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태국여행기(5)태국 4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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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태국에 가기 전, L과 나는 파타야에서 열리는 알카자쇼를 볼 것인지 말지에 대해서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다. 알카자쇼는 선발된 트랜스젠더들이 무대에 서서 다양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공연이다.
L이 알카자쇼를 보러가자고 했을 때, 솔직히 조금 망설여졌다. 우선 트렌스젠더쇼가 그렇게 흥미로워 보이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트렌스젠더의 여성적인 매력을 보고 조금이라도 흥분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L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자보다 더 여자 같다는데, 왠지 트렌스젠더를 보고 조금이라도 흥분을 느끼면 현타 올 것 같지 않아?”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흥분을 느끼는 주된 경로는 시각적 자극이기에 외형이 여자보다 더 아름답다고 한다면 ‘의지’와 ‘대상을 범주화하는 이성’도 느껴지는 감각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생리적인 현상이 일어날 때 우리는 당혹감에 휩싸이거나 불쾌감을 느낀다. 그럴 때 우리는 과연 동물과 다른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이성의 한계를 경험한다. 이성이 무너졌다는 신호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활동인 대소변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내 이성의 한계 너머를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트렌스젠더를 혐오한다거나, 그들을 배척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안 좋은 감정도 없다. 트랜스젠더가 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고,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불편함을 겪겠지만, 그들이 선택한 것이기에 감수할 수밖에 없다. 성적지향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의 연장에서 그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LGBT를 다룬 영화를 한 두 번 보기는 했으나 이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공동체가 만들어낸 특정한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간신히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입으로 표출하는 건 힘든 일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스스로가 유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실상은 공동체의 관념과 전통에서 많은 제약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과거에는 다른 나라로 가거나, 다른 문명을 접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 당시에 비해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여행하는 게 쉬워지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전통과 관념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로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많겠지만, 분명한 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일반적으로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틀릴 수도 있다'라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우리들의 시선은 좀 더 넓어지고, 사고가 유연해지면서 풍부해질 수 있다.
사고의 유연함. 이것도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알카자쇼 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L의 말이었다.
“파타야로 가는 관광객은 누구나 다 보는데?”
그렇다. 어차피 관광객들은 이 쇼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하나의 신기한 볼거리로 생각할 뿐이다. 색다른 경험 정도로 여길 것이며, 기묘함과 이국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감상에 잠시 젖었다가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 어차피 문화상품으로 소비해버리고 마는 것인데, 나 혼자 그렇게 진지해지고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파타야 숙소에서 알카자쇼로 향할 때는 이미 발걸음이 가벼웠다.
알카자쇼는 나와 L이 묵는 숙소 근처에서 열렸다. 이동한지 몇 분 되지 않아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므로 이 공연이 정말 규모가 크고 유명하다는 것을 느꼈다. 막상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니, 나를 망설이게 한 이유가 되었던 것은 확실히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확실히 여성보다 더 예뻤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별 감응이 없었다. 그보다는 화려함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화려한 옷과 퍼포먼스가 시간이 가는지도 모를 만큼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오는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라고 스스로 밝히지 않는다면 정말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의 미모를 하고 있었다. 성형외과 의사라면 이들을 보고 흠 잡을 데 없는 얼굴이라고 평했을 것이다. 그 말은 이마는 적당히 넓고, 눈은 크고 쌍꺼풀이 있으며, 코는 오똑하고 입술은 도톰하고 얼굴은 달걀형에 코에서 입술 턱 쪽으로 라인이 일치하며 머리칼은 검고 윤기가 나야 한다는, 현대 의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미인의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몸에 대해 이야기하면, 허리는 날씬하고 가슴은 풍만하고 엉덩이는 볼륨감이 있었다. 다리는 쭉 뻗어 날씬했다. 패션쇼의 모델을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고, 로댕이 빚은 조각상의 몸을 연상시켰다. 이들도 그러한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는지, 상의를 다 탈의한 뒤 페인트칠을 해서 조각상으로 분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틀에 박힌 미의 기준에 맞춰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미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 몸을 깎고 째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일반여성보다 그러한 압박을 받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남성의 욕망이 투영된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에 자신들을 강박적으로 맞추려 한다.
이들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외형에서 드러나는 매력인 것 같았고, 그것이 자신들의 무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들은 공연 내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으며 성적인 요소들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가 많았다. 뚱뚱한 여성 분장을 한 남성이 큰 가슴을 관람객의 얼굴을 문지르고 그 반응을 즐긴다든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성을 누군가의 성적 흥미를 이끌어내고 만족시키기 위한 대상이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자신들의 신체를 자본창출에 이용한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 앞에서 자신들을 전시했다. 그리고 돈을 내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신체를 촬영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관람객들은 이들에게 인간적인 이끌리거나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상품으로서 바라본다. 이것은 이들이 더 과감하게 신체노출을 하는 이유이다. 일단 자신의 신체가 하나의 상품으로서 전시된 순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또한 신체노출이 상품으로 다뤄질 때는 훨씬 더 노골적으로 표현될 수 있고, 특히 공공장소에서 보여 지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가령 무대에서는 조각상으로 분장하기는 했으나 가슴을 드러낸 퍼포먼스를 버젓이 하고 노출이 과한 옷을 입는다. 그러나 전시장 밖을 나가는 순간 가슴을 드러내는 행동은 바로 제재를 받을 것이며, 약간의 노출이 있는 옷만 입어도 따가운 시선을 받을 것이다.
과도한 노출과 성에 대해 개방적인 것처럼 보이는 퍼포먼스가 겉으로 보이기에는 자유와 해방감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회는 여전히 트랜스젠더에 대해 억압적인데, 자본주의와 태국의 관광산업이 더해지면서 자신들을 상품으로밖에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호소하는 수단도 가장 원초적이라 할 수 있는 성이다. 결국 이들이 자신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자본주의를 통해 굴절된, 굉장히 정형화되고 상업화된 성을 통해서 뿐이다. 그들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질들로는, 즉 성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것으로는 그들이 우리에게 호소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이르자, 갑자기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다행히도 때맞춰 공연이 끝났다.
2.
알카자쇼 공연장을 거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와 L은 파타야의 밤거리를 지나쳤다. 원색적인 붉은색 조명을 밝힌 술집들이 일렬로 늘어져있는 가운데에, 많은 여자들이 술집 밖으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지나가는 행인을 껴안고 자신이 속한 술집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길에는 선정적인 홍보물이 뿌려져 있었다. 자기네 술집에 들어오라고 소리치며, 팔을 붙잡는 여성들의 손을 뿌리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보통 유흥업소는 골목 안이나 외진 곳에 숨겨져 있기 마련인데, 파타야의 유흥업소들은 대로변에 버젓이 서있었고 술집의 여자들도 부끄러운 기색 없이 당당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스스로를 까발린 거리의 모습에 오히려 민망함을 느꼈던 쪽은 나였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모든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술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는 그렇게 노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고,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게 부자연스러워보였다. 그 거리의 모든 사람이 유흥을 즐기고 있었기에 파타야 전체가 광란의 파티장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출국하기 전에 여행 정보를 찾아볼 겸 인터넷을 하다가 눈에 들어왔던 구절이 생각났다. “파타야의 밤 문화를 즐기지 않으면, 파타야를 반밖에 즐기지 않은 것.” 나는 반밖에 즐기지 못하고 있으니, 나머지 반도 즐길 것을 강요받는 느낌이었다. 이런 나의 느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중은 환호하고 소리치고 웃고 즐기고 있었다.
그곳에 끼고 싶지 않거나, 낄 수 없거나, 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의 기분과 주위 환경 사이의 대조로 인해서 괴로웠을 것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단지 혼자 있는 것보다 많은 무리 중에서 홀로 한편에 비켜 서있는 존재가 더 쓸쓸하게 보인다. 사진을 찍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만약 주 피사체가 사진 속의 어느 한 구석에 있지 않고 가운데 있으면서 다른 행동,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더 고립되어 보일 것이다. 혼잡한 놀이공원에서 배경으로는 여러 커플들이 보이는데 혼자 솜사탕을 물고 걸어가는 이가 있다면 정말 외로워 보일 것이다. 그 거리에서만큼은 그 솜사탕을 물고 걸어가는 이가 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굳이 말하면 나는 그 거리에 끼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고 L이 있어 괜찮았지만, 주위 환경과의 괴리감이 기분 좋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3.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그림의 등장인물들도 하나 같이 다 외로워 보인다. 호퍼의 인물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은 혼자 앉아 있거나 서 있다. 호텔 침대의 가장자리에서 편지를 읽거나 바에서 술을 마신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호텔 로비에서 책을 읽는다. 상처를 받은 듯이 자기 내부를 응시하는 표정이다. 방금 누군가를 떠나왔거나 떠나보낸 것 같다. 그들은 일이나 섹스나 친구를 찾아 오래 머물지 않을 곳에서 떠돌고 있다. 시간은 주로 밤이다. 창문으로는 어둠이 다가오고, 넓은 시골 또는 낯선 도시의 위협이 그 뒤에 도사리고 있다.
<자동 판매식 식당>을 보면 여자가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늦은 시간이다. 여자의 모자와 외투로 보건대 밖은 춥다. 실내는 넓고, 불이 환하고,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장식은 기능적이다. 돌을 얹은 탁자, 튼튼하게 만든 검은 나무 의자, 여자는 사람을 꺼리는 듯하고 약간 겁을 먹은 듯한 느낌도 든다. 그녀는 공공장소에서 혼자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뭔가 일이 잘못된 느낌이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보는 사람에게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 배신이나 상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녀는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손을 떨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북아메리카의 어느 큰 도시의 2월의 밤 11시쯤일 것이다.
<자동 판매식 식당>은 슬픔을 그린 그림이지만 슬픈 그림은 아니다. 이 그림은 위대하고 우울한 음악 작품과 같은 위력이 있다. 실내장식은 검박하지만, 장소 자체는 궁색해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혼자일 수도 있다. 이 여자와 비슷하게 생각에 잠겨, 이 여자와 비슷하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남자들과 여자들. 일반적으로 공동의 고립감은 혼자서 외로운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감을 덜어주는 유익한 효과가 있다. 군중 속의 고독과는 다르게 말이다. 도로변의 식당이나 심야 카페테리아, 호텔의 로비나 역의 카페 같은 외로운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고립의 느낌을 희석할 수 있고, 따라서 공동체에 대한 독특한 느낌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는 우리 모두가 고독감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고독을 느끼는 각자들을 보면 자신의 고독의 메아리를 목격하게 됨으로써 그 고독으로 인한 괴로움과 중압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준다.
호퍼는 고립되어 있는 이 여자와 공감해보라고 우리에게 권유한다. 그녀는 위엄 있고 관대해 보인다. 어쩌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남을 잘 믿고, 조금은 순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세상의 뾰족한 모서리에 부딫힌 것인지도 모른다. 호퍼는 우리를 그녀 편에, 내부인들과 대비되는 외부인들 편에 세운다. 호퍼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은 무리 자체와 대립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여러 가지 규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무리가 그들을 배반하여, 그들을 밤이나 도로로 내몰았을 뿐이다. 24시간 식당, 역의 대합실, 모텔은 고귀한 이유로 일상세계에서 무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소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파타야는 반대였다.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거리에 속하여 그들과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였다.
4.
파타야는 바다가 아름다운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베트남 전쟁 시기를 거치며 급성장을 하기 시작한다. 당시 미군은 베트남에서 가장 가까운 우방국인 태국에서 주로 휴가와 여흥을 보냈는데, 파타야는 그중에서도 최적의 장소였다. 왜냐하면 바다가 펼쳐진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고, 수도 방콕과의 거리도 적당하다는 점에서 교통이 좋았고, 근처 미군공군기지와도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미군들을 상대로 한 유흥산업이 크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미군이 태국에 부대시설을 만든 이후 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의 수는 1964년까지 40만명으로 불어났다. 태국은 미군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윤을 얻는 대신 이들에게 위락시설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태국이 얻는 이윤은 1600만 달러로 당시 금액으로서는 엄청난 액수였다.
배트남 전쟁이 끝나자 태국경제에 큰 구멍이 발생했다. 이 구멍을 채운 것이 태국관광산업이었다. 파타야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발전하는 동시에 태국을 대표하는 유흥지가 되었다. 파타야는 전국에서 유흥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 몰려든 여성들로 들끓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도덕적이지는 않았지만 2차세계대전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관광산업으로 번 돈은 태국경제를 부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흥산업은 자연스럽게 태국인들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어떤 태국 인권활동가는 이렇게 주장했다.
“태국에서 태국남성들은 유흥을 용인한다. 태국 모든 계급의 남성들이 이를 용인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문제로 보지 않는다.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된 국회의원들은 물론 이것을 문제로 보지 않는다.”
태국의 유흥산업은 나라에 의해 장려되었으며, 지금도 국가차원에서 부추겨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그 결과 1990년 10만명이었던 태국의 HIV 감염자는 3년만에 300만 명 이상으로 증가하는 폭발적인 양상을 보였다. 2004년 기준 에이즈 감염인구가 57만명으로 세계 17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나는 이러한 태국사회의 모습이 영화 <매드맥스>에서 묘사되는 세계와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매드맥스는 핵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한 22세기 지구를 묘사한다. 임모탄 조가 살아남아 얼마 남지 않은 물과 기름을 모두 차지하며 남은 인류를 지배한다. 딸과 아내를 잃은 맥스는 살아남기 위해 사막을 떠돌던 와중 임모탄의 부하들에게 납치돼 노예로 전락한다.
한편, 임모탄은 여성들을 사람이 아닌 쾌락의 수단이자 아이를 낳게 하는 도구로 대한다. 임모탄이 가장 핵심적인 자원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여성들은 임모탄에게 반대할 수 없다. 당장 물과 기름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다 못한 사령관 퓨리오사는 임모탄의 폭정에 반발하고, 다섯 명의 여인들을 이끌고 녹색의 땅을 찾아 떠난다. 그러나 여전사 퓨리오사와 여인들이 찾는 녹색의 땅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산전수전 겪으며 자기가 태어난 녹색의 땅을 찾았지만 보이는 건 모래언덕뿐이다.
극 중반에 퓨리오사는 체념어린 눈빛을 떨구며 맥스 곁을 지나 모래 언덕에 털썩 주저 앉는다. 그리고 서서히 절규하며 부르짖는다. 지옥에서 도망쳐 나와 희망을 찾아왔건만 절망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참담하다.
임모탄이 행사하는 권력의 핵심은 물과 기름이다. 물과 기름 때문에 여성들은 임모탄에게 복종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돈 때문에 태국을 찾는 관광객,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에게 예속될 수 밖에 없는 태국의 가난한 여성들과 비슷하다. 부유한 관광객들을 위해 이 여성들은 사랑하지도 않는 그들의 부인 노릇을 기꺼이 해준다. 태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왜 태국 여성들은 늙은 서양남자와 손잡고 다니는거야?”라고 한다. 그 답은 간단하다. 돈 때문이다.
이들은 법의 보호 밖에 있고,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가짜남편이 쉽게 폭행하는 대상이 된다. 이들은 이곳을 벗어나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주로 아산지방이라고 하는 북동부 지방 출신들이 많다고 한다. 이 지역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끊임없이 고통을 당해 “눈물이 마르지 않는 땅”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배움이 없는 가난한 가정출신이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심지어 마을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에 오는 경우가 있다. 슬픈 사연을 간직한 이들이 이 곳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개인적인 이유 외에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이들이 유흥산업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 어렵게 한다. 태국은 전체 산업에서 2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4%밖에 안 될 정도로, 2차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인구의 반 정도가 농업, 어업 분야에서 일하고 40%정도가 서비스 산업에서 일한다. 결국 남성들 상당수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운전사, 경비, 식당 등으로 진출하지만 이마저도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산업구조는 농촌 아니면 도시의 유흥산업을 택하게 한다. 차라리 유흥업을 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여성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는 것을 막고 있다.
거리의 무질서함과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없어서 겪는 불편함은 파타야가 <매드맥스>에 묘사된 세계와 비슷하다고 느껴지게 만들었다.
파타야의 거리는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생각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슬픔이 있다고 느껴진다. 애써 화려한 화장으로 맨 얼굴을 감추려는 파타야 여인들과 같이 전조등 불빛으로 화려함을 가장한 거리는 그 거리가 담고 있는 슬픔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거리 여인들의 과장된 환호성과 흥분에 찬 외침 밑에는 그들의 고독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나는 우울했다. 거리의 불빛이 창가에 반사되어 뿌옇게 퍼져 보이는 것이 마치 늦은 밤 남몰래 울다 화장이 지워진 여성의 눈가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