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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02. 2023

2023년, 집토끼가 새론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는 해

새로운 세상이 꿈틀거린다

2023년은 나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그 이유는 생애 첫 지방 생활을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마흔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지금 사는 동네를 떠나본 것이 군대 2년 2개월을 제외하곤 없었다. 기억 속에도 없는 강릉에서 태어나 어릴 때 그곳에 직장이 있었던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어머니와 누나들과 함께 서울로 왔다.


그 뒤로 이사 한번 없이 근처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입학해서 버스로 통학을 했다. 그러니 군대 생활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때까지 외박은 그저 친구 자취방에서 자도 오는 것이 다였는데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지내는 일 자체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뭐.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어느 순간 동화되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팔자에도 없는 공부를 더하겠다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사귀게 된 시작점도 둘이 같은 동네를 살아서였다. 우연히 같은 방향임을 알고 몇 번 같이 집에 가다가 친해졌다. 그러다 어느 날 동네에서 술 한잔 거하게 마시다 취한 상태로 덜컥 사귀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내 사촌오빠가 고등학교 1학년때 같은 반 친구였다. 맙소사.  


내가 아내보다 먼저 졸업 후 취업을 했다. 그것도 집에서 30분 정도의 가까운 곳이었다. 아내가 졸업한 1년 뒤 우리는 결혼을 했다. 집을 구했는데 본가 근처였다. 결혼의 이유 중 하나가 이제 그만 집을 떠나고 싶어서였는데 5분 거리이내라니.


그렇게 2년을 살다가 전략적으로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그 세월이 근 10년이 다 될 줄이야. 암튼 처갓댁도 본가에서 차로 20분 남짓 거리였다. 그 사이는 나는 이직을 했고, 국가직 공무원이 되었다. 우리 직렬은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기관들이 있기에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아니 가야만 했다.


첫 발령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였다. 그 뒤로 15년이 넘도록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수도권에만 있었다. 벌써 입사 동기는 최소 2~3번 이상은 집 떠나 다른 지역에서 근무했건만 나는 희귀 케이스였다. 하긴 고등학교 때까지 떨어져 지낸 아버지의 부재로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함께 있겠다고 다짐했었다. 인사 운도 따랐고, 두 번의 본부 근무도 결정적이었다.


작년에 승진 기회가 있었다. 만약 한다면 더는 지방 근무를 피할 길이 없었다.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되었다. 상의 끝에 바다가 있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으로 정했다. 주말엔 집에 와야 하기에 교통도 고려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바다를 좋아하고, 특히 여행도 자주 갔던 곳이기에 모두가 만족한 선택이었다.


그때부터 아내와 아이들은 언제 가냐고 종종 물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왠지 내가 떠나길 바라는 눈치였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하지만 결정적으로 하반기 승진에 미끄러졌다. 결국 계획은 2023년으로 이월되었고 반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가겠다고 마음먹은 뒤론 가고 싶은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오래 있는 것도 아니고 1년 정도면 다시 집 근처로 돌아오기에 그동안 무엇을 할지 계획이 계속 떠올랐다. 숙소도 글 쓰는 공간으로 꾸며야지. 쉴 땐 바다를 거닐며 소설 구성도 해볼까. 건강도 챙길 겸 새벽엔 조깅도 좋을 거야. 퇴근 후엔 인근 독립서점에서 독서모임도 하고 싶다. 캠핑하기도 끝내준다는데.


이건 일하러 가는 건지 꿈을 실현하러 가는지 모르겠다. 가족들은 여름휴가 때 놀러 오기로 했고, 아내는 1박 2일 정도는 혼자도 오겠다고 했다. 예전에 객지 생활을 하던 선배들이 아내가 찾아오면 신혼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곤 했다는데 상상만으로도 낭만이 스며들었다.


북태평양의 더운 바람이 불어올 때쯤, 유독 여름이 뜨거운 그곳에 가있으리라.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그 시간은 나중에 어떻게 기록될는지.


예측할 수 없기에 그만큼 기대감이 큰 2023년이여. 늙고 심약한 집토끼는 이제야 집을 떠나 푸르른 들판으로 첫발을 내딛는 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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