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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네시스 Sep 04. 2023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4

요테이산을 보러 니세코로

2일 차의 일정은 원래 오전 중에 시로이코이비토파크를 관람하고 오후에 오타루로 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날 시간이 남아서 그 일정을 당겨 썼기 때문에 2일 차 오전 일정이 비어버리게 되었다. 계획을 세워두고 자려고 했었는데 조사를 하려고 준비만 한 상태로 잠들어버렸다. 일어나 보니 배 위에서 태블릿이 들숨날숨과 함께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배에서 떨어지지 않은 걸 보면 꼼짝하지 못하고 기절을 했던 듯하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쯤이었다. 이불도 덮지 못하고 잤더니 온몸이 얼음장이었다. 삿포로 겨울이 무섭다던데 가을이었지만 간접 체험을 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아무튼 눈을 좀 비비고 오전일정을 고민하다가 전날 비행기에서 보았던 후지산같이 생긴 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부랴부랴 조사해 보니 산 이름은 요테이산이었다.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고 부른다고 하는 걸 보니 제대로 찾은 듯싶었다. 요테이산을 보기 좋은 곳을 찾아보니 니세코의 타카하시 밀크공방이라는 곳이 경관이 아주 좋다고 했다. 구글지도로 검색해 굿찬이라는 곳을 경유하여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코스를 추천받았는데 거리가 좀 있어서 그런지 택시비가 무시무시했다. 택시를 탈 때 타더라도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타고 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싶어 좀 더 알아보았다. 타카하시 밀크공방에 좀 더 가까운 니세코역까지 이동한 뒤에 택시를 타는 것으로 검색했더니 한결 부담이 덜했다. (동계에는 굿찬에서 가는 버스도 운행하는 듯 하지만 이 당시는 검색이 되지 않았다.) 가장 일찍 갈 수 있는 열차를 알아봤는데도 오전 7시가 좀 넘어야 출발하는 것으로 나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샤워실을 쓰는 사람이 없어 여유 있게 뜨끈한 물로 몸을 한참 지지고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삿포로시내를 한참 걸어 삿포로역으로 향했다. 여전히 교통비를 아껴야겠다는 알량한 생각으로(어제 일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 삿포로역까지 걸어가다 보니 힘은 들었지만 풍경이 좋았다. 특히 사람이 없는 깔끔한 풍경사진을 선호하는 내게 최적의 시간이었다. 찬바람이 제대로 불기 직전의 가을 홋카이도라 단풍이 든 잎사귀들이 아직 나무에 매달려있어 거리가 깔끔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삿포로가 근현대에 들어와서야 개척된 계획도시라서 도로가 사통팔달로 쭉쭉 뻗어있었던 점이다. 하지만 이런 깔끔한 도시구획 뒤에는 원주민들의 슬픔이 있다. 



스스키노를 지나 삿포로역으로, 사방으로 뻗어있는 삿포로의 도로



홋카이도는 원래 아이누족이라는 일본 본토인들과는 좀 다른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문화도 생김새도 다른 사람들이었고, 일본 본토에서도 북쪽의 추운 땅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15세기에 이르러 홋카이도 아래쪽에 일본인들이 건너와 자리를 잡고 쇼군으로부터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들은 아이누족으로부터 생선과 모피를 받고 무기를 포함한 금속제품이나 쌀 등을 팔았는데, 독점적인 거래였던 데다 상당히 강압적이어서 아이누족으로부터 큰 반란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19세기에 이르러선 완전히 복속되어 식민지화된 데다 학살이 병행된 민족문화말살정책이 시행되어 세력이 크게 쇠퇴했다. 본토인들은 아이누족을 덜 진화한 인간으로 취급했고 한때는 "홋카이도에는 곰과 아이누가 산다."라고 교과서에 실려서 학생들이 아이누를 동물의 일종으로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누인들은 홋카이도뿐 아니라 러시아 쿠릴열도 등에도 퍼져 살고 있었는데, 한때는 러시아에서도 탄압당했지만 쿠릴열도의 영토분쟁(일본의 북방영토라는 주장 VS 러시아의 쿠릴열도라는 주장)이 일어나면서 러시아가 갑자기 아이누족의 지위를 인정했고(그렇게 함으로써 쿠릴열도에 살고 있던 아이누족이 러시아인이니 그곳이 러시아땅이라는 논리를 주장) 일본도 허겁지겁 아이누족을 원주민으로 인정하며 대응했다. 이래저래 국제정세에까지 자신들의 의견과 상관없이 취급되고 있는 모습이다. 참고로 홋카이도의 지명들에서 아이누어를 자주 살펴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삿포로는 "커다란 마른 강 = 평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오타루는 "모래 사이 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럼 둘 다 강으로 끝나는데 왜 발음이 다르지?)  


삿포로 시계탑을 지나가려 하는데 도로를 향한 표지판 뒤쪽에 검은 리본이 붙어있었다. 아마 전날인 10월 31일이 핼러윈이라서 누군가가 입고 있던 옷에서 떼어 붙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일본은 핼러윈에 꽤나 진심인 나라 중에 하나다. 20년도 더 전부터 핼러윈이벤트를 성대하게 하고 있다. 사실 본래 핼러윈의 의미는 상당히 희석된 상태라 이제는 인싸들의 코스튬플레이 데이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단체주의가 강한 일본에서 평소 자신의 모습과 다른 분장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닐는지. 그런데 검은 리본을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생각났다. 출국하기 이틀 전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겐 저 리본이 마치 근조리본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원인을 밝히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서로를 헐뜯으며 화낼 상대를 찾기 이전에 무엇보다 인간 된 도리로서 아까운 젊은 생명이 사라진 데 대한 애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검은 리본 앞에서 나는 잠시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홋카이도 시계탑 근처 검은 리본



삿포로역으로 가는 길에서 드디어 시계탑을 만났다. 현 홋카이도대학의 전신이었던 삿포로 농학교의 연무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처음부터 이곳에 건축된 것은 아니고 다른 자리에 있던 것을 옮겨심었(?!)다고 한다. (일본은 가끔 보면 천수각도 옮겨 짓고 한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인 옛 건물이라서 막상 직접 보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랜드마크로 유명하다. 일부러 보러 갈 생각은 없었는데 지나가다 발견하고는 안 볼 수 없었다. 랜드마크의 이름이 되는 시계탑 자체는 생각보다 작은데, 그래도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사방으로 보이는 시계가 학교 중앙에 있었으니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시계도 잘 보이게 놓아줬는데 지각을 해? 라면서 꾸중을 한다던가.)




삿포로 시계탑


이 건물의 또 하나의 특징은 붉은 오각별 마크다. 오각별마크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벌 중 하나이기 때문에 혹시 홋카이도에 공산국가가 들어선 적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니 크게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있어 언급하고자 한다. 19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홋카이도를 통치하기 위해 홋카이도에 개척사가 설치되었다. 본토와 북해도는 바다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해운의 필요성이 생겼고, 외국형 선박들을 수입해서 이 수요를 채웠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일본에서는 외국형 선박에 국기와 번(지역토호)기를 걸도록 규정이 되어있었다. 개척사는 번이 아니라서 따로 깃발이 없었던 관계로 부랴부랴 마크를 만들어 제출했다고 한다. 이때 만든 것이 푸른 바탕에 붉은 오각별이 새겨진 북진기다. 깃발을 입안한 사람은 에비코 스에지로 란 사람인데 하코다테의 고료카쿠를 설계한 다케다 아야사부로의 제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북진기가 고료카쿠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항해에 있어 방향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홀로 빛나는 별인 북극성을 모티프로 했다는 설도 있는데 둘 다 영향이 있었겠거니 싶다. 후에 칠각별로 변경하고 싶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만든 지 반년도 안되었는데 뭘 바꾸냐며 정부로부터 퇴짜를 맞았다고 하는데, 이 칠각별은 후에 홋카이도기로 부활하게 된다. 아무튼 홋카이도의 상징이 된 오각별은 삿포로 시계탑에도 새겨져 있지만, 개척사에서 만든 맥주회사의 심벌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삿포로맥주이다. 그래서 삿포로 맥주병과 캔에도 오각별이 있고, 맥주박물관이나 팩토리 건물에도 오각별이 새겨져 있다. 구 홋카이도청 건물에도 있고 아무튼 홋카이도에서 옛 건물인데 오각별이 있다 하면 위와 같은 유래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금 의외였던 것은 삿포로역이 있는 스텔라플레이스 전면의 거대한 시계면에 새겨진 별들에도 위와 같은 유래에서 기인한 오각별들이 있다는 점이다. 홋카이도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관심이 있다면 아래의 링크를 읽어보면 좋겠다. 



https://hokkaidofan.com/hokkaido-flag/ 



때마침 공사중이던 구 홋카이도청사



요테이산을 보기 위해 먼저 오타루행 열차에 탑승했다. 홋카이도의 서북쪽 바다를 스치듯 지나가기 때문에 바다풍경을 보기 위해 오른쪽 자리를 예매했다. 이렇게 해변을 달리는 열차를 타게 되면 어느 쪽 좌석에 앉아야 하는지 미리 알아두는 것도 여행의 작은 팁이라면 팁이다. 햇빛을 받으면서 가면 이마가 너무 뜨겁기 때문에 창가 쪽이 동쪽인지 서쪽인지도 따져보는 것이 좋다. 이건 버스, 비행기, 열차 어디서든 통용되는 팁이다. 넘실거리는 바닷가를 바로 옆으로 두고 달리는 풍경은 각별했다.





사람을 잔뜩 실은 열차가 오타루역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이 대거 내리는 걸 보면 아마도 관광객인듯 싶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곧바로 오타루를 관람하고 싶었지만 니세코에 다녀온 뒤로 미뤄두어야 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굿찬역으로 가는 열차로 갈아탔다. 이 시기에 굿찬행 열차를 타는 사람은 아주 소수의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현지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타루까지는 그래도 삿포로역에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도시권이었지만 그 뒤로는 정말 산골짜기 길을 구불구불 두량짜리 열차가  헤치고 지나가는 산골짝이었다. 역간 간격이 길어서 그런 건지 겨우 두량짜리 열차주제에 안에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지나가는 길이 얼마나 깡시골이었나 하면 이따금씩 길게 자란 나뭇가지가 열차 전면을 때리고 지나갔고, 유심이 LTE는커녕 3G도 잡지 못하는 구간이 꽤나 길게 지속될 정도였다. 이런 산골짜기에 열차노선이 지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역사도 나무로 지어진 것이 많아 내가 열차를 탄 것인지 타임머신을 탄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 즈음 굿찬역에 도착했다.   



오타루역에서 환승하여 굿찬역으로 향했다
굿찬역
굿찬 역전
굿찬역에서 바라본 요테이산



굿찬역에 내려서 니세코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하는데 시간 간격이 있어 30분 정도가 붕 떴다. 어디 멀리까지 나가기는 애매한 시간이라서 역 밖으로 나와 근처를 어슬렁거려 보았다. 인구 1만 5천의 작은 도시지만 역은 꽤나 컸다. 상주하는 사람들 이외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좀 되는 곳이라는 뜻이리라. 주로 겨울철 스키를 타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했다. 내가 갔을 땐 눈이 아직 오지 않은 때였으므로 이용하는 승객이 적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역 앞으로 길게 뻗은 도로를 보며 속이 뻥 뚫리는 체험을 하고 있을 때 저쪽 구름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구름이 짙어서 그냥 어두운 곳인가 했던 것이 사실은 산이었다. 자세히 보니 내가 목적지로 하고 있는 요테이산이었다. 1,898m의 높이로 홋카이도에서도 다이세츠잔 국립공원의 연봉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비록 후지산의 높이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주변에 높은 산 없이 홀로 솟은 화산의 위용이 대단했다. 산 정상 부분은 본격적으로 구름에 묻혀있어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래도 산 정상 주변에서 물안개 같은 김이 모락모락 이는 것이 신비로웠다. 전체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으면 싶었지만 날씨가 좋지 못한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다. 니세코에 가는 동안 조금 날씨가 개지나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만 있을 뿐이었다. 짧은 어슬렁을 끝내고 열차시간이 되어 니세코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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