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태국여행기(3)노스탤지어에 대하여:짜투짝 시장

태국여행 2일

by 이슬빛

1.

소리 지르는 상인들 사이로 탁 트인 대로가 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 위를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타는 듯한 눈에 사랑의 언어를 서로에게 소곤거리는 연인들이 걷고 있다. 이러한 풍경을 보니,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타오르는 태양, 파란 하늘, 황금 첨탑... 모래를 헤치고 가는 대상의 동양이여!-동양이여! 아시아 여자들의 햇볕에 그을린 올리브 빛 피부여!”

내가 이 소설 구절을 떠올린 곳은 바로 짜투짝 시장. 방콕에 온지 이틀째 되는 날 나는 짜투짝 시장을 걷고 있었다. 이 시장은 방콕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시장으로, 모든 점포들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가장 크다는 명성에 아깝지 않게 시장은 없는 것 없이 다양한 물건을 판매한다. 이미 L은 에코백과 손지갑을 샀다. 미로처럼 연결된 길과 길 사이 곳곳에는 골목이 있었다. 우리는 태양이 정면으로 내리쬐는 대로에서 햇볕을 피해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다시 태양이 작열하는 곳으로 나가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러던 찰나에 L과 나는 선글라스를 파는 점포를 발견했다. 태양빛에 눈이라도 보호하자는 생각에 매장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점포 주인은 50대 정도로 보이는 나이 든 여성이었다. 아줌마는 우리에게 어울릴 법한 선글라스를 이것저것 골라주었다. 이런 곳에서 물건을 잘사는 법은 흥정을 하는 것이라고,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어 어떻게든 가격을 깎아보려고 했다. 아줌마는 처음에는 370바트를 부르더니, 나중에는 마지못해 선글라스를 300바트에 팔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웃을 때 눈가의 주름이 깊게 패였다. 요 근래에는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인간적인 정이라 생각되었다.

상인의 웃음

예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지방에서 열리는 5일장을 찾아가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찾아가고 싶어도 찾아갈 수 없다. 몇 안되는 시장들마저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그 빈자리를 편의점, 백화점,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채우고 있다. 자본의 논리를 철저하게 따른 결과가 일상에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을지는 몰라도, 많은 것을 잃게 하기도 했다. 편의점,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거래 방식은 익명성에 기반 한 기계적인 계산만 반복한다. 편의점 알바는 내가 누구인지도 관심 같지도 않고, 그냥 주어진 계산만 끝내기에 바쁘다. 애당초에 관심이 없으니, 단골이라는 개념이 있을리도 없다. 정말이지, 편의점 알바도 손님에 대해 알 바 아니고, 손님도 편의점 알바에 대해 알 바 아니다.


옛날의 시장 같은 경우 친밀함을 기반으로 하여 상인과 손님들이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렇게 형성된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필요한 정보만을 주고받는 요즘의 거래방식은 현대인들이 타인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잘 보여준다. 기껏해야 물건 가격은 얼마인지, 사은품이 있는지 없는지, 잔돈은 얼마인지 따위의 사무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다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시장이 많았다. 그때는 동네마다 지역의 이름을 딴 시장이 하나씩 있었다. 동네 시장은 사람들의 주요한 사회적 관계가 맺어지는 곳이었다. 아줌마들은 집에 쌀이나 반찬거리, 국거리, 먹을거리 등이 다 동나지 않았더라도 시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시장 상인들 또는 자기처럼 마실 나온 이웃과 살아가는 이야기, 걱정거리, 사소한 일상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인간적인 정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나는 이러한 과거의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웃을 때 눈가의 주름이 깊게 패이는 인간적인 웃음을 가진 상인에게서 물건을 사고 싶었다. 그러나 과거는 이미 돌이킬 수 없고 지나가 버린 것이다. 나는 고향의 과거 모습을 갈망했으나 그것은 당연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고, 대신 그것을 태국에서 충족시킴으로서 위안을 얻었다.


2.

사람들은 때때로 어떤 특정한 시간이나 상황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은 지금 사라진 것, 겪었던 것 그리고 잃어버린 것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이러한 상실감은 노스탤지어를 동반한다. 현재가 불만족스러울수록 사라져버린 좋았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이러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인 노스탤지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nostos(귀향)+algos이다. 1688넌 스위스 의사였던 요하네스 호퍼가 전쟁터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무기력에 빠져있는 병사들을 관찰하며 고안한 단어이다. 호퍼는 노스탤지어를 “악마적 원인에 의한 신경질적 질환”으로 정희했다. 이런 부정적인 경해는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노스탤지어가 현실도피적이며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 하지만, 이는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최신 심리학 연구결과는 이와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스탤지어는 우울증이나 상실감을 극복할 힘을 주는 긍정적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노스탤지어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현재의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발동하는 심리적 작용이라는 점에 심리학자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노스탤지어는 마냥 행복한 감정이 아니며 씁쓸한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효과를 압도한다.”
“노스탤지어는 현재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미래에 맞서게 하는 힘을 주는 원천이다. 노스탤지어는 인생의 커다란 변화의 과정을 견디어 낼 힘을 준다.”
“노스탤지어는 핵심적인 실존적 기능을 수행한다.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고 삶에 의미가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노스탤지어는 과거와 현재의 괴리를 고통스럽게 인지시켜준다는 일반적 통념과 달리, 오히려 자아의 연속성을 강화해준다.”


사람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나 현재는 상당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과거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너의 가능성을 실현해!’라며 미래를 생각하는 건 부추기는 반면, 과거에 대해서 생각하면 흔히들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여기에는 나름의 과학적 근거가 있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수렵채집생활에서 벗어나 정착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는 문명의 태동 단계에서부터 인간에게 미래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한다.


“수렵채집인들은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데다 먹을거리나 소유물을 저장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중략) 농부들은 언제나 미래를 의식하고 그에 맞춰서 일해야 했다. 농업경제의 생산 사이클은 계절을 기반으로 했다. 몇 개월에 결쳐 경작을 하고 나면 짧고 뚜렷한 수확기가 뒤따랐다. 풍성한 수확을 모두 끝마친 날 밤 농부들은 마음껏 축하를 할 수 있었지만, 그로부터 한두 주일 이내에 다시 새벽에 일어나 들판에서 온종일 일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식량을 오늘, 다음 주, 다음 달 먹을 것까지 충분했지만 이들은 다음해와 그다음 해까지 걱정해야 했다.”


어찌되었든 사람들이 미래를 많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사람들이 미래를 많이 생각하는 것에는 미래를 걱정하는 까닭도 있지만, 미래에 대해 뭔가를 해서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까닭도 있다. 스티븐 코비 또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는 어떤가. 현재에 관한 명언은 정말 많아서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다”부터 시작해서 카르페디엠(carpe diem)에 이르기까지.


그렇다면 과거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우리는 과거의 방식을 경시하고 묻어버릴 것이 아니라, 좀 더 추억해야 한다.노스탤지어의 긍정적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니체 또한 과거를 추억하는 여행을 제안한다. 이는 우리의 사회와 정체성들이 과거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과정에서 연속성과 소속감을 확인하게 되는 여행이다. 이런 여행을 하는 사람은 "덧없고 개별적인 존재를 넘어선 시야를 가지게 되며, 자신이 자신의 집, 종족, 도시의 정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오래된 건물들을 보며 "자신이 완전히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존재가 아니라, 과거로부터의 상속자이자 꽃이자 열매로서 성장해 왔으며, 따라서 자신의 존재는 용서받을 수 있고 또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세상 그 어떤 것도 과거에 실현된 인간이 성취한 의미와 가치를 빼앗아갈 수 없다. 시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에서 시장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의 기억 속에 각인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과거”를 훌륭하게 보존해내고 있는 짜투짝 시장을 한번 찾아가보라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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