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기 전 전쟁을 앞둔 장수처럼 비장함을 품다

1호선 환승은 여전히 어렵다

by 실배

전쟁을 앞둔 이순신 장군의 마음이 이랬을까. 사뭇 비장한 마음으로 지하철 노선도를 펼쳤다.


"아들, 어디를 가면 좋을까?"

"몰라. 아빠가 가고 싶은 데로 해."

"그래도...."


장수는 물러날 때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법. 더 물어보았다가는 안 간다는 최악의 수를 둘까 봐 두려워 한 보 후퇴했다. 3호선의 위쪽으로 가볼까. 아니면 4호선 아래로 갈까. 고민을 하던 중 눈에 들어온 역이 있었으니 바로 '역곡'이었다. 20대 중후반의 대학원 시절을 보냈던 곳, 아내를 처음 만난 곳, 꿈을 꾸었던 곳이었다. 그래. 아들에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줄 겸 그곳으로 정했다.


목적지가 정해진 후 방으로 사라진 아들에게 카톡으로 음식점 몇 군데를 선택해서 보내주었다. 원래는 아내와 자주 갔던 떡볶이집을 가고 싶었다. 설마 했더니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검색했더니 일요일은 휴무였다. 아쉬웠다. 수업을 마치고 아내와 집에 가는 길에 떡볶이 1인분에 순대를 시켜서 출출한 배를 채웠던 고마운 장소였다. 카톡이 울리고, 아들은 카레 전문점을 골랐다.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나와 달리 아들은 태연했다. 한참을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씻으러 세면장으로 갔다. 1시간이 넘도록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아내는 사춘기 아이들은 잘 씻거나 안 씻거나 두부류로 나뉜다고 했다. 그래도 전자이니 다행 아니냐며 차분히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알았다고!


오후 4시가 다 되었다. 출발 직전에 아들에게 몇 가지 사항을 알려주었다. 우선 가는 방법과 네이버 빠른 길 찾기로 탑승해야 하는 위치를 찾아보라고 했다. 지하철 여행을 가장 큰 목적은 아들 스스로 어디든 갈 수 있게 만드는 일 아닌가. 꼼꼼히 살펴보는 모습이 대견했다.


5호선 열차를 탑승해서 1호선 신길역에 내렸다. 이때부터 아들이 가자는 데로 따라갔다. 환승 구간도 길었고, 무엇보다도 어느 곳에서 타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아들에게도 몇 번을 강조했었다. 다행히 인천 방향으로 가는 입구를 잘 찾았고, 열차마저 바로 왔다. 빈자리가 없어서 문 앞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갔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떠올랐다. 1호선 구간은 밖을 바로 볼 수 있기에 나름 운치가 있었다.

멍 때리고 있는데, 이번 도착지는 '가산디지털단지역'이란 방송이 나왔다. 뭐시라. 지금쯤 구일 정도를 가야 하는데 당황스러웠다. 일단 아들과 열차에 내렸다. 알고 보니 신창행 열차였다. 아들에게 그렇게 강조를 했건만 부끄러웠다. 반대 방향으로 가서 구로로 갔다. 그곳에서 인천 방향 열차를 갈아타고 무사히 역곡에 도착했다. 무엇보다도 경험이 중요하지 않은가. 직접 체험을 했으니 다음번엔 잘 가리라 믿으며 합리화했다.


출구 방향으로 나갔는데 전혀 모르는 낯선 곳이었다. 거대한 건물이며 상점이며 마치 처음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긴 졸업한 지 17년이 다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결국 네이버 길 찾기를 통해서 가톨릭대학교를 검색했다. 천천히 길을 따라가는데 조금씩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역시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드디어 정문 입구에 도착했다. 부푼 마음을 갖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표지판 하나가 보였다. 코로나로 인하여 일반인 출입을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아들은 얼음이 되었다.

나와 달리 아들은 어릴 때부터 규칙, 규율에 민감했다. 괜찮다고 해도 본인은 밖에서 기다리겠다며 버텼다. 할 수없이 혼자 가야 했다. 추억이 서려있는 곳곳을 설명하려고 잔뜩 마음을 먹었는데 아쉬웠다. 결국 주변만 살짝 돌아보곤 나왔다. 반가운 친구야 안녕. 다음엔 오래오래 보자꾸나.


음식점으로 가는 중 아들은 불쑥 요즘 박보영에게 빠졌다고 고백했다. 요즘 '오 나의 귀신님'을 보고 있는데 박보영이 너무 귀엽고 예쁘다고 했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도 생각나면 심장이 멈출 정도란다. 낯간지럽다고 로맨스는 절대 보지 않는 녀석이 웬일인가 싶었다. 이성에 눈을 떠가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하긴 나도 그때 영화 '라붐'을 보고 소피 마르소에 빠져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 부전자전이었다. 들뜬 모습을 바라보며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기면 어떨지 상상을 해보았다.


'오무야'라는 카레집인데 아직 저녁 시간 전임에도 사람들로 바글댔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나는 미리 생각해두었던 '삿포로식 야채수프 카레'를 아들은 '오무카레'를 시켰다. 카레는 나의 최애 음식이었다. 예전에 대학 때 한 달 내내 점심으로 먹은 적도 있었다. 아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더니 본인은 그렇게 먹으면 질려서 더는 먹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휴지를 달라고 해서 탁자를 닦으려나 싶었더니 식사 후에 입에 묻은 카레를 닦을 용도라 했다. 이런 깔끔한 녀석을 보았나.

수프식 카레가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야채, 카레, 수프 삼박자가 잘 맞았다. 훈제 닭 다리를 토핑으로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먹을 걸 그랬다. 허기졌는지 둘 다 말도 없이 음식에 집중했다.


돌아가는 길, 벌써 해가 해가 뉘 역해졌다. 역사 안에서 어떤 여성분이 창밖으로 사진을 찍길래 보았더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맞다. 정월대보름이었다. 달이 동그라니 영롱했다. 다가가 찍으려 했지만, 아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말았다. 아재 같다며 뭐라 그럴지 분명했다.


열차 안에서 아들은 계속 꾸벅꾸벅 졸았다. 피곤했나 보다. 잠시 잠이 깼길래 오늘 어땠냐고 물었더니 좋았다고 했다. 점점 아들과 지하철 여행의 재미를 느끼고 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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