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말하는 대화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JTBC드라마 중, 갈등구도의 대화속에서 손을 보여줌으로서 그 관계를 더 긴박하게 나타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대사와 함께 손의 움직임은 연기자들의 감정을 더욱 끌어올리는 도구가 되어 극의 긴장감을 더욱 높이는 편집을 볼 수 있었다. 손은 물건을 집거나, 가리키거나 하는 역할외에도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소통의 수단으로도 사용할 수가 있다. 이기소와 함께 한 우드카빙 워크샵에서 만난 손의 움직임에서도 참가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12월 중순, 팹랩제주의 네트워킹 파티에서 만난 이기소. 그곳에서 이기소의 우드카빙 워크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흔쾌히 참석했다. 새로운 작업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새로운 공간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나에게는 여행을 가기 전에 느끼는 기대감과 같은 느낌이었다. 19일, 장소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새로 오픈한 [사계생활]이었다. [사계생활]의 직원분들과 외부참석자를 포함하여 4명의 수강생들과 이기소가 함께하는 공간은 매우, 아담하고도 소박한 공간에서 자리를 잡았다.
워크샵은 목공 수작업으로 개인 생활도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길다란 손잡이에 납작하고 작은 머리로 저을 때 쓰는 머들러키트, 버터를 자를 때 쓰는 버터나이프키트, 볶음용 주걱인 스파툴라키트, 머들러보다는 큰 머리로 구성된 롱스푼키트를 가지고, 참가자들과 이기소가 함께 목공수업을 시작했다.
이번 우드카빙 워크샵에서 사용된 키트의 목재는 레드시더(red cedar)였다. 부드럽고, 향기가 진한 목재로 카빙과정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목공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도 쉽게 다룰 수 있는 목재이다. 북미에서 주로 생산된다(이기소는 그 중에서도 친환경적으로 수집된 목재들을 주로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이기소에서 알려주는 우드카빙 시, 주의해야 할 기본사항들을 보면,
하나. 나뭇결을 이용하여 뜯기지 않도록 조각을 한다. 핸드카빙의 경우, 구조상 쉽게 뜯기거나 조각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결을 확인하면서 작업하기를 추천한다.
둘. 조각칼(끌)등의 도구가 손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몸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조각방향을 신경쓴다.
이기소의 우드카빙키트의 좋은 점은 기본도안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아이템의 기본도안에 대한 커팅선이
디자인되어있어, 제품의 두께와 각도, 곡선등은 작업자가 원하는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기본도안에서의 기본조각이 끝나면, 커팅선을 눌러서 떼어내어 제품이 될 부분을 가지고 후가공을 하면 된다.
키트에서 떼어내는 작업 이후에는 본격적인 조각과정에 들어간다. 떼어낸 조각에 다시 연필로 기본스케치를 해서, 손잡이와 머리부분의 두께과 곡선을 예상해놓는다. 깊이가 깊으면 사용할 때 힘을 받기에 위험할 수 있고, 얕으면 그립감이 불편할 수 있으므로, 약간 여유있는 스케치를 해놓은 후, 조각을 하면서 조각을 더 해나가는 것이 요령이다(스케치는 키트에서 떼어내기 전에 작업할 수 도 있다).
세심한 부분을 다듬을 때 쓰는 조각칼로 형태를 잡아가고, 일반칼과는 달리 각도가 더욱 기울어져 있어, 세밀한 부분의 터치를 가능하게 해주고, 깊은 각도까지 작업할 수 있는 구조를 가졌다. 조각끌은 동그랗게 파낼 수 있는 역할로, 두툼한 부위를 칼보다 크게 덜어내고, 살짝 들어가야 할 깊이를 만들어 음식이나 물건을 떠올릴 수 있는 형태를 만들수 있다.
모양새가 완성되어 가면, 이제는 사포로 연마작업을 통해 조각작업으로 생긴 거친부분을 정리하고, 부드러운 면을 만들어준다. 조금 더 완성도가 높아지고, 아마추어의 카빙키트가 전문가의 손길을 받은 것 같이 되는 과정이다. 나의 손이 만들어낸 결과이지만, 놀라움이 커지는 순간이랄까? 연마작업은 센 굵기의 사포로 먼저 작업 후, 작은 굵기의 사포로 마무리하는 단계를 거치면 된다(사포에 적혀있는 숫자가 작을 수록 거친작업에 사용하고, 숫자가 클 수록 미세하게 마무리하는 작업에 사용한다).
워크샵의 전과정에서 우리는 손의 움직임이 보여주는 대화의 기술을 더욱 느껴볼 수 있다. 조심하게 다치지 않고,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신중함과, 내 손으로 직접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 만들어질 수록 나타나는 모양에 대한 놀라움과 쾌감, 그래서 스스로에게 주는 대견함 등, 말없이도 작업자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손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작업을 마치는 데 까지 2시간의 시간이 걸린다. 될까? 예쁘다. 하는 기대감과 설레임을 시작으로 손을 움직인 결과이다. 내가 만든 작품으로 내 생활의 일부를 만들어보는 시간. 쉽게 하지만 소중하게 보낸 2시간은 단순하게 지나치는 여행보다는 뜻깊고, 뿌듯한 여행의 시간이 될 것이다. 하면서 참가자분들은 "완성되가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 매력이에요.", "자연속에서 함께 작업한다면 더 의미있을 것 같아요.", "연마작업을 할 수록 느껴지는 레드시더의 향에 즐거웠어요."라면서 소감을 나누기도 했다.
시간을 내서 여행하고 참가한 분들이지만, 그만큼의 소확행을 얻어간다고 했던 분들. 그 분들의 찻자리와, 버터와 볶음과정속에서 그 감정들은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