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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활기와 낭만 가득, 상하이(上海)

여행은 때로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준다

by 이 희

나의 두 번째 중국 여행은 상하이였다. 첫 번째 칭다오 여행 때 경험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중국이었다. 이때 큐알코드 결제 시스템과 공유경제의 발달된 모습을 처음 접했고, 현대화된 도시의 모습에 반영된 중국의 발전 속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몇 년 전에 와봤던 상하이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졌다는 일행의 말을 통해서도 현재도 끊임없이 발전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발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직감했다.


상상보다 거대하고 휘황찬란한 세상을 보고 나니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느꼈다. 이때부터 나는 중국어와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배우고 싶어 졌다. 이렇게 상하이 여행은 나의 유학 결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여행이란,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

칭다오 여행을 함께 했던 중국 친구는 어느새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내고 있었고, 우리는 상하이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했다. 해외여행을 왔는데 현지 친구가 공항에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을 때의 설레는 기분이란. :)


반가운 인사 후 친구가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여행 첫날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우리는 숙소 측의 환영을 받기는커녕 외국인 손님은 들어갈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 처음엔 이유를 모르니 설마 한국인을 싫어해서 거부하는 건가 싶어 긴장도 되고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중국에서는 외국인 숙박 허가를 따로 받은 호텔만 외국인 손님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호텔 측에서는 중국 현지인이 국내에서 예약했기 때문에 내국인이 숙박하는 줄로 알고 예약을 접수한 것이다. 우리는 결국 밖으로 나와 우리를 받아 줄 다른 호텔을 찾아 헤맸다.

* 중국에 입국한 외국인은 24시간 내에 공안국을 찾아가 본인이 머무는 장소를 신고하는 주숙 등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서 호텔에서 여권을 받아 주숙 등기를 대신 처리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허가를 받은 숙소에서만 외국인 손님을 받을 수 있으며, 지인의 집 등 따로 정해진 숙소가 있는 경우에는 직접 공안국에 가서 신고해야 한다.


상하이 여행에서 이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경험은 DSLR 카메라를 잃어버린 일이다. 화장실에 들어가 카메라를 거치대에 잠시 올려두었다가 이를 깜빡 잊고 나와버렸다. 몇 분 정도 걷다가 손이 너무 가벼워 그제야 카메라를 놓고 온 사실을 알아챘다. 친구들과 서둘러 돌아가 보았지만 이미 그 자리에는 없었다. 혹시나 분실물로 처리되었을까 하는 희망에 건물 내 사무실과 중국 공안국까지 찾아가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나의 바보 같은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 누구를 탓하기도 애매했다. 내가 해외여행 중 경찰서까지 찾아가게 될 줄이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특별한 기회라는 것을 알면서도, 카메라 자체보다는 며칠 간 찍은 사진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 너무 속상했다. 이 도시를 좋아하게 된 만큼 카메라에 새롭고 멋진 풍경을 담았다. SD카드만이라도 빼서 다시 가져다 놓아주기를 바랐다. 혹시라도 그 정도의 양심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그 자리를 몇 번씩 다시 돌아가 보아도 소용없었다. 그 후로는, 경험을 통한 학습이 제대로 된 지라 자리를 벗어날 때 물건을 몇 번씩 다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정식 신입사원이 된 후 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구입했던 DSLR 카메라였다. 그리고 이젠 잃어버렸다. 이게 어쩌면 퇴사를 의미하는 복선이었을까?


- 동화 속에 들어간 듯한 특별한 경험

아시아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가보았다. 우리의 실수는 중국의 국경절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의 개천절과 한글날 사이의 샌드위치 휴가기간을 이용해 여행을 갔고, 중국은 마침 국경절이라 중국 친구와 일정이 잘 맞는다고 좋아하였으나 미처 그 영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입장료 가격은 평상시의 2배로 뛰었으며, 중국 각지에서 여행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입장 전 가방 검사를 위해 입구에서만 2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 (중국의 모든 기차역, 지하철역에서는 입구에서 짐을 보안 검색대에 올려 검사한다.) 놀이기구를 하나 타려고 해도 한두 시간 대기는 기본이었다.

* 10월 1일부터 7일까지는 중국의 가장 큰 공휴일인 국경절이니, 가격 측면에서나, 사람들로 붐비는 정도로 봐서 이 기간에는 중국 여행을 피하는 것을 추천한다.
20181004_114627.jpg < 상하이 디즈니랜드 >

힘겹게 입장한 디즈니랜드 안은 어딜 가나 깔끔하고 보기 좋게 화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단조롭지 않은 여러 색감의 화려한 건물과 조형물은 우리가 현실과 떨어진 동화 속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걸 수시로 일깨워 주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만화 속 주인공들의 퍼레이드를 보고는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아이처럼 흥분과 환호를 감출 수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만화 영화의 추억들을 모아놓은 하나의 큰 섬 같았다. 그 규모와 홀로그램 기술 등은 저절로 감탄사를 내뱉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비교적 짧은 대기 줄을 발견하고는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입장했다. 마치 영화관과 같은 내부를 보고 만화영화를 관람하는 곳인가 보다 했다. 이내 스크린에는 디즈니 캐릭터 ‘스티치’가 나타났고, 화면 속에서 관객들에게 말을 걸었다. 현장 직원이 관객들 중 한 명에게 마이크를 건네면 카메라가 해당 관객의 얼굴을 비추고, 화면 한 부분에 등장하여 관객이 직접 이야기 속 인물이 된다. 스티치는 농담을 섞어가며 관객과 소통했다. 물론, 중국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친구의 간단한 설명한 듣거나 남들이 웃을 때 따라 웃는 시늉을 했다.

남일처럼 웃으며 바라보고만 있던 그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중국어를 못하는 나에게 마이크가 오고야 말았다. 겉모습으로는 내가 외국인인 줄 몰랐을 것이다. 나는 말을 할 줄 모른다며 거절하려고 했지만, 친구는 이미 신이 나서 옆에서 알려줄 테니 시도해보라고 했다. 곧 스티치의 질문이 들려왔고, 옆 친구는 내게 ‘하오(좋아)’라고 대답하라고 했다. 난 그대로 대답했는데, 알고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스티치의 여자친구가 되어있었다. 스티치는 종종 내 이름을 언급하며 ‘장난스럽게’ (추측일 뿐이다. 내 이름만 알아들었지만, 다른 관객들과 친구들 모두 웃길래 재미있는 이야기인가 보다 했다.) 여자친구를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 앞에서 수줍음이 많은 나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했다. 하지만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내가 정말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저녁이면 레이저 쇼와 불꽃 축제가 열리는데, 이를 보기 위해 흩어져 있던 (국경절이기에 특히 더)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들었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 까치발을 들어가며 보았지만 하늘에서 펼쳐지는 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엔 충분했다. 덕분에 잠시 환상의 세계에 다녀왔던 추억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었다.


- 상하이 야경에 매료되다

황푸강을 따라 쭉 펼쳐진 와이탄(外滩) 일대는 영국 조계 시절의 영향으로 근대 서양의 모습과 닮아있다. 당시 상하이가 상업 도시로 부상하면서 외국의 은행 및 신문사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곧 중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20181007_185003.jpg < 와이탄(外滩) >

길게 늘어선 근대 건축물을 따라 걸어보고, 강 건너로 보이는 동방명주(东方明珠) 타워의 모습을 감상했다. 야경은 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사실 조명을 건물 전체에 둘러 만든 인위적인 아름다움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어둠 속에서 따뜻한 색감으로 빛나는 불빛을 보면 마음이 벅차오르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당시의 나는 당장 눈 앞에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음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라 야경 속에서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다시 찾아가 저녁 시간의 한가한 산책을 즐겼다.


-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운 예원(豫园)

예원(豫园)은 1559년부터 조성된 정원으로서, 제1차 아편전쟁 당시 건물이 불타버렸으나 1956년부터 보수하여 1961년 대중에게 개방했다. 정원 안으로 들어가니 중국풍 건물과 연못,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잘 가꾸어져 있어 여유롭게 산책하기에 좋았다. 평일 낮이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장표를 구입하고 들어간 정원 내부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상하이 대도시 속에서 이런 운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예원의 매력 중 하나이다.

저녁이 되면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바깥의 구곡교(九曲桥)에서 야경을 볼 수 있다. 건물을 장식한 노란 조명이 검은 밤을 밝혔다. 연못에 비친 물 그림자가 일렁이는 모습과 함께 감상하면 훨씬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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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원(豫园)의 낮과 밤 >

-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

나는 동행했던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 중국을 더 둘러보았다. 중국어를 할 줄 알던 친구들이 사라지는 순간, 편하고 즐겁기만 했던 여행은 곧바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로 다가왔다. 음식 하나 시키기도 버거워 사진만 보고 가리켜 주문했다가 샐러리가 잔뜩 들어간 괴상한 맛의 만두를 먹기도 했고, 물건을 구입할 때에는 눈빛과 표정을 최대한 풍부하게 살려 텔레파시를 보내야만 했다.


한 번은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본 중국인들이 내 쪽을 계속 쳐다보면서 웃으며 이야기했다. 내가 그 당시 알아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단어는 ‘한궈런(한국인)’이었는데, 그 외에는 좋은 이야기를 하는 건지 나쁜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찜찜했다. 분명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내용을 알지 못하니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얕은 지식은 위험하다더니, 아예 한 단어도 알아듣지 못했더라면 차라리 마음은 편했을 텐데 말이다.

그때 나는 중국어를 너무나 알아듣고 싶었다.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은 어떤 행동의 강력한 동기로 변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니어 보이는 사소한 일이 마음속에 널브러져 있던 의지에 불을 붙인다. 후에 유학을 와서도 왜인지 그 순간이 문득문득 떠올라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이제는 중국인들이 우릴 보고 한국인이라며 얘기할 때에도 그때와 같이 답답하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들 들어보면 ‘오, 나 저게 한국어인 거 알아들었다!’ 또는 ‘한국 드라마 진짜 재미있던데.’ 등 웃으며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과 신기한 감정일 뿐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님을 알기에 눈이 마주쳐도 웃음으로 눈인사를 할 수도 있었다.


- 긴 중국 여행의 시작

여행은 때때로 우리 인생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행은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생각에 대해 결단을 내릴 용기를 준다. 몇 달을 바쁘게 지낸 프로젝트를 마친 후 잠시 휴가 내고 온 상하이 여행이 퇴사로 이어진 경우처럼 말이다. 한숨 돌리고 돌아가서 다시 예전처럼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퇴사를 선언했다.


중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이는 더욱 긴 중국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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