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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작가 Oct 29. 2020

새로운 과로만 옮기는 이유

간호사의 진로 고민은 어떨까

처음 부서였던 부인암 병동은 수술과 항암치료가 있어서 외과와 내과의 특성을 모두 가진 부서였다. 학생 간호사 일 때 나 스스로가 내과 체질인지 외과 체질인지 굉장히 불분명했다. 내 기준에선 꼼꼼하고 설명 잘하면 내과, 손이 빠르고 거침없으면 외과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뭔가 애매한 경계에 있었다.      


특수부서와 그다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했는데 그 이유는 이상하게도 중환자실과 수술실 같이 폐쇄된 공간에 있으면 어지럽고 속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환자실 실습에서는 폐쇄된 공간에 오래 서있어서인지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 앞이 하얗게 시야가 흐려졌다. 수선생님이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보고 잠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휴식을 취하다 오라고 할 정도였다.     


첫 부서로 희망하던 부서는 신생아실과 정신과 병동이었는데, 둘 다 T.O가 너무 적어 쉽게 자리가 나지 않았다. 결국 부인암병동에서 일하면서 내과와 외과 특성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고 업무 능력이 폭발적으로 늘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했지만 나와 찰떡궁합인 부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부인과 관련 난임센터, 산부인과 병동으로 부서이동을 하는 다른 간호사들과 달리 안과 외래로 부서이동을 결정했다.     


안과는 일해 보기 전까지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는데, 부서 이동 전에 외래 수선생님, 간호국장님과 두 번의 면담을 했다. 안과 외래 일은 외래는 쉬울 것이라는 내 기대와 달리 굉장히 어렵고 힘든 편이라며 각오를 보여주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국장님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무슨 일이 있어도 3개월은 다니겠다고 약속을 했다. (사실 그때 깨닫고 도망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약속한 기간의 두 배인 6개월은 버텼으니 약속은 지킨 셈이다.


안과는 마이너 파트이지만 굉장히 바빴다. 외래 파트 중에 거의 유일하게 당일 접수는 불가능하고 예약환자만 진료하는 곳이었다. 안과가 어려운 이유는  파트 별(녹내장, 백내장, 각막, 성형안과, 망막)로 수술/검사방법/산동제 사용 여부 등이 다 다르다는 거였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검사를 다 마치고 들어가야 하고 질환에 따라 필요한 검사를 받도록 미리 체크하고 처방을 넣고 안내하는 것까지 다 간호사의 일이었기에 매우 어려웠다. 가끔 안과에 헬퍼로 온 선생님이나 일한 지 얼마 안 된 선생님이 산동 금지인 환자들에게 망막 진료를 본다는 이유로 산동제를 준다던가 하는 실수들이 있었다. 이런 경우 그 날 필요한 다른 검사를 못할 수 있어서 반드시 주의가 필요했다.      


메인 진료실인 소아안과의 사시와 고도근시 관련한 검사, 처치들도 자세히 알아야 했다. 소아안과는 안과 과장님이 담당했는데,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과장님은 병원 전체에서 '마녀'로 통했다. 꼼꼼하고 정밀한 건 기본이고 아이들이 검사 협조가 되지 않으면 날카로운 말투로 짜증을 내서 보호자들도 얼어붙게 했다. 이런 과장님 진료 방을 담당하면서, 예민하고 똑똑한 보호자들을 상대로 정확하고 알기 쉽게 가림 치료와 안경처방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했다. 


안과에서 일하며 안과 자체가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은 안 해봤지만 일단 응대하기에 숨이 가쁠 정도로 환자가 많아서 체력이 힘들었다. 또한 동시 접수와 동시간대 예약 시스템으로 인해 외래 환자 대기 시간은 상상초월로 오랜 시간이었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습관처럼 말해야 했다.     

전공의들끼리 의사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정말 죽기 살기로 싸우며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는 전공의 둘 사이에 끼여서 고래들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을 봐야 했다. 안과가 오죽 힘들었으면 차지 선생님도, PA 선생님도 모두 힘들어서 안과를 떠나 부서이동을 하거나 퇴사를 해버렸다. 내가 일하는 6개월 동안 차지 선생님이 3번 바뀌었으니 나는 오히려 오래 버틴 편이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새로운 직장과 특히 새로 도전할 직무에 대해 생각해봤다. 외래와 환자 응대 자체는 매우 잘 맞았고 내 응대로 인하여 컴플레인이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바쁘더라도 퇴근 후에 더 이상 환자 생각이나 내 뒤를 받은 간호사 선생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워낙에 새로운 일을 좋아해서 CRC나 검진 센터로의 이직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집과의 거리, 급여, 직무 내용 등을 생각했을 때 다시 외래, 하지만 다른 파트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형외과 외래를 선택했다. 지금도 정형외과가 내 최종 정착지 일지는 스스로도 모르겠다. 정형외과는 빠르고 과감하다. 외상 전문 병원이어서 일수도 있지만 응급실과 상당히 닮았다. 지금껏 일해왔던 세심하고 많은 설명이 필요한 부서들과는 많이 달랐다. 같이 일하는 간호사 선생님은 나한테 내과 체질이라고 한다. 목소리도 조곤조곤하고 행동도 외과처럼 크고 과감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저 내과 체질 아니거든요, 완전 외과 체질이거든요,”라고 발뺌하지만 여러 응급상황들과 역동적인 액팅에 지칠 때면 나 스스로가 내과가 더 잘 맞지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아직 suture (봉합술) 어시스트할 때 컷을 하면 가끔은 실 길이가 들쭉날쭉 이 되어서 과장님에게 혼나기도 하고, 석고붕대나 스플린트를 수선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못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도망가고 싶어 지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신규일 수 없음을 안다.  많이 혼나더라도 일찍 혼나고, 일찍 배우는 게 분명 낫다. 아직은 용기를 내야 할 때다. 처음에만 해도 피가 뚝뚝 흐르는 심한 외상 환자를 보면 얼어붙곤 했다. 그래도 이젠 허벅지가 톱으로 잘려 근육과 뼈가 훤히 보이는 환자도 혼자서 거뜬히 1차 처치 후 수술방으로 보내곤 한다.


다음엔 언젠가 또다시 이직을 한다면 정신과로도 가보고 싶고, 전혀 다른 새로운 부서에도 가보고 싶다. 한 분야의 엄청난 전문가, 경력자는 아니지만 나처럼 두루두루 여러 분야를 아는 간호사가 필요한 곳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부서를 경험하다 보면 나와 소울메이트 처럼 잘 맞는 부서를 발견할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부서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간호사이기에 가능한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사가 다양하고 재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인 multi potentialite (멀티 포텐셜라이트)라는 단어가 있다. <모든 것이 되는 법>의 저자 에밀리 와프닉이 제시한 개념이다. 이런 다능인들은 관심이 있는 일도, 재능을 가진 일도 많아서 직업 결정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빠른 적응력과 통합 능력을 갖고 있다. 나 역시 다능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길고 넓은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지금은 별개의 점 하나를 찍고 있는 것이지만, 결국에 여러 점들이 모여 하나의 직선, 항로를 개척해 갈 것이다. 한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지도 못했고, 꾸준히 한 우물을 파온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 뒤를 돌아보면 나만의 길이 완성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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