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국적 남자와 연예를 시작하다
#2. 내 연애의 동조자, 술
나의 연애는 '밀당'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격이 급하고 한번 꽂히면 밀어붙이고
뭐든지 꼭 가져야 하는 성격 때문에
나의 연애는 항상 상대방을 연애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했고, 지치게 헸다
그래서 그 결말은 내가 차이는 쪽이었다.
주변에서는 좋은 말로
내가 어린 시절부터 여러 나라를 유학했던 경험 때문에
'아메리칸 마인드'가 강해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가장 길게 유학하고 그리고 석사학위까지 받아 온 나라는 '중국'이었는데 말이다.
연애 못지않게 오래 하지 못했던 것이 직장생활이었는데,
이건 내가 당당해서가 아니었고 언제나 나의 '눈치'보는 주특기 때문에
회사를 3개월을 다니고도 그 사무실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결국은 갑작스러운 마음의 반란과 함께 그렇게 갑자기 어느 날 퇴사를 해버렸다--이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표현법이다.
회사에서는 놀래긴 하였지만, 사실 재직 기간 동안 내가 그 회사에서 보인 딱히 뚜렷한 능력이나 업적도, 역할도 없었으니
한국에서의 나의 첫 직장 생활은 그렇게 깔끔한 마무리가 되게 해 주셨다.
-전남편, 그와의 첫 만남-
누군가 그랬다.
결혼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아! 나 왠지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든다고.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오고야 말았다.
전화통화에서 무뚝뚝한 중국 동포사투리를
강하게 쓰던 그.
퇴사 이후
중국어통역안내사로서 들어가게 된 모 여행사에서 수습과 교육기간이라는 명목으로 선배들의 투어에 실습을 하게 되었고
그중 한 명이 전남편이었다.
사전통화에서 살짝 매너가 없는듯한 말투에 반감을 가지고 나간 그와의 약속 장소에서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지만
왠지 이 남자와 결혼하게 될 것 같은 찰나의 번뜩이던 무언가가 느껴졌고,
나중에 물어봤는데
그는 전날에 술을 많이 마시고 정신이 없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술을 참 좋아했고, 젊었던 나 역시 그랬다.
'언제 술 한잔'이라는 문장은 술쟁이들에게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프리패스 티켓과 같았고 그래서 소위말해서 그를 꼬시는 일은 참 쉬웠고 빨랐다.
더 나아가
그가 나의 자취방인 오피스텔로 입성하기까지
난 더 이상의 그를 유혹하기 위한 어떤 과정도 노력도 필요 없었던 것 같다.
'술 한잔'
덕분에...
젊었고 철없던 우리는
하루를 멀다 하고 술을 마셨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던 그는 술과 함께면
수다쟁이였고, 나에게 웃어주는 다정한 남자로 변할 수 있었다.
난 그런 그가 너무 편하고 좋았다.
어떠한 밀당이라는 감정소비도 필요 없이
그냥 서로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딱 어울리는 사람을 찾은 것 같았다.
그렇게
행복 아니,,,
즐거웠던 시간이 흐르고
30대 중반이라는 애매한 나이의 나는
5살이나 연하였던 그에게 내 젊음을 한껏 표출할 수 있어 그저 즐거웠던 것 같다.
행복이라는 표현은
그렇게 불안정했던 나와 그와의 관계에서 절대로 쓰면 안 되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행복하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그냥 노력보다는 감정과 본능에 충실했던 것 같다.
그와의 연애는 신기하게도 9개월이라는 연애의 유통기한이 존재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 비자가 끝나려고 해서 중국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라고 통보를 했다.
아..
그는 비자를 갖고 한국에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신분인 사람이었다.
난 잠깐 고국으로 다녀오겠다는 그가 마치 내 곁을 평생 떠나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불안감을 느꼈다.
첫 만남에서부터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를 때까지 우리는 불같은 연애를 하긴 했던 것 같다.
나는 적어도 그랬던 것 같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쓰는 과거형 일기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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