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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ug 16. 2023

가족 여행 중 문득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

휴가란 단어가 낭만적으로 다가올 때

몇 층이더라. 식탁 위에 놓인 영어로 된 안내문을 살폈다. 36층 라운지였구나. 내용 안에는 저녁 5시부터 7시까지 라운지 이용 시 주류를 포함 음료와 간단한 샐러드바가 무료였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가족 여행 중 여유였다. 어제 타이트한 일정으로 심신이 지친 상황에 아내는 아이와 쇼핑몰에 가겠다고 했고, 나는 피곤해서 방에서 쉬겠다고 했다. OTT를 켜놓고 졸다 보다를 반복하던 중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


핸드폰과 이어폰, 패드를 주섬주섬 챙겨 엘리베이터를 탔다. 라운지 안에는 테이블이 몇 개 없었지만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창가 쪽에 자리가 있었다.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경치에 잠시 취했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메뉴판을 보았다. 분위기 상 와인이 좋겠네. 내심 오면 이걸 시켜야지 하는 레드와인을 마음속에 담았다.


'What do you want?"

"Please, this one."


영어를 잘 못하지만 그저 띄엄 들리는 단어를 따라 손가락만 가리키면 되었다. 내가 고른 와인은 'south africa'였다. 전에 마신적이 없었지만 긴 문장들 속에서 유일하게 아는 것이었고, 대충 그쪽 나라에서 생상 된 와인이지 싶은 직감 때문이었다.


유리잔에 빨간 와인이 채워졌고, 샐러드 바에 가서 견과류, 치즈, 과일 등을 챙겨 왔다. 본격적으로 패드를 켜고 글쓰기에 돌입했다. 오른에는 백인 노부부가 느긋이 대화를 나누며 칵테일을 한잔하고 있었다. 그러다 왼쪽 편에 한 무더기의 동양인  중년의 남녀들이 자리 잡고 시끌벅적 대화를 나누 시작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멜론에서 여름에 듣기 좋은 재즈를 틀었다. 잔잔한 음악이 귀를 타고 온몸 가득 퍼졌다. 이제 좀 글에 집중할 수 있겠네. 얼마 전 쓰기로 결정한 소설의 등장인물에 관한 뼈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언젠가 소설의 한 인물의 세우기 위해선 백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번째 만에 막히고 말았다. 럴 땐 과감하게 패스하고 다음 캐릭터로 넘어갔다. 다시 돌아오면 되니깐.

잔이 비면 와인이 채워지고, 글이 막히면 눈앞에 펼쳐진 야경을 바라보며 잠시 머리를 식혔다. 문득 이 순간이 무척 낭만스럽게 다가왔다. 가족들과의 여행에서는 늘 무언가 같이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여유를 즐길 때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에 가장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으니 이제야 휴가 본연의 단어에 충실한 듯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 모두 챙기는 순간.


두 시간의 시간, 두 잔의 와인, 그리고 다섯 명의 인물을 완성했다. 어느덧 창 밖은 까만 하늘에 밝은 불빛들로 가득했다. 좀 더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가족들이 돌아올 시간이 다 되었네. 빈 잔을 따르려는 손에 "NO'로 답하며 일어섰다.

귓가에 흐르는 이소라의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dons'는 내가 가진 작은 시간에 선물과도 같았다. 못내 떠난 자리를 뒤돌아 바라보며 라운지 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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