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하는 꿈은 꾸고 싶지 않아
역학조사 간호사의 하루
역학조사팀에서 일하게 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역학조사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업무에 투입되는 역학조사관의 80%가 넘는다던데 기간제 간호사인 나에게 역시 그런 체계적인 교육은 없었다.
첫날 간략한 교육을 제외하면 특별한 교육도 없었고, 처음에 뭘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첫 확진자의 전화번호를 누르던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래도 나보다 한 달쯤 먼저 들어온 기간제 주임님들이 옆에서 알려주셔서 일처리가 많이 늘었다. 겨우 업무를 숙지했는데 다음 주부터는 또 새로운 업무도 추가되었다. 새로운 업무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매일 일이 지루해질 틈이 없다. 매일같이 새로운 지침이 업데이트되고, 양식도 매번 바뀌기 때문에 업무 카톡방을 수시로 체크하며 새로운 지침을 숙지해야 한다. 카톡방을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찾아보고 새로 업데이트된 내용 아는 것이 있는지 옆자리 주임님들과도 계속해서 공유한다.
근무 시작하고 첫 일주일 간 확진자가 폭증했다. 역학조사가 간소화되기 전이라 일일이 통화하면서 역학조사를 해야 해서, 매일 할당받은 업무를 다 하려면 야근을 해야 했다. 기간제 근무라서 야간수당도 없었는데 말이다. (대신 다음날 1시간 늦출 가능)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존의 역학조사 체계로는 확진자 수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고, 확진자가 직접 역학 조사지를 입력할 수 있는 편리한 자가 기입식 역학조사 체계가 나왔다. 유선으로 전화할 때는 의사소통 오류로 이름이나 주소가 오기재 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젊은 확진자들은 자가 기입식 시스템에 훨씬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나를 비롯한 MZ 세대 일부는 통화와 같은 의사소통 방식을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낯선 사람과 음성으로 소통하는 것보다 텍스트로 소통하는 것이 편할 때가 많다.
물론 60-70대 이상 고령층들은 자가 기입식을 하는데 여러 번의 시도를 해도 오류가 나거나 맘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아서 조금 기다리다 전화를 걸면 반가워하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업무 초반에 젊은 층들에게 자기 기입 문자를 먼저 보내 놓고 고령층 확진자 분들께 일일이 전화를 돌린다. 어르신들에게 불편함을 오래 드리고 싶지 않아서 이때 업무처리는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하려 한다.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역학조사 인력을 충원해도 업무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오냐며 화를 내는 확진자의 전화를 받을 때면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왜 매일 고군분투하면서도 죄송할 수밖에 없는지 마음 한편이 텁텁해지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간호사 일과 닮아있기도 하다. 반복되는 업무와 근무 내내 이어지는 똑같은 통화를 하다 보면 가끔은 나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사무직이 다 이런 건지, 아니면 그저 더 많은 확진자의 역학조사 일을 빠르게 쳐내야 하는 내 업무가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역학 조사하는 꿈을 꾸는 역학조사관들의 비율이 굉장히 많다는 글을 본 적 있는데 일이 주는 중압감 때문일 것 같다. 나 역시 근무를 시작하고 며칠간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아직 역학 조사하는 꿈을 꿔본 적은 없지만, 꿈에서 만큼은 다른 꿈을 꾸고 싶다.
간호사로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코로나 19 대응 컨트롤 타워인 보건소에서 역학조사 업무까지. 코로나와 관련 업무와 점점 가까워지는 중이다. 밖에서 바라볼 때와 현장 안에서 체감하는 현실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 안에서 보고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을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