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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r 18. 2022

대책없이 호르몬에 휘둘리는 40대 가장입니다

까칠한 사춘기와 예민한 갱년기가 만났을 때

사춘기의 까칠함과 갱년기의 예민함


일요일 오후 조금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탁에 모였다. 그러나 아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방에 가보니 이불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늦게 잔 것이 분명했다. 몇 번 깨워도 소용없길래 그냥 나왔다.


조금 뒤, 아들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기분이 별로라는 티를 팍팍 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숟가락으로 거칠게 밥을 푸는 모습, 젓가락으로 마구 반찬을 헤집는 행동이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럴 땐 당혹스럽다.


불과 어제저녁만 해도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며 쉬고 있는 나에게 몰래 다가와 옆구리를 간지럼 태우며 장난을 걸어왔던 녀석인데... 손과 손을 맞대며 힘겨루기로 시작해서 목조르기부터 발차기까지 격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러다 결국, 둘이 침대에 떨어져 '악' 하는 비명이 터지고 나서야 끝이 날 정도로 즐거웠는데...


실제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몸집도 커지고, 힘도 세져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비루하게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중년 아재에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녀석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돌변했다.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도 아니고... 아침이 되자 녹색 괴물로 변한 눈앞의 아들 모습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럴 땐 그냥 두는 것이 정답임을 알면서도, 고슴도치 가시털이 바싹 서듯 나도 한껏 예민해졌다.


아들에게 '신경 쓰이니깐 차분히 밥 먹으라'는 말이 입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그 뒤론 이미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아내의 '그만하라'는 명령이 아니었으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씩씩 거리며 방으로 사라지는 아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두 글자가 눈앞을 스쳐 갔다. 후.회.


그러나 이미 열차는 저 멀리 떠났다. 사춘기에 진입한 아들의 대표적인 증상이 이런 예측 불가한 감정의 변화이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수시로 흐렸다 맑기를 반복한다. 물론 아들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나 역시도 사춘기 때는 수시로 차오르는 불같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으니까.


문제는 이런 아들의 행동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에게 있다. 이제 앞자리 숫자가 4를 넘어 5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쯤되면 너그러움을 장착할 만도 한데 감정의 증폭은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내와 아이들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며 '갱년기'가 아니냐며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나조차 '그런가?' 싶은 합리적 의심마저 들었다. 인터넷에 남성 갱년기를 검색해 보았다.


여성의 폐경과 비슷한 현상이 남성에게도 나타난다고 하여 남성 갱년기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여성의 폐경과는 달리 모든 남성에게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고 개인차도 커서 '연령에 따른 테스토스테론 결핍 증후군'이 바른 용어일 것 같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아직도 남성갱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많은 남성을 대상으로 추적연구 결과를 보면 40대가 되면서 혈중 총 테스토스테론은 매년 1.6%씩 감소한다. 남성갱년기는 혈액검사를 통하여 혈중 테스토스테론치의 비정상적인 감소가 확인되고 테스토스테론 감소에 부합하는 증상이 있는 경우로 정의된다. 증상으로는 기분의 변화, 지적능력 및 공간 지각력의 감소, 피로감, 우울증을 보이게 되며 신체적으로는 근육량 감소, 내장지방의 증가, 체모의 감소, 골밀도 감소 등이 나타날 수 있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어려운 의학용어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남성 호르몬의 감소에 따라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증상 중 '기분의 변화'가 눈에 확 들어왔다. 호르몬이 감정을 그리 만들었단 말인가. 씁쓸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몸도 마음도 점차 쇠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지만 모두 호르몬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었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비슷한 시기인 이유

▲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 아이들은 옷을 옷장에 바로 넣는 법이 없다


얼마 전 주말에 대청소를 한다며 청소기를 돌리다 아이들 방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곳곳에 놓인 쓰레기를 발견했다. 바로 치우라고 했지만, 나중에 하겠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폭발해서 화를 내고 말았다.


아이들은 '또 시작되었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럴 거면 청소하지 말라며 본인들 방에서 나를 차례로 몰아냈다. 방문은 굳게 닫혔고, 어쩔 수 없이 안방과 거실만 마무리하고 끝냈다. 아이들이 스스로 치울 때까지 기다려주면 좋으련만 잔소리를 참지 못해 이런 일을 자초했다.


재작년 이사를 와서 호기롭게 대청소 담당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그 약속을 열심히 지키고는 있지만, 청소 때마다 매번 이렇게 부딪쳤다. 어느 날 아내는 진지하게 청소 때 짜증을 덜 부리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러다가 아이들과 사이만 나빠질 것 같아 걱정된다며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 하지만 알면서도 잘 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나 갱년기 중이란 말이야.


저지르고 후회를 반복했다. 본전도 못 찾는다는 표현이 이보다 정확할 수 없었다. 슬슬 눈치를 보다가 짜증 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그제야 아이들도 못 이긴 척 받아준다. 어쩌다 내 입지가 여기까지 왔을까. 현실의 좁디좁은 아빠의 자리를 새삼 확인한다. 이렇게 가다간 사춘기고 뭐고 나중에 투명 인간 취급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단 우리 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비슷한 또래를 가진 지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아이들과 부딪힘으로 몸살을 호소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갱년기와 자녀의 사춘기가 같은 시기인 이유가 뭘까? 혹시 서로 간의 거리두기를 잘 하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시련 같은 것은 아닐까.


실제로 원 없이 지지고 볶다 보니 아이도 일정 거리 이상을 침범하지 않게 되었고, 나 또한 전과 다르게 그 거리를 점차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그 거리가 좁혔다 벌어졌다 아슬한 줄타기 중이지만, 무사히 잘 넘기면 언젠간 적당한 거리가 반드시 생길 거라 믿는다.


얼른 아이도 사춘기가 끝나고, 나도 갱년기가 막이 내릴 시기가 다가오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훨씬 성숙한 관계 맺음을 하게 되겠지. 그때를 기다리며 오늘도 고된 하루를 버텨야겠다.


▲ 거리두기 사춘기와 갱년기는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같다  ⓒ Unsplash





오마이뉴스 '사춘기와 갱년기' 그룹 4번째 기사를 발행했습니다. 아이의 사춘기에 못지않게 저의 갱년기도 만만치 않네요. 둘이 만나 시너지가 장난이 아니네요. 하지만 이 시기를 잘 지내면 더 나은 관계가 되리라 믿습니다.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http://naver.me/FdEZcV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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