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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 Xeuda Sep 20. 2024

보컬 녹음이 끝났다 / D-43

틈틈이 쓰는 쓰다 2집 작업기록

  보컬 녹음이 끝났다. 매일매일 걱정의 연속이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끝냈다. 녹음을 하면 할수록 긴장이 풀려 몸도 마음도 괜찮아졌으나 차마 걱정덩어리 마음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녹음하는 동안 사진도 글도 못 남겼다. 이렇게 다 끝나고 나면 꼭 아쉬워 그때 뭐라도 남길 걸 싶은데, 불안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땐 그저 숨 쉬는 것도 버겁다.

겨우 한 장 찍어놓은 녹음현장. 카코포니(보컬디렉, 녹음)와 김명환(프로듀서)

  불안과 우울이 빠져나간 나의 목소리는 아직도 조금 어색하다. 아마도 마지막 트랙이 될 자장가를 녹음하며 최대한 힘을 빼고 불렀더니, 녹음을 받아주던 카코포니가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는 부드럽게 불러야 하는 건 맞지만, 정말 강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여야 할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쓰다에게 불러 준다고 생각하고 불러볼래요?”

자장가 가사 초안

  녹음을 하다 보면 노래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공연을 하다 어느새 잠깐 잊어버리기도 하는 마음을 다시 끄집어 내 완전히 그 감정과 상황에 몰입해야 비로소 본 녹음이 시작된다. 음정, 박자. 아무리 기술적으로 잘 맞았다 한들 그때의 마음이 불러와지지 않으면 단 한 소절도 쓸 수 없다. 내 몸을 완전히 돌아 나와 그날의 기억, 감정, 냄새, 색깔까지 전부 튀어나와 작은 녹음 부스 안을 가득 채웠을 때 그제야 OK 사인이 떨어진다. 신기한 것은 나만 느끼는 그 감정을 듣는 사람도 함께 느낀다는 것. 과학적으로 영영 설명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녹음실 안에서는 빈번하게 벌어진다. 그렇게 나의 공기를 한껏 머금은 노래가 음원이 되고 앨범으로 묶여 세상에 나간다. 매번 신기해하면서도 매번 까먹고 만다. 다행히 포니가 그 마음을 다시 불러주어 무사히 노래를 마쳤다.

이번 녹음의 일등공신 프로폴리스 사탕 : 가창력 +3

  보컬 녹음이 끝나면 엄청 후련할 줄 알았는데 어째 마음에 큰 동요가 없다. 그래도 해낸 것을 축하하고 싶어 참았던 술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커피도 빵도 많이 먹었는데 온전히 기뻐하질 못하고 금세 또 걱정의 굴레의 빠져버렸다. 이쯤 되면 그냥 이게 팔자려니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끝난 건 신나!

 오래전 친구와 설악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친구가 루트를 짜서 정확히 어떤 코스로 다녀왔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3박 4일의 일정 동안 내내 오르락내리락했던 게 기억난다. 차라리 올라가기만 하면 좋겠는데 조금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고 겨우 한 봉우리 넘었나 싶으면 또 내려가고.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데 이미 한참 올라와버려 내려갈 수도 없고. 그냥 꾹 참고 땅만 보고 오르락내리락 한참 하다보니 어느새 정상에 올라있었다.


 앨범 작업은 봉우리 많은 산을 종주하는 것과 같은 걸까? 그럼 나는 지금 울산바위를 보러 가는 길이라 생각했다. 안갯속에 파묻혀 웅장한 자태를 뽐내던 울산바위의 경이로움을 영영 잊을 수가 없다. 걷자. 그냥 참고 걷다 보면 어딘가로 분명 도착하겠지. 그날에 보게 될 풍경이 또 나를 살아가게 할..까?


자장 자장 쉼 없이 노래를 부르고 먹은 광기의 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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