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떡볶이를 나는 추억을 먹었네

아들과 지하철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대화를 하고 싶어서이다.

by 실배

날이 참 좋았다. 창가 너머로 햇살이 비추며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그래 이런 날은 콧바람을 쐬야 제격이지. 거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방에 있는 아들을 불렀다.


화면에 지하철 노선도를 폈다. 아들에게 지하철 여행을 떠나자고 하니 좋단다. 다만 단서 조항이 있었다. 오후 12시에 떠나서 3시까지 돌아와야 했다. 오케이 그 정도쯤이야. 그럼 어디로 가볼까.

지난번에 갔었던 1호선은 제외하고 중간에 점심까지 먹고 오려면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이리저리 살피던 중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7호선 숭실대입구역이었다. 20대 파릇한 젊음을 보냈던 나의 모교.


묘하게 지난번 대학원 이어 이번엔 대학교였다.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즉석 떡볶이 집이 눈에 띄었다. 사실 전부터 먹고 싶었다. 소스도 자체 개발한 저염식이었다. 아들도 엄지 손가락을 들며 결정을 지지했다.


봄바람도 살랑대니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5호선을 타고 2호선으로 갈아타서 대림역에 내렸다.


"아들, 대림동에는 중국사람이 많이 살거든. 전통 중국 요리를 맛보려면 한번 가봐도 좋을 듯한데. 중국에 온 듯한 기분도 느껴볼 겸."

"그래 다음에 시간 맞으면."


7호선은 깊기로 유명했다. 환승 구간도 길어서 아들은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집 안에서의 아이와 밖에서의 아이는 달랐다. 유독 사람 많은 곳에 있으면 긴장된 모습이 보였다. 이럴 땐 긴장을 풀라는 말보다는 그냥 두는 편이 나았다. 일부러 말도 걸지 않고 그냥 발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대림역에서 6 정거장을 지나 숭실대입구역에 도착했다. 내가 졸업할 무렵에야 역이 완성되어 큰 혜택을 보지 못했다. 다행히 집에서 학교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학교를 오가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전에 학교 동아리 OB모임으로 왔었기에 크게 낯설진 않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건물 규모와 시설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일단 도착해서 음식적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익숙해서 보니깐 대학 때 자주 술 마시러 갔던 시장 안에 있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여기가 전에 고갈비에 소주 한잔 했던 곳이고. 저기가 오도독뼈를 팔던 곳이야. 야. 신기하다. 여전히 그대로네."

"아빠는 옛날에 술 많이 마셨나 봐. 술이야기가 빠지지 않네."


하긴 선배들과 어울리며 수업도 빠지고 시장에서 낮술 마시며 개똥철학을 쏟아냈던 시절이었다. 벌써 25년이 훌쩍 지났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떡볶이 2인 분에 꼬마김밥, 그리고 나중에 볶음밥을 주문했다. 아들은 불쑥 일어나더니 셀프코너에서 물과 단무지를 가져왔다. 아이들이 컸구나를 느끼는 지점은 이럴 때인 것 같다. 나중에 입을 닦으라며 휴지도 놓아주었다. 깔끔한 녀석.

보글보글 익어가며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가에 침이 고였다. 되었다 싶을 때, 국자로 뭉치지 않게 저었다. 드디어 완성. 아들 접시에 가득 담아 주었다.

"아들, 맛이 좀 어때? 약간 아빠가 예전에 먹던 스타일인데."

"나는 이런 맛 좋아. 자극적이지 않고 떡도 쫄깃하고."


우리는 음식에 집중하면서도 지난밤 있었던 유럽 축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아들 사이에 가장 큰 공통점은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축구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종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학교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여기가 운동장이야. 전에 아빠가 3대 3 농구 대회 나갔다고 했었잖아. 바로 이 장소야. 이 건물은 아빠가 주로 수업 들었던 곳인데 이제는 아예 다른 건물이 되었네. 일루와바. 저기 백마상 보이지. 졸업 전에 꼭 한 번은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아빠도 오른 적이 있네. 와. 저기 잔디밭에서 종종 막걸리 먹었었는데. 위에 도서관 보이지. 가방 놓아두고 앞에 벤치에서 친구들이랑 커피 마시며 이야기 많이 나누었었는데."

아빠의 쉴 새 없는 수다에도 아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주었다. 대학의 낭만을 설명해주려 했더니만, 내가 그 안에 풍덩 빠졌네. 한쪽에서는 졸업식이 열리는지 꽃다발을 든 사람이 보였다. 방학지 고는 사람들이 많았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돌아가기 전, 자주 다녔던 상가 골목을 가보았다. 어쩌면 교내 보다도 추억이 더 많은 곳이었다. 음식점, 당구장, 술집, PC방 등등 모두 그리웠다. 하지만 대다수가 바뀌었다. 그래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으로 남겼다.

돌아오는 길은 버스를 타기로 했다. 마침 바로 와서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들을 바라보며 계속 꾸벅꾸벅 졸았다. 중간에 깼더니 이제는 아들이 졸고 있었다. 참 많이 닮은 부자사이다.


내가 아들과 지하철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사실 대화를 하고 싶어서였다. 어릴 때 그토록 잘 따랐던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거리 둘 때 사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분명 필요했다. 예전과 똑같지는 않지만 이렇게 지하철을 타고 말을 나누고, 함께 걸으며 보낸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 아이가 커서도 마음속에 많이 남으리라 믿는다.


다음 여행지는 조금 멀리 가보려고 한다. 이제 지하철로도 갈 수 있는 춘천이었다. 봄바람이 짙어지면 여행을 떠나 공지천도 크게 한 바퀴 돌고, 맛있는 닭갈비도 먹고 와야겠다. 봄은 떠나기 좋은 계절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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