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는 일상의 힘 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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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에게.
사실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몇 달 전이에요. 10여 년의 서울살이를 끝내고 얼마 전, 강원도 춘천으로 이사를 왔거든요. 그보다 더 전에는 뇌출혈이 있었고요. 삶이 변하는 속도에 따라가기가 여간 쉽지 않아 어지러워하던 중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묻더군요. "다시 태어난 기분이 어때?"라고요. 저는 잠시 생각하다 싱겁게도, "심심해"라고 했어요.
그것도 그럴 것이 제가 겪은 "뇌출혈"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비해 지금의 저는 대단히 오랜 기간 투병한 것도, (저는 1년 정도?)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의 후유증이 남은 것도, (머리 묶을 때 잘 안 보이긴 해요!) 생명의 위협도 (다시 터질 수도 있지만 죽지는 않는대요!) 없으니 말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다시 태어났으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도,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별일 없는 저녁을 먹는 삶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거창하게 적었던 버킷리스트가 되려 죽음 앞에서는 무용해지는 이 기분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까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친구가 그래요.“오히려 그런 이야기가 더 위로가 되는데?”라고요. 죽다 살아났다고 해도, 갑자기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사람보다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탈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자긴 더 좋다면서요.
그런가요? 이렇게 별일 없는 일상이 더 재밌을까요? 하지만 그러려면 저의 응급실 썰과 중환자실, 마비된 눈으로 울면서 썼던 일기가 먼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춘천에서의 요양생활도 이야기해야 하고..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고민이 되네요. 아직 시간은 많고 저는 느긋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얘기해 볼게요. 그간 있었던 일도 전해야 하고요.
지난주에는 드디어 3월 발매될 싱글 ‘봄이 오면’의 음원 발매 자료를 유통사에 넘겼습니다. 싱글은 정규앨범과는 다르게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가볍게 끝내곤 했는데요. 이번 곡은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내 친구 도마에 대한 곡이라 그런지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노래를 만들면서 울었고 가사를 쓰면서도 울었고 부르면서도 울었고 발매해야겠다 생각하고도 울었고요. 노래를 녹음하면서도 울었습니다. 진짜 안 괜찮은데 별 수 있나요. 보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보일 수도 없고 어떡하나 망연자실, 벌려놓은 일은 있으니 해야겠지만, 그 앞에만 서면 어찌할 줄을 몰라 울고만 있는 거예요.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니 그냥 언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라던 도마의 말이 또 생각나더랍니다.
너무 슬프지 않게 부르려고 억지로 밝게도 불러보고 다른 생각 않고 그저 음정이나 박자를 생각하면서도 불러보고 그렇게 이리저리 불러봤는데 영 애매하다는 반응을 보이던 스튜디오 감독님과 프로듀서 명환. 어찌저찌 겨우 해내고, 얼추 나온 것 같으니 그냥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불러볼게요- 하고 부른 마지막 테이크에서 또 울고 말았습니다. 눈물을 참느라 노래를 어찌 불렀는지도 몰라서, ‘아 이 녹음은 못 쓰겠다’생각하며 녹음실을 나왔는데 글쎄 두 분의 표정이 아주 밝더군요. 지금까지 부른 것 중에 이 버전이 제일 안 슬프게 들렸다나요? 그래서 보컬 녹음은 그걸로 마무리가 되었어요.
참 이상한 일이에요.
이제 발매 자료를 넘겼으니 정말 이 곡은 제 손을 떠났습니다. 슬픔은 저를 떠났어요! 글쎄요. 아마 저기 *시장통에 갔다가 밥 짓는 냄새에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또 편지할게요.
내일은 끼니 대충 때우지 마시고 갓 만든 따끈한 밥 꼭 지어드시길!
쓰다
https://www.youtube.com/watch?v=zozkdSeG7jY
*도마 - 소녀와 화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