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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작가 Nov 02. 2020

엄마와 딸, 프리셉터와 프리셉티

어느덧 3년 차가 된 내 동기이자 절친 S가 병원에서 슬슬 프리셉터 교육을 받고 프리셉티를 양성하라는 압박을 받는다는 얘기를 했다. “뭐, 벌써? 네가?”라고 얘기했지만 내 예전 부서만 생각해봐도 내 동기들이 슬슬 프리셉티를 키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프리셉터는 신규 간호사를 일대 일로 담당하는 선임이자 OJT 담당자이다. 


내 절친 S 은 뭐랄까, 병원 일에 익숙해져서 이제 큰일이 터지지만 않으면 무사히 퇴근할 정도로 일이 늘긴 했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실수하고 진땀 빼고 보고서를 쓰기도 한다. 나보다 반년 가량 입사를 늦게 했지만 그래도 입사 동기인지라 첫 병원에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내 모습이 지금쯤 저렇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그런 S가 프리셉터를 한다니, 대단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S보다 몇 개월 앞서 들어온 S의 동기들은 이미 프리셉티들을 양성중이라고 했다. 부서의 프리셉터를 맡은 동기의 부탁을 받고 프리셉티 한 명의 핵심 술기를 봐준 적이 있었는데, 답답해 죽을 뻔했다고 한다. 정말 프로토콜 순서에 맞춰서, 손 씻기를 30초 이상 하라고 하면 30초를 셀 듯이, 느릿느릿 천천히, 하나하나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속이 탔다고 했다. 


“조금 더 빨리할 수는 없을까?” 

겨우 참다 참다 도저히 참지 못한 절친 S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프리셉티를 매번 데리고 다니며 가르치고 기다려주는 동기가 대단해 보였다고 한다. 절친 S의 동기는 첫 번째로 가르치는 프리셉티에게 다들 애정이 생긴다던데, 너무 힘들어서 애정이 생기지도 않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얘기를 듣고 나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프리셉터 선생님이다. 나는 5월 말에 입사를 했는데, 내 동기 Y와 H는 바로 5월 초에 입사를 했다. 우리 부서는 병원에서 제일 큰 간호간병 통합 병동이었는데 내가 올해만 해도 10번째 신규 간호사였기 때문에 더 이상 신규 간호사를 가르칠 프리셉터 간호사가 없었다. 그래서 3년 차였던 내 프리셉터 선생님과 프셉 쌤 동기들이 나와 내 동기들의 프리셉터가 되었다. 입사 시기가 굉장히 비슷했기 때문에 선생님들끼리 가끔 누구 프리셉티가 더 잘하는지 경쟁도 했었지만, 공동 육아처럼 서로의 프리셉티들을 많이 챙겨주며 가르쳐 주셨다.     


 3년 차인 선생님들은 본인 담당 환자 간호도 약간은 버거웠을 텐데, 우리들을 가르치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고 눈치가 보였을까. 쉽고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다시 공부하고, 어떻게 하면 잘 알려줄지 정말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다.     


신규 시절, 나는 요령 없는 프리셉티였다. 실수가 많거나 아예 감을 못 잡은 편은 아니었다. 눈치는 조금 없고 일은 부족해도 하라는 과제는 다 해가려고 애쓰는 어정쩡한 신규 간호사. 열심히는 하지만 문제는 내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느렸다는 것. 나를 기다려주면서 프리셉터 선생님은 엄청 답답했을 것이다. 프리셉터 기간이 끝나고 차지-액팅으로 독립하기 직전 프리셉터 선생님은  “너 그렇게 느리면 안 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내 기준 최선을 다했고 빨리 한다고 한 건데, 그렇게 말해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독립을 해보니 정말 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를 기다리던 프리셉터 선생님 마음은 어땠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완곡하게 돌려 말한 것이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프리셉터 선생님은 얼마 안 되는 내 장점을 칭찬해주려 애쓰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면 그래도 옆에서 은근히 도와주시며 나를 응원했던 것 같다. 프리셉터가 태워서 병원을 나간다는 신규 간호사도 있는 마당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누군가 간호사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 했다, 미숙하고 늘 힘들게 하는 존재로 집중 감시의 대상이 되던 신규가 몇 년이 지나서 중간 연차가 되면 새로운 신규를 답답해한다. 또다시 몇 년이 지나면 모든 걸 끌어안고 갈 수 있는 윗년 차가 된다. 프리셉티가 되어 처음으로 병원에 입사하던 순간 우리가 불과 몇 년 뒤면 프리셉터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프리셉터를 맡는 연차가 되었다.      


나는 대학병원에서 퇴사를 하고 상근직을 선택했다. 그래서 아마 다시는 누군가의 프리셉티도 프리셉터도 될 기회가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누군가의 간호사 인생에 첫 방향을 잡아주고 도와주는 일. 프리셉터는 정말 멋있는 사람인 것 같다. 이제 프리셉터가 될 내 동기 선생님들은 개구리가 되었어도 불과 몇 년 전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며 프리셉티를 이해하고 안고 갈 수 있는 프리셉터들이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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