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깡, 그 이후
와이프가 며칠 전 나를 평가하기를 '기본적으로 웃는 상이지만, 참 빵터져서 웃는 것은 못 본 것 같다'는 라고 했다.
나는 어제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가 씻는 둥 마는 둥하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켰다.
아무생각없이 켠 유튜브 메인화면에서 '1일 1깡'이라는 영상을 접하게 되었고, 한동안 그렇게 까지 웃을 일이 없던 나는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고, 나를 한심하게 보는 와이프에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데굴데굴 굴러가며 웃었다.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비'는 전설적인 존재였다. TV 드라마, 음악프로그램, 예능, 심지어는 할리우드 영화까지, 소속사였던 JYP에서는 '비'가 소속사를 나가게된 이유를 '비'한 명을 관리하는데 거의 회사의 모든 자원이 투입되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소속사 연예인들을 위해서였다는 취지로 이야기 한것이 기억날 정도로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그의 인기와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대학생 시절 나는 어느 작은 (사장님 포함 전 직원이 5명 정도인) 회사의 인턴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휴양지로 유명한 어느 국가의 관광청 소속 한국 사무실로, 관광 관련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도 사장님과 모든 직원분들이 외부 행사로 자리를 비운 한가한 날,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여기 '비'인데요"
너무나도 뜬금없고 앞뒤없는 자기소개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네? 비요?"
뭔소리인가 하고 나는 되물었다.
"네, 가수 '비' 정지훈씨 사무실입니다"
뭔가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상대방은 태연하게 설명을 했고,
"아 네 무슨일이시죠?"
나는 흠칫 놀랐지만 차분하게 통화를 이어 나갔다.
요는 '비'가 해외에서 화보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해외 촬영지가 해외 휴양지 중 어느 곳이며, 화보촬영이 이루어지면 해당 휴양지의 홍보효과가 클 것이고, 그것에 대해 혹시 회사에서 지원이 가능한지였다.
일개 인턴인 내게 결정권이 있을리 만무했고, 보고를 해야겠지만, 한국사무실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고 해당 국가의 대사관이나 본청에 보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나도 모르게,
"아 그럼 '비'씨를 소개하는 이력서랑 어떤 내용의 계획이 있는지 기획서를 제출 해주시고, 지원 요청하시는 사항을 메일로 정리해서 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너무나도 태연하게 대답을 해버렸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정리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료 보시고 회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상대방도 굉장히 공손히 대답을하고 전화를 마쳤다.
나는 순간 '월드스타'에게 이력서를 달라고 하다니, 내가 지금 무슨 일을 벌인건가.' 싶었다.
그리고 1시간 뒤, 가수이자 영화배우, 탤런트 '비'의 소개 '이력서'가 메일로 도착했다.
이력서라기 보다는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파일이었다. 하지만 영문으로 꼼꼼히 작품에 대한 소개와 이력을 잘 정리해서 보냈고, '월드스타도 이런 소개가 필요하구나' 하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사장님과 직원분들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장님, 한 건 했습니다"
하고 운을 뗐고, 전화 내용과 받은 이력서와 소개자료를 사장님께 보고했다.
여자 직원분들은 환호를 하며 왜 하필 본인이 자리를 비운 때에 그런 전화가 왔는지 안타깝지만 잘했다며 칭찬을 했다.
사장님도 격앙된 어조로 매우 기뻐하며 본인이 본청과 대사관에 연락하여 지원받을 수 있을지를 타진해보겠다고 했다.
그 이후에 대사관과 본청에서는 화보 촬영에 필요한 시설들에 대한 지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인턴이었던 나는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월드스타의 이력서를 요구하고 받았다는 무용담이 남았을 뿐이다.
비의 '깡'이라는 영상은 너무나도 '비'스러운 곡과 안무다. 하나도 바뀌지 않은 10몇 년전 우리가 열광한 그의 무대다. 하지만 몇 번의 좋지 않은 흥행성적의 작품을 통해 화려한 조명은 사람들의 조롱섞인 댓글로 시달리게 되었다. 딱히 조롱이라고 볼 수 없는 것들이, 사람들의 보는 시각이 바뀌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느낀 점들을 댓글에 담은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요새는 적당히 힘을 빼고 무대를 어기적 휘저으며, 비트에 반 템포 정도 엇박으로 귀찮은 듯 내뱉은 랩이 멋지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터질듯한 피지컬에 입술을 깨물고 관절이 나갈듯한 팝핑은 확실히 최근의 트렌드와는 다른 방향이다.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비'가 앞으로 어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지, 다양한 활동으로 '부캐'의 원조격이었던 그가 이 시대에서 어떤 '부캐'로 다시 한번 대중의 사랑을 받을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