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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글 Jun 13. 2024

카페



소주와 매화수, 그 사이




그애와 대화를 나누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정도가 아니고 뻔하지만 그애와 나만 빼고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마주치면 웃음부터 나는 사이.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던 그애.



그래서일까. 그애와 나는 같은 모임에 속해 있었지만 단 둘이서만 술자리를 자주 즐겼다. 얼큰하게 취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대화가 너무나도 잘 통했기 때문이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내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농담을 시작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쏙 빼며 웃었다. 그애와는 청하를 자주 즐겨마셨다. 소주는 너무 쓰고 매화수는 너무 달았다. 우리 둘의 관계같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가까운 사이.



어느 날, 곱창을 구워가며 청하를 신나게 비웠다. 둘 다 술이 센 편이 아닌데도 장난을 치며 원샷을 하다보면 어느새 취해있었다. 낮에는 선선하지만 해가 지면 조금 쌀쌀한 날씨였다. 곱창집을 나오며 나는 연신 춥다는 말을 내뱉으며 양팔을 교차하며 팔짱을 꼈다. 그애는 자기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으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청하를 나눠 마신 사이라서.



그애와 나는 평소 담배를 피우진 않았지만 술만 마시면 담배를 찾았다. 그날도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했다. 편의점 앞에서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담배를 한 개씩 나눠피웠다. 나는 그애가 나를 응시하며 내뿜는 담배연기가 좋았다. 내가 원하지만 그애가 하지 않는 말, 그 들리지 않는 말을 하는 것 같아서.



역 건너편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시끄러운 거리에서 나와 그애의 귀와 입이 점점 가까워졌다. 웃음이 터지면 서로의 팔을 잡고 웃기도 했다. 차가 지나갈 때는 어깨보다는 팔꿈치를 잡으며 서로의 곁으로 잡아당겼다. 그럴때면 웃음은 잠시 멈췄고, 딴 곳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그애와 나는 어느새 하나의 담배를 나눠피우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애는 이제 어디를 갈지 물었다. 아쉬워서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카페를 가자고 했다. 아쉬워서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역 바로 맞은편 코너에는 오래된 탐앤탐스 카페가 있었다.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흡연구역이 있어서 들어갔다. 그애는 카페에서 자주 딸기가 들어간 음료를 주문했다. 그걸 볼때마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매번 아직 어리다고 놀리곤했다. 나는 조금 쌀쌀해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음료를 받아들고 그애와 나는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깔깔댔다. 나는 언제나 그애의 딸기음료를 한 입 달라고 했다. 그애도 언제나 내 커피를 한 입 달라고 했다. 그러다보면 누가 어떤 음료를 시킨건지 모호해졌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그애와 나의 대화 수위도 깊어졌다. 눈알을 위를 향해 굴리는 일이 잦아졌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 턱에 손을 괴는 일이 잦아졌다. 담배갑에는 손이 자주 포개지고 서로의 담배불을 붙여주기 바빴다. 시간이 자정을 넘어서면 나와 그애에게는 가족에게 전화가 왔다. 나도 그애도 곧 들어간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누구도 집에 들어갈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애와 나는 굳이 집까지 걸어갔다. 그애는 아쉬우니까 걸어가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아쉬워서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길에는 가로등이 띄엄띄엄 서 있었다. 그애와 나는 밝게, 또는 어둡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걷기도 하고 가까이서 걷기도 하면서. 그 순간에는 세상 누구보다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 마음의 거리는 멀었다. 각자 집에 도착했지만 그애와 나의 휴대폰은 잠들 수가 없었다. 목소리로는 충분했지만 활자로 하는 대화는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활자를 충분히 나누고서야 잠에 들었다.



해가 뜨고 아침이 찾아오면 서로를 찾아 해장국을 먹었다. 전 날 이야기를 꺼낼 때면 깊은 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렇게 거리를 좁혀가던 어느 날. 그애와 나는 매화수를 나눠마셨다. 그리고 우리는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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