째는 고등학생, 둘째는 중학생이 될 것이다. 아마도 둘째의 사춘기가 절정일 때겠지. 주말에 집에 오면 방문을 굳게 잠그며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떨어져 지낸 시간을 메우려면 배 이상의 노력이 들 것이다.
지방에 가게 되더라도 최대한 가족들과 밀도 있는 생활을 계획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어떻게 지켜낸 아빠의 자리인데 쉽게 내놓을 순 없다. 물론 그 시작은 지금부터이다. 주말에 피곤하다고 퍼져 있지 말고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어떻게든 공통 관심사를 찾아 아이들과도 친밀함을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할 일들이 계속 떠오르며 마음이 분주했다.
좋은 관계는 공짜로 얻을 수 없다. 살면서 경험으로 체득했다. 물론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의 엄동한 예보관도, 나의 아버지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미처 가족간의 관계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그 전철을 내가 따라 밟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