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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비 May 24. 2020

저스트 머시(Just Mercy, 2019)

인종 차별의 불편한 진실

Just Mercy, 2019

 영화 '저스트 머시(Just Mercy, 2019)는 영화 속 주인공 브라이언 스트븐슨의 원작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Just Mercy : A story of Justice and Redemption)』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흔히 영화의 원작이라면 소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제대로 된 법률 지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친 브라이언 스트븐슨의 회고록이다. 그래서 영화도 1980년대 앨라배마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1. 줄거리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흑인 변호사인 브라이언 스트븐슨(마이클 B.조던)은 보수가 좋은 직장과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앨라배마 주로 향한다. 앨라배마 주에는 제대로 된 법률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흑인 사형수가 다수 있었다. 스트븐슨은 사형제도 폐지를 연구하는 에바 엔슬리(브리 라슨)와 함께 사형수 수감소 재소자들을 위한 무료 법률지원센터인 '동등한 정의 계획(Equal Justice Initiative)'(https://eji.org/)을 설립한다.


 스트븐슨은 사형수 수감소 재소자 가운데 월터 맥밀란(제이미 폭스)이 범인이 아니며,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월터 맥밀란은 먼로빌에서 18세 백인 소녀 론다 모리슨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트븐슨은 월터 맥밀란의 범행을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는 마이어스의 증언뿐이었으며, 월터 맥밀란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인은 경찰 측에서 거부했다는 사실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다. 결국 스트븐슨은 경찰의 협박과 타협으로 인해 마이어스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와 법원은 월터 맥밀란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다. 결국 스트븐슨은 TV 방송을 통해 월터 맥밀란의 억울한 사정을 전국에 알리고, 월터 맥밀란은 무죄 판결을 받고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2. 생각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세 단어는 '인종차별', '사형제도 폐지', '사형수의 인권'이다. 영화 속에서 흑인과 백인의 대비는 자주 등장한다. 사형수인 허버트는 흑인인 반면, 변호사인 스트븐슨을 제외하면 허버트의 사형 집행 과정을 목격하는 인원은 모두 백인이다. 또한 월터 맥밀란이 무죄 판결을 받는 재판에서도 백인은 자리에 앉아 재판을 참관한 반면, 웥터 맥밀란의 가족을 비롯한 흑인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뒤에 서서 참관한다. 이외에도 스트븐슨은 사형수 수감소를 들어갈 때 불필요한 소지품 검사를 받고, 아무런 이유 없이 차에서 내려 강압적으로 조사를 받는다.


 우리는 영화 속 등장하는 인종차별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인종차별은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의 일이다. 2주 전만 하더라도 백인 부자가 조깅하는 흑인 청년을 총으로 죽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으며,(https://www.youtube.com/watch?v=xJXOqQVA3UM) 유럽에서는 코로나 19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동양인을 차별하는 영상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JkGihcy8meE)


 정의로운 사회는 인종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을 지양한다. 하지만 차별은 공동체를 결속시켜주는 힘을 갖는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돌고 백년전쟁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공동체는 아무런 근거 없이 마녀로 몰아 화형시켰다. 일본은 1923년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자 '조선족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조선인 학살을 선동하였다. 이처럼 공동체는 소수 민족과 집단을 차별하여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위기에 빠진다면, 소수 민족과 집단을 차별할 수 있는가? 정의로운 사회라면 소수 민족과 집단을 차별하면 안 된다. 차별은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일 뿐, 유일하고 궁극적인 방법이 아니다. 차별이란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방법은 수많이 존재한다.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차별 이외의 목표를 갖게 해주면 된다. 단지 다른 방법이 어렵다는 이유로 차별을 선택한다면, 중세 유럽의 공동체 또는 일본, 독일의 나치즘과 다를 바가 없다.


 영화 속에서 '사형제도 폐지'와 '사형수의 인권'은 중점적으로 다뤄지지는 않는다. 엔딩 크레딧 전 자막으로 "사형수 9명 중 1명은 잘못된 판결을 받았다."라는 문장과 동등한 정의 계획(EJI)의 추후 활동으로 유추해볼 따름이다. 사형수 9명 중 1명은 잘못된 판결을 받는다는 수치는 1980년대 미비한 법제도와 증거 제도로 인해 높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도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형수가 생기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경찰과 검찰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므로 진실보다 그럴듯한 거짓을 믿는 경우가 많다. 만약 사형제도를 폐지하여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살게 한다면, 누명을 쓴 사형수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생명권을 박탈할 정도로 심각한 범죄가 있다는 사실도 묵인할 수 없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존재하대, 형 집행을 하지 않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방안은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라고 할 수 있으며, 1997년 이후 사형제도 형 집행을 하지 않은 우리나라가 시행하고 있다. 생명권을 박탈할 수 있는 사형제도를 유지함에 따라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할 수 있고, 실질적으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으로 사형제도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3. 토론


 침묵도 죄가 되는가?


 월터 맥밀란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인은 많았다. 하지만 증인은 흑인이었고, 사건을 조작한 백인 경찰과 검사는 증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스트븐슨이 월터 맥밀란의 변호를 요청한 이후 사건 발생 당일 월터 맥밀란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있는 조수가 증언을 한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이 직장으로 찾아와 증인을 위증죄로 조사를 한다고 하니 증언을 철회한다. 결국 증인은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침묵한다.


 스트븐슨을 제외한 흑인은 월터 맥밀란이 무고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 백인 중심의 경찰과 검사가 제대로 된 증인으로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용기를 내어 증언을 해도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묵하면 기존 사회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심지어 침묵은 가해자에게 동조 혹은 지지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월터 맥밀란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수많은 증인이 침묵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도 제2의 월터 맥밀란이 될 수 있는 사회가 유지되도록 만든다.


 소수자로 하여금 보복과 차별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존 사회와 맞서 싸우라고 하는 주장은 위험한 발언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소수자가 의견을 내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그러한 의견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소수자가 차별과 보복을 감수하고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기존 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만들 수 있다. 기존 사회가 소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소수자가 차별과 보복을 감수하지 않으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하는 일이다.


 침묵도 죄가 된다. 보복과 차별이 두려워 침묵한다면 사회는 변할 수 없다. 기존 사회는 같은 방식으로 소수자를 탄압할 것이다. 하지만 보복과 차별을 용납하여 소수자로 하여금 침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기존 사회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보복과 차별 앞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아직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코로나 19 이태원 클럽 이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성행하고 있다. 스스로 떳떳하다면 동성애자에게 커밍아웃을 하라는 반응이 있다. 동성애자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어떠한 동성애자도 커밍아웃을 자신 있게 할 수 없다.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동성애자도 커밍아웃을 하는 용기를 내야 하지만, 공동체도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Just Merc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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