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태국 여행기(4)엉뚱한(?)호기심-담넌사두억

담넌사두억 수상시장-3일

by 이슬빛


1.


방콕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 아침에 잠에서 깨자 강렬한 무기력감이 밀려왔다. 마치 핏줄 속에 고운 설탕이나 모래가 진흙처럼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커튼 없이 탁 트인 창을 통해서 햇빛이 비쳐들었다. 대로를 따라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책상 위에는 호텔에서 가져다놓은 잡지 몇 권이 놓여 있었다. 도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잡지들이었다. 내가 집에서 가져온 안내 책자도 두 권 있었다. 이 책들은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입을 모아 바깥에는 방콕이라는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운 현상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곳에는 오래된 사원, 화려한 왕궁, 아름다운 공원과 광장, 우리를 유혹하는 쇼핑 거리 등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나도 그런 유혹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내가 그것을 볼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L은 우리가 좀 더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당일치기 투어를 예약해 놓았다. 이 투어는 예약하는 것이 귀찮기는 하지만 돈을 조금만 내면, 방콕 곳곳의 여행지를 안내해준다. 우선 아침 8시쯤에 호텔 근처로 픽업차량을 대령한다. 그러면 이 차를 타고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단체로 담넌사두억 수상시장, 위험한 기찻길 시장을 거쳐 왕궁, 에메랄드 사원, 새벽사원 등을 방문한다. 한국어가 가능한 현지인 가이드가 함께 동행하기 때문에 편하고 수동적인 마음을 갖고 가이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 자신의 게으름과 좀 더 정상적인 관광객-L로 대표되는-들이 느꼈을 진지함을 비교하며 냉담과 자기혐오가 뒤섞인 느낌에 시달리기만 했다. 과거에 L과 함께 홍콩에 갔을 때도 이런 귀찮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L은 그때 나에게 여행을 좀 더 적극적으로 즐길 수 없겠냐고 면박을 주어 말다툼을 번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있고 싶다는 욕구, 가능하다면 얼른 비행기에 올라타고 집에 가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 잡혔다.


2.


1799년 여름 스물아홉 살 난 알렉산더 폰 훔볼트라는 이름의 독일인이 탐험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스페인의 항구 라코루냐에서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훔볼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럽인들이 가보지 않은 먼 나라를 여행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도를 살피거나 여행서를 탐독할 때면 억누르기 힘든 은밀한 매혹을 느끼곤 했다.”


훔볼트는 5년간 유럽을 떠나 있었다. 그는 돌아와서 파리에 정착하여, 이후 20년간 <신대륙의 적도 지역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30권의 여행기를 출간했다. 이 책의 길이는 훔볼트의 업적의 크기이기도 했다. 이 책을 살펴본 미국의 평론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렇게 썼다. “훔볼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크라이턴 제독과 마찬가지로 이따금 세상에 나타나서 인간 정신의 가능성, 재능의 힘과 범위를 보여주는 경이로운 인간, 즉 보편적 인간의 한 예이다.”


훔볼트가 라코루냐를 출발할 때가지만 해도 남아메리카와 관련된 사실들은 유럽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베스푸치와 부갱빌이 대륙의 해안을 여행했고, 라 콩다민과 부게가 아마존과 페루의 강과 산을 탐험했지만, 아직 이 지역에 대한 정확한 지도도 없었으며, 그 지리, 식물, 원주민에 대한 정보는 거의 축적되지 않았다.


훔볼트는 지식의 수준을 바꾸어놓았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북쪽 해안선과 내륙을 1만 5000킬로미터 여행했으며, 여행길에 약 1600가지 식물을 채집하고 그 가운데 600종이 새로운 종임을 확인했다. 정확한 크로노미터와 육분의의 수치를 읽고 그것을 기반으로 남아메리카의 지도를 다시 그렸다. 이밖에도 남아메리카의 자연환경, 기후 조건, 원주민 문화에 대해 많은 연구 자료를 글로 남겼다.


최초의 훔볼트 전기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슈바르첸베르크는 그의 전기의 부제를 “사람이 한 평생에 이룩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달았다. 그는 훔볼트가 특별히 호기심을 느꼈던 영역을 다음과 같이 추측했다. “1)지구와 거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지식. 2)우주, 인간, 동물, 식물, 광물을 지배하는 자연의 더 높은 법칙들의 발견. 3)새로운 생명형태의 발견, 4)지금까지 불완전하게 알려져 있던 땅과 그 다양한 생산물의 발견. 5)인류의 새로운 종에 대한 지식-그들의 관습 언어, 그들이 가진 문화의 역사적 자취.” 한평생에 이룩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또는 전혀 이룩되지 못하는 일이다.


3.


결국 내가 방콕의 위대한 유산을 탐험하는 투어에 동참하게 된 것은 L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다가, 아직도 시트 밑에 웅크리고 있는 형체를 보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이제 그만 일어나지?”라고 말하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더불어 큰 소리가 나도록 화장품을 탁상에 내려놓으며, 자신이 어제 나 때문에 잠을 별로 못 잤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 침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탁상에 쪼그리고 앉아, 최대한 소리를 죽여 가며 그 날의 기록을 남기는데 이것이 시끄러워서 잠을 설쳤다는 것이다. 나는 어젯 밤 잠까지 설친 L을 더 이상 자극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탁상에서 담배와 라이터와 조그만 과자를 챙겨들고, 호텔 근방의 픽업 장소인 “BTS 아속역”으로 향했다.


아속역에 도착하자, 가이드들이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우리가 예약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종이를 보여주자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차량으로 안내해주었다. 그 안에는 우리 말고 다른 연인 한 쌍이 있었다.


우리가 차에 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인 가이드와 운전사가 차에 탔고 이제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현지인 가이드는 한국어로 말을 하기는 했으나, 억양은 태국인이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은 다소 웃기게 들렸다. 외국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어를 매우 잘하는 것이지만 특이한 억양이 그 실력을 가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말로는 설명을 잘 못하겠지만 확실히 특이하다고는 할 수 있는 억양의 한국말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이름은 너무 길어 기억나지 않고, 자신을 그냥 ‘보보’라는 별명으로 부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태국인들의 별명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태국인들은 별명을 지을 때 여자는 미모를 기준으로, 과일 이름을 따서 별명을 지어줍니다. 망고, 딸기, 수박과 같은 식입니다. 남자는 동물 이름을 따서 별명을 짓습니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 등등이죠. 한국에서도 뚱뚱한 남자는 돼지라고 하죠?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튼튼한 남자는 코끼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다니게 될 여행지와 일정을 소개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갈 곳은 담넌사두억 수상시장입니다. 여기에는 비단뱀, 다람쥐, 큰 거북이, 원숭이 삽니다. 하루에 두 번 열리는데 4시부터 7시에 한번 열리고, 10시부터 2시까지 또 열립니다. 야자나무, 망고, 자몽, 사과 등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있어 과일 수상시장이라고도 합니다. 주로 관광객들 위한 수상시장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위험한 기찻길 갑니다. 맥그럼 역에서 11시 10분에 오는 기차 탑니다. 모여서 기념사진 찍고 탑니다. 이 기차, 사우나 기차라서 에어컨 안 나옵니다. 자리 예약할 수 없습니다. 아무데나 앉으면 됩니다. 빈자리 많아 괜찮습니다.
위험한 기찻길 있는 데에 맥그럼 시장 있습니다. 망고, 두리안 같은 과일 팝니다. 두리안은 절대 먹지 마세요. 똥냄새 나요. 그거 먹으면 운전사 머리 아파서 운전 못합니다. 먹지 마세요. 근데 태국 사람들은 두리안 좋아합니다. 잘 먹습니다. 너무 비싸서 왕과일이라 합니다.
그 다음 우리 밥 먹습니다. 점심식사 1시까지입니다. 큰 쇼핑몰로 가서 먹는데, 식당 있습니다. 한국식당, 맥도날드, KFC 다 있습니다. 돔양꿍 먹지 마세요. 향신료 너무 강합니다. 쌀국수 팟타이, 한국사람들 입맛에 맞습니다. 향신료 강한 건 고수 때문인데, 고수 먹으면 모기 안물려요. 모기가 태국사람은 안 물고, 한국 사람만 뭅니다. 고수 많이 먹어서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모기가 태국인들 싫어합니다. 한국인들은 고수를 싫어해서 몸에서 냄새가 안 나기 때문에 모기가 좋아합니다.
밥 먹고, 우리 왕궁 갑니다. 긴 바지 입거나 긴치마 입고 민소매는 안 됩니다. 왕궁 갔다가 에메랄드 사원 가고, 새벽 사원 갑니다.“
투어일정.jpg 투어 일정

차는 담넌사두억 수상 시장 출구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담넌사두억 수상시장은 강 위에 지은 수상가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로 이루어진 시장이다. 배를 타고 들어가면, 물길 사이사이로 자연과 어우러진 수상가옥들이 보인다. 화창한 날이었다. 관광객들이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서거나,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거나, 안내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강한 불안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해야 하나?

수상시장2.jpg
수상시장3.jpg
수상시장1.jpg
수상시장 초입

4.


훔볼트는 한번도 그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임무가 모호한 적이 없었다. 그의 임무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남아메리카로 배를 타고 갈 때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그가 조사한 자료들은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들이었다. 그는 노새에 육분의, 복각계, 자기 변화를 측량하기 위한 독, 온도계, 소쉬르의 습도계를 싣고가서, 이 모든 것을 한껏 활용했다. 훔볼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밀림에 들어서자 고도계는 고도가 높아진다고 알려주었다. 이곳의 나무줄기들은 생김새가 특이했다. 가지가 달린 목초처럼 생긴 윤생의 식물은 열대의 덩굴식물처럼 2,3미터 높이로 올라가면 화환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람에 흔들리며 우리의 길을 가로막았다. 오후 3시쯤 우리는 케테페라는 이름의 작은 평원에 이르렀다. 해발 약 190 투아즈였다. 샘물 옆에는 오두막 몇 채가 서 있었는데, 인디언들은 이 새물이 민물이며 깨끗하다고 말했다. 우리 입맛에도 달았다. 기온은 섭씨 28.7도 였는데, 물의 온도는 22.5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방콕에는 모든 것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모든 것이 이미 측정되어 있었다. 방콕 남서쪽에 위치한 수상시장은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100킬로미터 정도에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시장은 태국의 왕 라마 6세가 1868년에 담넌사두억 운하를 건설하면서 생겨났다. 그날의 기온은 섭씨 33도였으며, 바람은 서쪽에서 불어왔다. 담넌사두억 운하는 매 클롱 강과 타 친 강을 연결하였으며 이 운하의 길이는 32킬로미터이다. 그저 가이드가 해주는 설명만 잘 따르면 되었다.


훔볼트의 호기심 수준이 내 수준보다 한참 높았던 (그리고 그가 나와는 달리 침대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사실을 찾아 나선 여행자는 구경을 하려는 목적을 가진 여행자에 비해서 여러 가지로 유리한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쓸모가 있다. 쿠마나의 선인장의 둘레가 1.54미터라는 훔볼트의 발견은 선인장이 그렇게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유럽전역의 생물학자들에게는 흥미로웠을 것이다.


쓸모에는 (그것을 인정하는) 청중이 따른다. 훔볼트가 남아메리카의 사실들을 가지고 유럽으로 돌아가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환대했다. 찰스 다윈은 그가 발견한 여러 가지를 외웠다.


5.

수상시장 6.jpg 카페에 앉아 바라 본 수상시장의 모습

그러나 나는 수상가옥을 개조한 한 카페에 앉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위키피디아에는 수상시장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설명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질문을 간신히 짜내어 L에게 물었다.


“왜 굳이 수상시장을 만든 걸까? 물건을 사고 파는 데에 있어 수상시장은 더 불편할 것 같지 않아? 일일이 배를 운전해야하고, 배를 수상가옥에 갖다 대야 하니까 더 수고스러울 것 같은데. 상품거래에서 편리함과 신속함이 강조되는 세태를 생각해보면 큰 이점이 없잖아. 그렇다면 단순히 관광객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야?”


L의 반응은 냉담했다.


“너는 대체 그런 게 왜 궁금한 거야? 그냥 여기 왔으면 즐기고 돌아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그런 것을 궁금해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동행하는 다른 연인은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며, 서로를 향해 웃어주기 바빴고, 사진을 찍기 바빴다. 내가 그런 말을 하자, 그들이 나를 약간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아무런 호기심이 없었고, L도 그랬다. 방금까지는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훔볼트가 살았던 세계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이는 당연한 것이다. 더 이상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없는 듯싶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사실들을 발견한 탐험가들은 우리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거기에 대해 경이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없애버렸다. 훔볼트가 가본 곳을 그보다 먼저 여행한 유럽인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훔볼트는 상상력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상상력에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상시장5.jpg

내가 던졌던 질문 또한 이미 위키피디아가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과거에 태국은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육로가 많이 발전하지 않았고, 육로를 통한 교통이 수로를 통한 교통보다 불편했다. 우리나라와는 조건이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운하가 많이 늘어났고, 잇따라 수상시장이 많이 생겨났다. 요컨대, 수상시장은 해로를 통한 상거래가 육로를 통한 상거래보다 편했던 시절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근대화가 되고 많은 도로와 기찻길이 생기면서 수상시장은 육상시장에 밀려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렇지만 이 담넌사두억 수상시장만은 관광지로 변모함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이르자, 왜 그렇게 가이드가 물건을 많이 살 것을 강요하고, 상인들이 물건 값을 높게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담넌사두억은 대표적인 tourist trap이라고 한다. tourist trap은 관광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곳 다시 말하면 볼 것에 비해 요금이 많이 비싼 관광지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것이 수상시장이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는 시대에 담넌사두억이 살아남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6.


나와 같은 질문을 아무도 하지 않으며,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까닭에는 ‘모든 것이 이미 다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도,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미 나 이전에 수 없이 이 장소를 거쳐 간 탐험가들과 여행객들은 의미가 있는 것과 의미가 없는 것을 구별해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구별은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불변의 진리로 굳어져, 방콕의 중요한 것들은 이미 가치가 확정되어버렸다. 담넌사두억 수상시장은 별 1개, 왕궁은 별 2개, 에메랄드 사원은 별 3개, 농눅빌리지는 별 없음. 애초에 투어가 안내하지 않는 곳은 가볼만한 가치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구별이 반드시 거짓은 아니지만,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투어가 어느 유적지를 데려간다는 것은 이끌려 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권위 있는 평가에 부응할 만한 태도를 보이라고 압력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투어가 데려가지 않는 곳은 기쁨이나 흥미가 보장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별 3개짜리 에메랄드 사원에 들어가기 오래 전부터 나의 반응이 다음과 같은 공식적인 평가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타이에서 가장 훌륭하고 성스러운 사원 중의 하나이다. 대법당 안에는 유명한 에메랄드 불상이 있다. 옥으로 만들어져 에메랄드색을 띠기에 에메랄드 불상이라 불린다. 불상에 혼을 뺏긴 여행객들이 일파만파 늘어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이런 구절이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여행자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훔볼트는 이러한 위협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그가 가본 여행지를 그보다 먼저 간 사람은 없었기에, 그는 아무런 자의식 없이 자신의 관심을 끄는 것을 따라갈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설정한 위계를 따르거나 의도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들의 범주를 만들 수 있었다. 그의 호기심은 누구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그 스스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 호기심의 바늘은 그 나름의 자북을 따랐으며, 결국 식물을 가리켰다.

나 같은 경우는 ‘수상시장 발생의 기원과 원인’ 외에도, 태국 전역에 붙어 있는 큰 간판 사진의 인물이 누구냐는 것, 그리고 왜 그 사람 사진이 그렇게 많이 붙어있는 것인지 등이 궁금했다. 그렇지만 투어 가이드의 손은 에메랄드 사원을 단호하게 가리키며, 내가 그런 것을 궁금해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7.

인생을 마감할 무렵, 남아메리카 여행이 머나먼 과거의 일이 되었을 때, 훔볼트는 자기 연민과 자존심이 뒤섞인 착잡한 심정으로 불평했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식물학, 천문학, 비교해부학 등 너무 많은 일에 호기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을 알고 끌어안고 싶은 욕망을 품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우리는 그런 것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등을 두드려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훔볼트의 여행에 경탄한다고 해서, 가장 매혹적인 도시에서도 이따금씩 그냥 침대에 누워 있다가 다음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가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 여행지를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유순하게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들, 아무 생각 없이 사진만을 열심히 찍는 사람들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마저 물리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상시장1.jpg
수상시장3.jpg
수상시장2.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좌충우돌 태국여행기(3)노스탤지어에 대하여:짜투짝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