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Xeuda 싱글 "푸른 밤"
2023년 6월 싱글 “푸른 밤”이 발매되었습니다. 전년도 11월에 정규 앨범을 내고 공식 발매한 첫 음원입니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평온한 날의 기억이 담겨있어요. 아래는 곡을 쓰기 전에 먼저 적었던 글입니다.
7월엔 지방 일정이 많아 일주일에 3일가량을 외지에서 지냈다. 집도 고양이도 몸도 마음도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었다. 주 3-4회 하던 운동인 클라이밍을 주 1회로 줄이고, 대신 아침에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7월 말 즈음엔 그마저도 할 시간이 나지 않아 그냥 그렇게 아무 운동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 딱 하루, 아니 엄밀하게는 반나절의 여유 시간이 생긴 날, 결국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운동 가자고.
2시간가량 땀나게 클라이밍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벽에 매달리니 정신이 점차 또렷해지고 몸이 서서히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내가 어쩌다 이렇게 운동광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고된 운동이었으니 꽤 묵직해진 몸을 이끌고 테라스가 있는 카페로 향했다. 해야 할 일과 앞으로의 일정이 산적한 상황에 ‘참 팔자도 좋다’며 스스로 자책하면서도 또 애써 외면하고 카페에 앉아 친구와 한참 수다를 떨었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있었던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친구와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던 적이 언제더라, 고 생각 했던 건 기억이 난다. 그저 몹시 더운 여름이었고, 우리는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카페테라스에 앉아 맞은편 담장에 피어오른 담쟁이를 보며, 다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잠시나마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지금 이곳이 그 지긋지긋한 서울이 아닌 것도 같았다. 여름날은 너무 더웠고, 너무 푸르렀다. 몸은 고되고 날도 뜨겁고 커피도 미지근했는데, 심지어 말도 많이 했는데 이상하게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수영을 마치고 나올 때만큼이나 시원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정말 개운하게 놀았다.'라고 메모장에 적었다. 더운 바람이 불었다.
‘푸른 밤’은 작년 8월에 만들었던 노래입니다. 애쓰며 살아내는 삶의 순간을 잘 기억하고 싶다며 음악을 써왔던지라 보통의 노래엔 어쩐지 처연한 마음이 많이 담기곤 하는데요. 이 곡에서는 그저 제가 느꼈던 평화로움만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여태까지 쓰던 노래와 다른 코드, 다른 주법을 사용해 만들었고 가사에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도 써보고, 조금 더 높은 음으로 멜로디를 작곡하며 보컬의 질감을 가볍게 표현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만들고 나서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던 음악이에요. 떨리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을 때의 긴장이 아직도 손에 잡힐듯 합니다. 그간의 음악에 비해 너무 가볍거나, 너무 다르게 들리지는 않을지 걱정됐거든요.
그동안 저는 내면의 불안함, 막막함과 같은 감정을 마주하고 그 응어리를 풀어내는 방법 중 하나로 음악을 대해왔습니다. 한풀이 일기장 같은 음악을 누가 사랑해 줄지, 또 왜 사랑을 해주는지 의아해하면서요. 그런데 거의 처음으로 내면의 응어리가 아닌 그저 친구와 함께 나눴던 하루를 음악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이게 맞나?’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곡의 모티브가 되었던 7월의 어느 날, 정말 개운했거든요. 몸과 마음은 지쳐있었지만 그 찰나의 시간엔 서울에서 느껴본 적 없는 평온함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음악으로 기록해두니 힘들 때마다 이 음악을 들으며 잠시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의심이 돼도 별 수없이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도 음원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친구와 나의 하루를 나누는 것. 예전에는 잘 하지 않던 일이었습니다. 온전한 나의 곁을 내주는 일도 잘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무리 좋아하는 친구라도 나중에, 언젠가, 같이 할 ‘일’을 만들어서야 겨우 만나곤 했어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일을 만든다며 일을 하는 자신을 더 좋아한 것도 같아요. 친구와의 만남마저 생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고 나니, 나의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이 다 후회가 되었습니다. 만나고 싶을 때라는 것은 없고 일부러 시간을 쓰고 곁을 나누는 것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행복한 만큼만 타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내가 곁을 내어주기로 결심한 순간 그제야 자신의 곁을 내어주는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친구들은 언제나 제게 곁을 내어주었지만 제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싱글을 발매하며 곡 소개에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노래가 되었다’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제 안에서 노래가 되기까지. 여기까지 오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30대에 접어들고서 겨우 이 챕터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닥쳐오는 불안과 막막함에 무너지고 부서지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요즘은 또 한 번 제 인생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기분이 듭니다. 목뒤에 잔뜩 들어간 긴장이 친구의 어깻짓 한 번에 스르륵 녹아내리는 것도 같아요.
노래를 만들고 친구에게 보냈더니 그 날의 대화가 그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제 친구의 푸른 밤은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p/ChPWs5mvw-s/?igshid=MTIzZWMxMTBkOA==
"푸른 밤" 듣기 : https://youtu.be/EIFWQJINB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