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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an 02. 2023

후진하다 백미러를 깨 먹었습니다.

보글보글 2022년 1월 첫 주 "2023"

건물들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긴 일산의 상가들을 방문할 때마다 어둡고 좁은 주차장 때문에 운전이 꺼려집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능 한 주차하기 편리한 곳으로 드나들다 보니 부득이 대형 매장만 선호하게 되는 건, 어쩌면 저 만의 선택은 아닐 것입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수업 때문에 이른 아침 상담소를 찾았습니다. 유난히 어두운 상가 지하 주차장은 방문할 때마다 주차할 곳 없이 복잡합니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 주차를 하게 되면 운수대통입니다. 그날도 기분 좋게 주차를 하고 수업에 참여한 뒤 귀가차 주차장에 내려왔더니 제 차 앞으로 벽면 주차를 한 승용차가 있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이중주차를 해 놓으면 차를 뺄 수가 없어 차 안에 적어둔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연속으로 다섯 번쯤 전화를 했음에도 차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다음 일정이 있어 이동을 해야 하는데 차를 막아두고 전화를 받지 않는 차주 때문에 마음은 이미 전쟁이 났습니다. 재능 없는 욕이 목구멍으로 솟아오를 때쯤 제 차 '옆에 주차된 차주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 OOOO 차주님이시죠?"


주차라인에 제대로 주차를 해 둔 차주는 어리둥절한 음색으로,


"네... 그런데요?"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주차를 제대로 했음에도 전화가 오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차주님께서는 주차를 바로 하신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제 차 앞에 벽면 주차를 해 둔 차주께서 전화를 받지 않으세요. 제가 다른 일정으로 급하게 이동을 해야 해서요... 혹시 차를 잠시 이동해주실 수 있을까요?"


최대한 정중하게 부탁드렸지만 근무 중 이동하는 것이 불편하셨던지 답변이 시원찮았습니다. 내려오신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10분이 넘도록 오지 않으셨고, 여전히 벽면 주차 차주는 전화를 받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차에서 내려 이동 간격을 보다가 '차를 한 20번쯤  넣다 뺏다 하면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차를 돌리고 있는데, 아풀싸!! 반대방향에서 차가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전면등을 깜박이며 어서 비키라는 신호를 보내오니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다시 차를 제자리로 넣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앗!! 차를 다시 넣으려면 23번쯤 넣다 뺐다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순간! '우지끈' 간절한 파열음을 듣고야 말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오른쪽 기둥과의 간격을 미처 살피지 못한 채 후진을 해 버렸던 겁니다. 백미러는 슬픈 비명과 함께 젖혀졌지만 헤매는 제 차를 보며 짜증이 가득 들었을 차주의 표정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백미러는 망가졌지만 차가 나가도록 먼저 비켜주기 위해 그대로 후진을 한 후 차에서 내려 살펴보았습니다. 백미러 모퉁이는 처참하게 바스러졌고, 몇 분 간 지옥 입구까지 다녀왔던 나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져 단전 아래서부터 속상한 마음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차에 올라 벽면 주차 차주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서너 번 벨이 울리니 편안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누구시죠?"


순간 나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던 20여분의 시간 동안 있었던 내면의 갈등이 서운함을 넘어 설움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쯤이면 이분, 일부러 전화를 피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속이 왕창 상했던 모양입니다.


"저, 지하주차장인데요. 차주님께서 제 차 앞으로 벽면 주차를 해 두셔서 제가 전화를 여러 번 드렸거든요."

"아~ 그런데 차를 못 빼시나요?"

"네. 차를 돌릴 수 있는 간격이 아니라서요."

"그렇구나. 좀 기다리셔야 할 텐데... 되도록 빨리 내려갈게요."


너무나 덤덤한 차주의 음성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사과 한 마디 없이 '운전이 미숙해서 차를 빼지 못한 건 아니냐'는 듯 건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옆에 세워 둔 차주에게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드렸습니다. 헤매는 시간까지 오지 않은 옆 차 차주에 대한 서운함도 있었지만 근무신간 중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이 죄송스럽기도 했습니다. 벽면 주차 차주는 내려와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차를 이동했고 내려서 왈가왈부할 짬도 없이 제 차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나와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한 후 집으로 돌아와 차를 살펴보니 백미러 파손 정도가 접착제로 수리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이쯤 되면 완전범죄는 불가능합니다.


눈을 맞아 먼지투성이가 된 것도 서러운데 상처까지 내서 미안해!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주부의 일거리가 기다렸다는 듯 맞이합니다. 먼지포 밀대로 적당히 바닥 먼지를 훑고, 가족들 저녁을 챙기고 나니 늦은 8시가 훌쩍 넘어갑니다. 설거지를 하며 주방 정리를 하고 있는데 TV를 보고 있던 가족들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궁금한 이야기Y'를 시청하고 있던 가족들의 대화에서 '사고'라는 단어가 들려오는 순간 문득 '백미러를 망가뜨린' 낮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아참! 여보!!"

"어? 엄마가 저런 음색으로 저렇게 부르면 뭔가 있는 건데?"


눈치 빠른 앵글이입니다.


"왜~ 또~ 무슨~~~ 이번에는 뭘 망가뜨렸어?"

"그치, 아빠! 엄마 사고 친 것 같지~"

"떨리니까 살살 말해~ㅎㅎㅎㅎ"


눈치 백 단 가족들입니다. 이럴 때에는 뻔뻔함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아니, 내가 낮에 교육받으러 주엽에 나갔다가..."

"사고 났어?"

"그게 아니고... 응... 백미러를 깼어!"

"어쩌다가?"

"아니,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차를 빼려고 보니까 내 차 앞에 다른 차가 벽면 주차를...(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비켜달라고...(어쩌고 저쩌고) 후진하다 기둥에 백미러를 부딪쳤지 뭐야."

"그래서, 조각은 주워왔어?"

"조각? 아니? 주워와야 해?"

"주워와야 붙이지."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지. 그런데 나는 안 다쳤어."

"아빠~ 엄마 봐~ 안 다쳤대... ㅎㅎㅎ"


사실 속으로는 살짝 쫄았었지만 태연하게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여보~ 다음에는 뭘 깰 거야?"

"뭘 깨긴... 내가 가끔 사고를 치긴 하지만 이번 차 사건은 억울해."

"아니, TV 깨서 바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ㅎㅎㅎ"


건전지로 박살 낸 TV


연초에 TV를 깼습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리모컨 건전지를 바꾸려다 건전지를 놓쳐 땅에 떨어진 건전지가 튀어올라 LED 판넬에 맞았는데 전류가 통해 모니터가 깨진 사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세로로 얇게 한 줄이 나타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굵어지더니 나중에는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폭이 넓어지고 파열음이 들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할 수 없이 TV를 바꾸게 되었던 것이죠.


최애 가전이 된 TV


'최저가 TV로 사겠다' 약속을 하고 전자상가에 갔지만 막상 전시된 TV를 보니 마음이 살짝 바뀌어 신상으로 사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최저가로 검색하고 매장을 방문했지만 전시된 TV를 보니 해상도 차이가 꽤 나더라고요. 기분파 남편을 동행한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TV값을 받아서 쇼핑을 했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최저가를 구입했을 테니까요. 역시 남편 찬스가 최고입니다.


보글보글 2023년 1월 첫 주 [2023]


2022년에는 두(2) 번 사고(0)를 쳤으니, 2023년에는 두(2) 번의 사고를 잊지 말자고 세(3)번 다짐해 봅니다. 꼼꼼하고 진중한 것 같지만 은근 허당이라 우리 집에서 가장 사고를 잘 치는 편입니다. 이상하게 잊을만하면 한 번씩 뭔가를 부수거나 다치거나 하거든요. 제일 자주 아픈 사람도, 병원에 제일 많이 가는 사람도 저랍니다.


2023년에는 덤벙대지 않고 차분하게,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사람관계도 잘하면서 너무 치우치지 않게, 건강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자고 다짐, 또 다짐해 봅니다. 일 욕심이 많은 것 같지 않은데, 일이 자꾸 와서 달라붙습니다. 밀어내려 해도 계속해서 포개지다 보니 연말로 갈수록 일이 많아집니다. 거절 못하는 성격도 한 몫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여야 하는데 부탁을 하면 거절을 못하다 보니 일이 많아지는 건 당연지사죠.



2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고민하며 시작된 '보글보글'

0 영원히 함께 하고픈 순간이 2022년 보글보글 매거진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2 이듬해에도 소중한 글로 감동을 주고픈 작가님들을

3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2023년에도 '보글보글'은
여러 작가님들과 함께합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보글보글과 함께하고픈 재미난 주제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제안해주세요.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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