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디스턴스(Distance), 2001>
디스턴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이우라 아라타, 이세야 유스케
개봉 미개봉
2018년 7월 6일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옴진리교 교주와
테러 주동자들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옴진리교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는
이 테러뿐만 아니라
사카모토 변호사 가족
3명 살해 사건,
마쓰모토(松本)시
사린 테러 사건 등으로
2006년 사형 판결을 받고
수감되어있는 상태였다.
사실상 사형집행을 폐지한 것으로
알려져있던 일본에서
다시 사형을 집행한 것은
다른 주변 국가들에게도
꽤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디스턴스'는
고레에다히로카즈 감독이
'사린 가스테러'를 일으킨
옴진리교 신도들의 남겨진
가족들 이야기를 조명한 영화이다.
콘텍스트를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이 영화는 시작한 지
30분 가까이 지나서도
무슨 내용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초반 30분까지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는데
총 5명의 인물들을
아무런 설명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냥 흘러나오는 영상에
집중하게되고,
언제쯤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인지
궁금하게 될 때쯤
드디어 전개가 시작된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사린가스 테러를 일으킨
가해자들의 남겨진 가족들은
매년 그들을 추모하러간다.
그러던 어느 날은 평소와 같이
추모를 하고 나오는 데
자신들이 타고온 자동차를 도둑맞는다.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자신의 가족들이
옴진리교에 심취해 있을 때
생활하던 집에서
다같이 하루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히로카즈 감독이
<바닷마을 다이어리>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특별한 사건을 만들지 않고
정말 평범한 일상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라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가정주부였고, 학생이었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그러한 그들을 끔찍한 악마로 둔갑시킨 것은
강압적인 명령도 아니었고,
돈이나 명예도 아니었으며
그저 자신이 믿는 신념이었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교단 소유의 집을 들어가
하루밤을 지내면서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영화는 교차 편집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관객들은
그들이 '세상'을 떠나
옴진리교로 가게되었던
콘텍스트를 이해하게 된다.
남겨진 가족들과,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가해자들이 보여주는 갈등은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강조한다.
그들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마음을 열라"
"그 곳에서
아주 값진 가치를 얻었다."고
말한 뒤 세상을 떠나갔다.
히로카즈 감독은 교차편집을 통해
세상을 떠나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시간인
'사일런트 블루'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신념은 아내와
남편을 버리고 세상을 떠날만큼
강했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방적으로
남겨진 가족의
시선에서 관찰하지 않고
가해자들이 느꼈던
감정을 보여주는
'민주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영화의 촬영기법은 독특하다.
다큐멘터리를 보듯
카메라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달리는 사람을 직접 카메라를 들고
쫒아가는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클로즈업을 쓰기도 한다.
2001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을
생각한다고해도 특이한 점이다.
감독은 'Handheld' 기법을 통해
관객들이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다가도 클로즈업을
사용하여 '영화 속' 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며 생각을
이어가라는 듯한
감독의 메시지로 보였다.
이 밖에도 중요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도중에
인물들을 비추거나
자연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나온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면
어떤 의미를 전달할 때 그것이 꼭 일상 속에서
전달되는 것을 추구하는 듯하다.
심오한 내용이라도
평범한 일상속에서
표현될 때 그 의미는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는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오히려 남겨진 이들이
아픔을 느끼는 장면들이
묘사된다.
등장인물들은 교단의 집에서
하루를 머물며
떠나간 이들의 신념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이 생각은 곧
'과연 신념을 옳고
그르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에 이른다.
원론적인 답변을 하자면
'신념을 옳고 그르다고 평가할 수 없다.'
'그 신념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고 신념으로부터
야기된 행동들을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다.' 정도일 것이다.
결국 그들의 신념은
도쿄 지하철 테러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데
사용되었고
그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신이나 정의 따위가 대량학살을
정당화하는데 쓰였다'는 것이
드러난 사실이다.
'무늬만 기독교인'이 되어버린
요즘의 나는 이 신념이라는 것의
기억이 흐릿해져
제대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사린가스 테러를 통해
그들이 말하는 '신세계'가
온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자신들이 사라져야 하는
신세계가 다시 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히로카즈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교주'의 아들로 묘사되는
한 인물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끔찍한 테러행위를
저지른 교주지만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신념은
누구도 비판할 수 없다.
그러나 타인의 신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이 영화에서 남겨진
가족들이 떠나간 그들을
보며 슬픔을 감추지 못하지만,
결국 그들은 '악마'와 같은
테러를 저지른
가해자임이 변하지 않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