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쓰는 쓰다 2집 작업기록
* 펀딩 마감 하루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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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드디어 믹스가 끝났다. 끝났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단 끝났다. 이제 더 이상 0.5와 1사이의 미묘함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온세상이 나노단위로 쪼개지는 경험도 끝이다. 아쉬움도 미련도 끈덕지게 남아 영원히 해소되지 못할 찝찝함을 남겼으나 그것도 벌써 미화된 추억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끝이다 끝 끝.
음악을 만드는 건 쉽다. (아니다) 가만히 누워있다가 갑자기 떠오른 영감에 기타를 집어들고 몇 개의 코드를 딩동거리다보면 가사도 멜로디도 뚝딱 만들어진다. 몇 번의 연습과 몇 번의 녹음이면 원하는 노래를 얻는다. 그렇게 만든 노래를 음원으로 만들어 발매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
제법 무던한 성격이라 조금 모자라거나 넘쳐도 대충 못본 척 넘기는데 도가 텄음에도, 믹스만 들어가면 생전 집착하지 않던 사소한 디테일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1초보다도 작은 단위의 시간, 정말 티도 나지 않는 EQ조정 +0.5, 리버브의 양과 크기, 작은 숨소리 하나하나 토할 것처럼 잡아내고 있다보면 대체 이게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옆에서 나보다 더 변태처럼 미세하게 마우스를 움직이는 명환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확실히 정규는 싱글이나 EP와는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에 더 디테일하고 더 사소하게 더 광적으로 듣고 또 듣는다. 쭉 듣고 다시 듣고 짤라 듣고 나눠 듣고 바꿔 듣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보면 어느덧 10차 믹스.
그렇게 듣다 귀가 단단히 절여져 더이상의 판단이 어려울 때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뮤지션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다. 친구들은 나와 비슷하게 느끼고 해결방안도 함께 고민해주었다. 보컬 녹음을 받아주었던 카코포니는 믹싱 방향에 대해 더 디테일하고 짜릿한 피드백을 해주었는데, 초반 믹스를 먼저 듣고 이후 10번의 수정을 거친 음원을 듣더니, 역시 믹스는 10번은 수정해야 좋아진다는 코멘트를 얹어주었다.
이후 정말 모든 곡이 10번의 수정을 거쳤다. 어떤 곡은 14차 수정까지 갔고, 어떤 곡은 그에 못미치고 마무리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10차는 거뜬히 넘겼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수정의 개념은 최종 저장이 10번이라는 뜻이지, 중간에 계속 수정되는 것은 포함을 시키지도 않은 거라, 그러니까 “사말가_최최최종의최종_최_종_123459009990.wav” 쯤 되는 셈이다. 너무 비효율적인 디테일에 집착해서 체력을 갉아먹는 건 아닌가 싶다가도 마법처럼 10번을 넘기자마자 아름다워지는 음원을 듣다보면 자꾸만 욕심이 났다. 믹스는 숙성해야 제 맛이라잖아 조금만 더 해보자. 마지막에 마지막엔 시뻘개진 눈으로 리버브 0.25%를 조정하다 그만 껄껄 웃고 말았다. 이제 됐다. 더 하면 진짜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어.
이쯤 명환을 괴롭히고 나니 퀭한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너털웃음이 났다. ‘누나 잘못 만나 고생이 많아..’ 작게 읖조리니 명환은 ‘같이 고생하는 거죠...’ 하며 힘차게 돌아섰다. 우리의 첫 믹스는 어디로 가게 될까. 부디 아름다운 음원으로 돌아와라.
*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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