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동경하던 윤리 선생님이 있었다. 20대 중후반이었던 선생님은 서울대를 졸업했고 그 시절 내가 부러워하던 아주 긴 생머리와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목소리도 조곤조곤하고 아는 것도 많아서 윤리 시간은 언제나 시끄럽던 내가 유일하게 집중하던 시간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글을 썼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썼던 글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아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 순간 솔직했다는 이유라는 것이다.
나도 내 과거가 부끄럽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나는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며, 그 결정을 했던 나 자신을 ‘역시 나’라며 치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과거의 나’를 내가 아닌 타인으로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사건 이후 많은 페미니즘 도서들이 눈에 띄어 읽기 시작했다. 하나의 물음표는 느낌표가 아닌 여러 개의 또 다른 물음표를 만들어냈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그들은 본인의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기보다 또 다른 더 작은 소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작은 소리에의 확장은 나에게 더 넓은 세계와,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꿈꾸게 해주었다. 그럴수록 부끄러워졌고, 이 확장을 모르고 만날뻔했던 미래의 나를 상상하면 끔찍했다.
후회라는 단어는 뒤 후(後), 뉘우칠 회(悔)라는 글자가 합쳐진 단어이다. 후에 뉘우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내가 ‘후회한다’라고 말해왔던 것들은 하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후회가 아니라 아쉬운 마음, 즉 미련이었다. 나에게 확장은 미련없는 후회다. 이전의 나를 떠올리며 그저 미소지으며 두둔하는 짓은 그만두려 한다. 과거를 직시하며 내가 잘못했던 행동이나 생각들을 후회하고 싶다. 지금 나의 행동이나 생각도 미래의 더 확장한 내가 후회했으면 한다.
수전 손택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본인이 쓴 글에 본인이 동조하게 되는 일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하기를 멈추었다는 뜻이니까. 이 말은 수전 손택은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일까.
당시 동경하던 선생님의 또래가 된 나는 묻고 싶다. 선생님은 아직도 본인이 과거에 쓴 글을 볼 때 부끄럽지 않은지. 혹은 나처럼 후회하고 있는지.
나는 앞으로 더 열심히 후회하고 싶다. 내가 후회하는 것은 더 많이 후회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