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쪽으로 훑어가서 아래쪽으로 훑고 오거나, 아래쪽으로 갔다가 위쪽을 훑어 돌아오는 방법, 또는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갔다가 다시 대각선으로 돌아오는 방법 등..
사실 처음엔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을 떠나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내려간 후 앨라배마, 텍사스 , 뉴멕시코 등 국경을 타고 서부를 들어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같은 동선으로 우리보다 일주일 먼저 출발한 옆집 가족이 보내온 사진 한 장에 우린 노선 선회를 택했다.
차 안에서 네 식구가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차가 녹을 것 같아요!"
"피크닉은 엄두를 못 내네요, 차 안에서 에어컨 빵빵 히 틀고 점심 먹는 중..."
7월의 뉴멕시코는 그야말로 태양이 작열한다고 했다. 차 안으로 들이닥치는 더위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끙끙대며 겨우 결정한 동선이었는데, 다시 또 시작이라니.
"콘셉트를 정하자"
미국에서 보낼 수 있는 1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미국이 갖고 있는 광활한 대지가 항상 궁금했다.
높은 산, 그에 따르는 깊은 계곡, 단풍철이면 몰려드는 관광버스로 인해, 차마 성수기 단풍놀이는 엄두도 못 내는 우리나라와 달리, 인구밀도가 낮은 이 나라의 쾌적한 관광환경, 큰 땅덩어리가 갖고 있는 광활한 자연을 경험하고 싶었다.
하여, 정한 것이
"미국의 국립공원 투어"
3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20개 가까운 국립공원을 돌아보고 왔으니, 나름의 성과가 컸다.
우여곡절 끝에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에서 출발, 테네시주, 켄터키주를 지나 콜로라도에서 며칠 지낸 후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있는 몬타나 주를 지나 크루즈를 타게 될 1차 최종 목적지 시애틀로 향하기로 했다. 시애틀에서 크루즈를 타고 7박 8일간 알래스카 여행을 마친 뒤, 다시 시애틀을 출발해서는, 아래로 솔트레이크를 거쳐 Great Circle을 일부 돌고, 요세미티에서 3일을 머문 뒤,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캐년에서 일정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빨간색 루트로 기획했으나, 초록색 루트로 선회
7월 21일 금요일 – 여행 출발일
아침 일찍 세 아이들을 데이캠프와 프리스쿨로 보낸 뒤, 우리 부부는 열심히 남은 짐을 싸기 쌌다.
한 달간의 장거리 여행은 처음이라 이미 일주일 전부터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짐을 싸고 있었고, 출발 당일에는 그동안 리스트업 해두었던 준비물(?)들을 남편과 더블 체크하며 정리해나갔다.
가족여행을 자주 갔던 터라 이제 짐 싸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35일 일정의 여행을 준비하며 짐을 싸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아쉽지만 텐트 캠핑은 포기..
사실 한국의 캠핑 사이트는 참 좁다. 한두 시간만 지나면 생면부지의 옆 텐트 가족이 일행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미국은 캠핑사이트가 아주 넓고 캠핑족을 위한 인프라도 상당히 잘 마련되어 있다.
우리가 일 년간 지냈던 Chapel Hill 근처 Jordan Lake라는 곳의 캠핑 사이트는 (거짓말 좀 보태서) 축구를 해도 될 정도이다.
미국에서 뭘 하면서 보내야 잘 보낸 걸까 고민하던 나에게 캠핑을 권해준 친구가 있다.
거의 캠핑에 사활을 걸고 있던(?) 그 친구 왈(曰).
"야, 이런 곳에서 캠핑을 안 하는 건 죄악 아니냐?"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시작한 캠핑 라이프는 기대 이상이었다. 주변을 시작으로 반경을 한창 넓혀가고 있던 우리는 대륙 횡단 때도 당연히 캠핑을 계획했었다.
KOA(미국 내 유명한 민간 캠핑업체)를 비롯한 다양한 민간 캠핑업체들이 편의시설을 갖춘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립공원마다 캠핑 그라운드가 마련되어 있어, 숙소비용을 아끼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캠핑은 상당이 매력적인 선택지이기도 했다.
이렇게 넓다우
하지만, 캠핑 장비를 싣던 우리는 좌절하고 말았다. 이미 그걸로 트렁크의 상당 부분이 차 버렸던 거였다. 생각해보니, 시간을 아껴 이동해야 하는데 매번 텐트를 펴고 접고 하는 일들이 시간낭비 일뿐만 아니라 적잖이 소모적일 것 같았다.
"캠핑은 포기하자"
이번 여행에서는 오롯이 호텔 신세를 지기로 결정했다.
돌아보면, 새로운 숙소에 대한 기대로 매일 저녁 호텔 예약 앱으로 숙소를 예약했던 일은, 이번 여행에서 꽤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간혹 일부 지역에서는 인터넷이 안 터지는 바람에 자정이 되도록 길 위에서 헤맨 적도 있었지만, 매일매일 새 집을 구경하는 기분이랄까...
짐은 요렇게!
트렁크 큰 것 하나
작은 것 두 개,
식재료 가방, 식사도구 가방,
아이스박스 두 개,
그리고 다섯 식구 각자가 필요한 준비물을 담은 각자의 백팩.
한 달이 넘는 기간을 밖에서 보내야 하지만, 옷가지 등을 싼 기본 여행가방은 1주일 여정으로 꾸렸다. 호텔마다 세탁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맘만 먹으면 거의 매일 빨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트렁크 하나엔 알래스카 여행을 대비한 패딩과 긴 옷들, 다른 하나엔 해수욕을 대비한 비치타월 다섯 개와 수영복을 넣었다.
식재료 가방엔 쌀과 라면, 김치, 마른반찬 등 각종 먹을거리들을 넣고, 식사도구 가방엔 작은 밥솥과 프라이팬, 가위, 수저 등을 패킹했다.
아이스박스는 각각 반찬용과 음료용으로 나누어 사용했다.
냄새가 나는 반찬용 아이스박스는 트렁크로, 음료용 아이스박스는 아닌 차량 앞좌석에 실었다. (매일 아침 슈퍼에서 $2짜리 조각 얼음 한 봉지를 사 아이스박스에 가득 채우고는 음료를 종류별로 골라 얼음 사이사이에 박아 넣었다. 완벽한 냉장고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비약 한 보따리.
일주일 단위로 호텔 laundry를 이용해 빨래를 하기했고, 대도시가 나올 때마다 한인마트를 들러 김치나 쌀 등을 추가 구입해 짐을 재정비하기로 결정했다.
여행이 끝나고 되돌아보니, 아무리 긴 여행이라도 일주일 일정의 여행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면 될 것 같다. 오지로 가는 여행이 아닌 이상 곳곳에 부족한 것들을 구입할 곳은 많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하루에 적게는 6시간 많게는 10시간 이상의 이동이 예상되었다. 때문에 사실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았다. 아플까도 걱정이었지만, 그 긴 시간을 즐겁게 잘 버텨줄까도 큰 고민.
많은 고민 끝에 우리 부부는 여행 전 세 아이들을 위해 kids pad를 구입했다. 각각의 선호에 따라 만화영화들을 가득 저장해 두고, 각자의 컨디션대로, 취향대로 선택해서 볼 수 있도록 했다. 긴 시간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의 지루함을 덜어준 최대 공신이다. 부모 마음이야 넓은 자연을 구경하며 사색을 하는 시간도 가졌으면 좋겠지만, 어른도 힘든 그 시간을 내내 바깥 경치만 보라고 할 수 없지 않나 싶어서:)
아이들의 여행 동반자
여행 짐을 다 싸고,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한 뒤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우리 부부가 이번 여행을 기대하고 설레어하는 만큼 아이들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경험들이 우리를 반겨줄지 두려움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그렇게 채플힐에서 출발한 시간이 오후 4시.
일단 달렸던 것 같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구글 지도에는 우리가 크루즈를 타게 될 시애틀의 pier 91을 찍었다.
41 hour.
잘할 수 있겠지?
오늘, 우리 가족의 기착지는 테네시주의 녹스빌(Knoxvill)이다. 첫날이니 이동거리는 가볍게 5시간 반.
일단 집 떠난 여행 자체에 신이 난 아이들은 벌써 시끌벅적이다. 각자 신나게 꾸렸던 장난감에 인형들에 색연필, 노트까지 꺼내놓기 시작했다.
원래가 아웅다웅 사이가 좋은 첫째와 둘째는 주섬주섬 보드게임을 꺼내놓았다. 차분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막내는 무릎 위에 노트를 올려놓고 색연필을 꺼내 요리조리 예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 허밍의 단상(斷想)
여행은 일상의 공유이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저렇게 많은 갈등이 생긴다. 남과의 여행이 어려운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족은 항상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항상 갈등을 공유하는 사이이다. 해서 '항상 부대끼는 사람들끼리의 여정'이니 별 문제 안 될 듯도 싶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또 다른 일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역할 사이에서 또 다른 갈등을 맞닥드리게 된다. 예상치 못한 문제도 더 많이 만나게 된다.그래서 참 많이 다투게 된다.
돌아보면, 우리 부부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참 무수히도 만났다. 금슬도 부부싸움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우리 부부가 이 긴 여정에서는 또 얼마나 스펙터클한 드라마를 썼는지.
한바탕 휘몰아친 후, 유난히 예뻤던 이역만리 타국의 빈 교회 앞마당에 차를 세우고, 끓어오르던 화를 삭이던 때도 있었고, 약 올라 죽던 내가 마시던 콜라병으로 남편 뒤통수를 후려친(?) 적도 있었다. 집에서 싸운 날엔 서로 피하며 냉전체제라도 유지할 수 있지, 이건 갈 길이 구만리인데 좁은 차 안에서,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평소보다 덜 싸우진 않았지만, 평소보다 빨리, 효과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화해하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 서로를 덜 자극하기 위해 노력했고, 종종 최악의 상황으로 정신줄 놓고 달리는 나를 멈추는 연습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