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디지털 노가다입니다
제목은 디지털 노마드라고 썼지만, 사실 디지털 노가다에 가까운 잡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디노라고 하면 다들 보통 노트북 하나 들고 여기저기 여행다니면서 편하게 돈 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런걸보면 유튜브 영향이 정말 어마어마한듯.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워라밸을 정말 중요시 여겼다. 퇴근 후 내 시간을 침범하는 모든 것에 분노가 쉽게 일었다. 나만의 시간에는 운동이나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등 낭비가 아닌 투자라고 판단되는 행위에 시간을 써야하는 강박증이 있었다. 그 당시의 내 생활 패턴은 꽤나 정형적이었기 때문에 1분이라도 흐트러지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운동을 제외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활동에 관해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는 비생산적인 활동에 비해서 유익하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다만 경제 활동을 가장 활발히 해야하는 나이에 과연 이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따져봤을 때 지금 당장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활동들은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예를 들어 기타 배우기와 같은.
그 것을 자각하게 된 2019년 9월부터 내 생활 패턴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영상 편집을 시작으로 타오바오, 블로그, 라이브 방송, 코딩 등 4년 사이에 투잡, 쓰리잡을 넘어 N잡이 되어버렸다.
N잡이 익숙해지니 자연히 워라밸과는 멀어졌는데, 워라밸을 엄격히 따지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물론 수입이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남의 회사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내 일'을 하면서 성취감에 중독된 탓이다.
일과 휴식이 구분되지 않는 삶에 익숙해지면서 지금은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코드 리팩토링을 하든 재고 정리를 하든 매출 정리를 하든 뭐라도 해야 나 자신에게 미안함이 들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알게 모르게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유튜브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이상적인 디노가 아닌 디지털 노가다에 가까운 디노이긴 하지만 말이다.
돈을 얼마나 벌든 이런 생활이 누군가에겐 가슴이 턱 막히고 무료한 삶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과 같은 패턴이 최대한 길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