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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별 코멘터리 3

05 + 06

by 쓰다 Xeuda

05 어떤 날


곡을 만들 당시 저희 집 앞에는 “비둘기 모이 제공 금지”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제 방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건물 밑 담벼락에 붙어있는 현수막이었어요. 그 현수막에는 작은 글씨로 ‘비둘기가 당당한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모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친절히 덧붙여있었습니다. 저는 그 한 문장이 너무 기이하게 느껴졌어요. 이미 이 도시 자체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어올린 기이한 공간인데, 이 안에서 비둘기 보고 무슨 생태계의 일원이 되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깔끔하고 푸릇푸릇한 디자인의 현수막에 제법 친절한 말투로 적힌 글이었는데 오히려 정말 폭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멍하니 창문 밖을 구경하고 있었는데요. 어떤 사람이 그 현수막 앞에서 주변 눈치를 살피며 어물쩍 어물쩍거리고 계셨습니다. 왜 저러실까 싶어서 계속 쳐다봤는데 주변을 슥 둘러보시더니 무언가를 바닥으로 툭, 툭 버리시더군요. 잘 안 보여서 자세히 쳐다보니 주먹만 한 빵을 조금씩 뜯어가며 바닥에 부스러기를 뿌리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비둘기들이 날아와서 그 부스러기를 먹기 시작했어요. 저는 우리 동네에 그렇게 비둘기가 많았는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른 비둘기들이 흩어지자 그분도 또 주변 눈치를 살피다 주섬주섬 사라지셨어요. 그가 나타나 모이를 주고 비둘기들이 먹고 사라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첩보물을 본 듯한 기분에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만 바라봤어요.


도시를 짓고 인간들이 모여 삽니다. 수많은 사람이 살고 수많은 빌딩이 있고 차도 많고 각종 조형물도 많고 불빛도 참 화려한데 어쩐지 갈수록 인간의 삶은 외로워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은 어쩌면 이 도시에 살아있는 생명이라곤 인간 혹은 인간이 키우는 동물뿐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나마 남아있던 비둘기, 고양이, 쥐마저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000009.JPG 사진 강다현 @riverdhh


06 사라진 얼굴


마지막 곡에서 드디어 사라지는 방법을 떠올립니다. 슬프고 공허한 마음. 마음껏 화를 내고 소리치고 괴로워하고 기대와 환희로 가득했다가 다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런 다양한 감정이 나의 얼굴에 다 서리고 나면 그때는 까만 얼굴만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색도 이것저것 섞다 보면 결국은 까맣게 되듯이 말이죠.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노래를 만들 즈음 한 스님 댁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아주 옛날이라 정확한 단어와 문장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마음에 파도가 요동쳐도 마음은 큰 바다이니, 큰 물에서는 아무리 파도가 쳐도 결국엔 고요해지니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간다는 말을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마음은 바다이고 감정은 파도라는 말이 주는 울림이 오래 남아있습니다. 이 곡에 마지막 가사를 “파도처럼 밀려온 어느 날 / 사라진 얼굴들”이라고 적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곡을 만들 당시에는 말씀처럼 고요한 평화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까만 얼굴이 남은 상태는 불안정하고 공허한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흐릿하고 허망한 마음으로 앨범이 마무리가 됩니다.


1번 트랙부터 6번 트랙까지 비올라가 주된 악기로 함께 하는데요. 마지막 곡에서는 클라리넷이 등장합니다. 프로듀싱을 맡아주셨던 분이 클라리넷을 연주하셨던 분이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악기기도 했지만 관악기가 담아내는 사람의 호흡이 긴 한숨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어떤 날 M/V : https://www.youtube.com/watch?v=PGQp916ND98


구구구구 구슬픈 비둘기

그마저 사라진 도시

내뱉은 숨이 또 돌고 돌아

다시 그대로 삼켜지네요

냐아아앙 애처로운 밤이면

외로운 고양이 소리에

창문을 닫은 그 사람은

외로운지도 모른 채 살아가네요

희뿌연 하늘에는 어떤 마음도 그릴 수 없지만

반짝이는 저 불빛에 그는 또다시 잊어버려요

구구구구 구슬픈 비둘기

그마저 사라진 도시

내뱉은 숨이 또 돌고 돌아

다시 그대로 삼켜지네요

희뿌연 하늘에는 어떤 마음도 그릴 수 없지만

반짝이는 저 불빛에 그는 또다시 잊어버려요

구구구구 구슬픈 비둘기

그마저 사라진 도시

내뱉은 숨이 또 돌고 돌아

다시 그대로 삼켜지네요

진부하고 또 지루한 하루

이렇게 또 흘러가네요



사라진 얼굴 : https://www.youtube.com/watch?v=kGZq4iPI178


미소 짓는 얼굴

슬퍼 우는 얼굴

화를 내는 얼굴

기뻐 웃는 얼굴

모두 다 사라져버린 이곳에 남은

까만 얼굴

찬란했던 얼굴

기대에 찬 얼굴

상처받은 얼굴

겁에 질린 얼굴

모두 다 사라져버린 이곳에 남은

까만 얼굴

사라져

사라져

사라지고 사라지는

사라진 얼굴들

파도처럼 밀려온 어느 날

사라진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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