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의 소멸은 그것이 대표하던 시절과의 이별이기도 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엄마와 함께 하이마트에 가서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샀다. 당시 하이마트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이라는 곡에 “시간 좀 내주오. 갈 데가 있소”하는 가사를 입힌 광고를 내보낼 때였다. 그 광고 때문에 전자제품은 당연히 저기서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친구들과 쉬는 시간마다 무슨 신들린 듯이 그 노래를 불러댔으니 하이마트에서 샀던 CD 플레이어는 CM송에 대한 일종의 저작권료였던 셈이다.
내가 샀던 CD 플레이어는 파나소닉에서 나온 SL-CT489V이라는 모델이다. 중국에서 만든 게 아니라 일본에서 직접 만들어 들여온 거라고 했다. 유식한 말로는 Made in Japan. 가격은 무려 20만 원이 넘었다. 나는 음악만 들으면 되기 때문에 몇만 원이라도 더 싼 걸 살까 망설였다. 하지만 엄마는 빠듯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강남 애들한테 기죽지 말라”며 제일 비싼 제품을 사주셨다. 비싼 값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다는 듯 상자에는 온갖 기능이 일본어로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직원에게 들어보니 하루 종일 재생할 수 있다, 충격에도 쉽게 재생이 멈추지 않는다, FM/AM 라디오도 청취할 수 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머리를 굴리며 그 잡다한 기능들이 내게 가져다줄 효용을 계산했다. ‘이걸로 아침마다 <굿모닝팝스> 같은 방송을 들으며 영어공부를 하면 되겠구나’ 거금을 치르고 나오는 순간까지만 해도 라디오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후회한 건 아니다. 디자인만으로도 충분히 제값을 했기 때문이다. 은색 바탕에 액정화면 주변만 검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외관은 마치 배트맨의 자동차를 보는 것 같았다. 사실 그 차는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뭔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 위에 CD 플레이어를 올려놓고 좌우로 기울이다 보면 서걱서걱하며 CD가 벅차게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음악이 끊이진 않았다. 역시 일제다. 나는 감탄을 마지않았다. 친구들의 CD 플레이어 중에는 들고 다니다 보면 이따금 음악이 튕기는 것도 있었다. 우리는 그걸 ‘뻑 난다’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적어도 그런 거로 스트레스받았던 기억이 없다. 엄지손가락보다 굵고 긴 리모콘은 투박하기에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제법 실용적이었다. 가방에 넣어둔 CD 플레이어를 꺼낼 필요도 없이 버튼만 누르면 앞뒤로 곡을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재생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표지에는 25시간 동안 재생된다고 해놓았지만 실제로는 그 절반도 가지 못했다. 그때는 그 재생시간이라는 것이 자동차로 치면 마치 고속도로 정속주행 연비와 같은 것이라는 걸 몰랐다. 최소한의 소리 크기로, 아무 조작도 하지 않고 켜놨을 때의 재생시간. 그것은 불가능한 가정이었기에 나는 산요의 AAA 사이즈 충전지 한 팩을 들고 다녔다. 밤새 4알을 충전해 아침이 되면 학교로 들고 갔다.
나는 이수영의 발라드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녀의 앨범 하나를 CD 플레이어에 넣으면 몇 날 며칠을 주구장창 그 노래들만 들었다.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다른 앨범으로 갈아 끼웠고, 또 그것마저 지겨워지면 다시 예전 앨범으로 돌아갔다. 음악을 다양하게 듣기 위해선 여러 장의 CD를 들고 다녀야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도 귀찮았다. 이수영의 목소리만 종일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부지런한 친구들은 수십 장의 CD를 앞뒤로 쿠션이 있는 휴대용 CD 케이스에 넣어서 가지고 다녔다. 케이스의 지퍼를 열면 마치 지폐계수기에서 돈이 촤르르 쏟아지는 것처럼 CD들이 나타났다. 간혹 그 CD들이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에이브릴 라빈 같은 팝가수들의 앨범으로 채워진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 CD 케이스의 구성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이나 취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걸어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조금 수고롭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CD 플레이어는 사실 수고라고 할 것도 없었다. X세대라는, 나보다 앞서 대중문화를 향유했던 사람들이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문명의 이기였다. 음악을 듣다가 테이프가 씹히는 일이 없었고,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었다. 3번 트랙을 듣다가 6~7번 트랙으로 단숨에 넘어가는 것도 용이했다. 작정하고 긁어대지 않는 한 카세트테이프처럼 많이 들었다고 망가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CD의 음질을 따라올 수 있는 저장매체가 없었다. 제 아무리 고음질로 다운로드한다고 해도 CD의 매끄러운 표면에 입혀진 소리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 파일들도 결국은 누군가가 CD에 있는 음악을 컴퓨터로 복사해 꺼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지개가 비치는 그 은빛 표면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서 어디까지가 1번 트랙일까, 타이틀곡은 어디쯤 기록되어 있을까 궁금함이 살아나곤 했다.
하지만 나는 2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산 CD 플레이어를 채 2년도 쓰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MP3 플레이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MP3 플레이어는 CD를 들고 다닐 필요도 CD-RW로 일일이 공CD를 구울 필요도 없었다. 그저 원하는 음악을 다운로드해서 기기에 넣기만 하면 되었다. 늘 같은 노래만 듣던 나와는 달리 유행에 민감한 친구들은 소리바다에서 거의 매주 신곡들을 다운받으며 재생목록을 업데이트했다. 그들의 손에 들린 파도 앞에서 나는 배트맨 자동차 같았던 CD 플레이어가 투박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CD 플레이어가 어학용이라는, 잊혔던 목적을 되찾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얼마 전 제주도청의 초청으로 제주도 이곳저곳을 둘러본 일이 있었다. 일정 중에는 컴퓨터박물관 방문도 포함되었다. 일행 중에는 2000년에 태어난 대학 신입생도 있었는데, 그는 컴퓨터박물관을 둘러보다가 신기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CD 처음 봐요”. 그 순간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하는 생각에 살짝 우울해졌다. 플로피디스크면 몰라도 CD를 처음 보다니. 하긴 여자였다면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의 앨범을 사면서라도 CD를 봤겠지만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게임은 다운로드로 즐기는 요즘은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뒤따랐다. 어쩌면 CD가 갖고 있던 효용의 상실은, 그것으로 대표되는 시절과의 이별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수 있나. 새로운 시대가 오면 과거는 추억으로 흘려보내야 하는 법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사를 전한다. 굿바이, 나의 CD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