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로컬병원 이직과 인간관계
대학병원에서 퇴사하고 집 근처 로컬병원으로 이직했을 때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신입인 나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예전 병원에서는 사는 곳, 연애 중인지, 휴일에 뭘 하는지 등등 사적인 부분까지도 나에 대한 관심이 넘쳐났는데 여기서는 전혀 물어보는 것이 없었다. 사실 처음 입사했을 때나 취업 전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는 '일만 하자' 주의였기에 직장 내 친목도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적인 부분을 물어보는 동료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사적인 부분을 말하면 괜히 약점 잡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소위 말하는 관심종자는 아니지만 대학병원의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내 문화에 익숙해져서 인지 새로 만난 팀원들의 무관심이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들이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둘째치고 내가 마치 곧 퇴사할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만 모르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내 앞에서 하고 나를 제외하고 퇴근 후 약속을 잡곤 했다. 약간의 충격을 받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소외된다는 것이 특별히 낯선 감정은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회사를 다녔다.
그들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로컬병원은 잠시 거쳐가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한 달 정도 일해보고 퇴사하는 사람도 많았고, 몇 년 다녔던 사람들도 더 좋은 병원을 찾아 떠나가기도 했다. 그런 환경에서 '대학병원 경력을 갖춘 젊은 간호사'는 언제 떠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으로 비쳤을 것이다.
떠나갈 사람이 아니고, 이 직장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배정된 업무 외의 일들도 좀 더 나서서 했다. 어차피 부서의 막내고 등 떠밀려서 하느니 내가 먼저 하자라는 생각이었다.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든 호감이 된다. 병원에서 '일 인분 이상 일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1인분의 일'을 못하는 사람은 신입, 막내, 챙겨줘야 할 대상이지만, 1인분의 일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한 명의 팀원이 된다. 항상 바쁘고 일손이 부족한 병원에서 슬프지만 일을 잘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중요하다.
회식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수선생님,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과 어울리며 술을 따라드리고 그들이 권하는 술을 마셨다. MZ세대지만 술을 좋아해서 그런지 간호사들과 병원의 술 좋아하는 회식문화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술자리에서 회사 얘기, 일 얘기, 사는 얘기를 하고 그 순간 만이라도 더 돈독해진다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시간이 꽤 흘러서인지 나는 어느덧 그들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오래 병원을 다닌 사람들이 들려준 병원의 속 사정 이야기, 병원장님의 가족사, 예전에 병원을 거쳐갔던 사람들의 이야기까지도 주섬주섬 들어서 알고 있을 정도였다. 이 로컬병원에서 일 년 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근무했지만 꽤나 잘 스며들어 있었다.
새로운 병원에 입사해서 기존 직원들 만의 세상이 있는 것 같고, 나만 소외되는 느낌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 될 수 있고,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이 더해지면 어느새 그들의 울타리 안쪽에 들어와 있을 것이다. 물론 몇몇 악의적인 사람이 의도적으로 소외를 시킨다면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기존 직원들은 신입을 소외시키려 하는 게 아니라 관심과 애정을 줄 에너지가 메마른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