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4장-식량생산의 기원
근대의 가장 큰 인구이동: 유럽민의 신세계 이주(1492년 콜럼버스의 카리브해 섬 발견). 아메리카 원주민의 정복. (이전의 이동은 미미하거나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음)
1532년 11월 16일 잉카황제 아타우알파와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충돌(페루의 고산도시 카하마르카에서)
아타우알파의 생포, 처형.(수백만의 원주민 대 168명의 유럽인) 원주민들의 참패.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원인:
(1) 칼, 총
스페인의 무기는 쇠칼을 비롯한 무기. 갑옷, 총, 말. 아타우알파의 군대는 돌, 청동기, 나무곤봉, 갈고리 막대. 이러한 무기의 불균형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대결에서 결정적. 유럽정복에 오랫동안 저항할 수 있었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말과 총을 구하여 능숙하게 다뤘던 부족. 이후 파시로의 다른 잉카족과의 전투. 코르테스의 아즈텍 문명정복 등도 수십명의 유럽 기마병이 수천명의 인디언을 참패시키는 대살육.
피사로가 주로 사용한 무기는 쇠칼, 창, 단검 등. 총의 역할은 미미
1700년대 이르러 유럽인침략자의 주요무기는 칼에서 총으로 이동.
말과 기마병이 전투에서 낸 효과.
흑해 북쪽 연안 스텝 지대에서 BC4000년 경 가축화. 6000년 동안 위력을 발휘.
기병대의 군사적 우월성이 종말을 맞이한 것은 제 1차 세계대전.
(2)전염병
피사로의 공격 당시 잉카족은 내전에 휩싸여 있었고, 그 내전의 원인은 천연두였다. 그 내전으로 인해 잉카족은 통일된 대응을 하지 못함.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 티푸스, 흑사병(선 페스트) 등 유럽 고유의 전염병은 면역성이 없는 다른 대륙의 많은 민족을 몰살시킴으로서 유럽 정복에 큰 역할.
전염병으로 인한 원주민들의 전멸: 미시시피 추장사회(1492~160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원주민 산족(1713)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1788년)
피지섬(1806년)
통가, 하와이 제도에도 영향을 미침.
(3)배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정복하고 아타우알파가 스페인을 정복하지 못한 원인
유럽의 해양기술로 만들어진 배가 있었고, 아타우알파에게는 그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해외로 팽창하지 못함.
(4)문자
잉카제국에는 문자가 없었음. 스페인에는 문자가 있었다.
문자로 정보기록, 항해에 대한 상세한 지식 제공.
(5)아타우알파는 왜 함정으로 뛰어들었을까?
스페인이나 그들의 군사력, 의도에 대한 정보를 갖지 못함.
스페인은 1510년부터 파나마를 정복했지만 1527년 페루 해안에 나타날 때까지 스페인에 대한 정보 전무. 아타우알파가 잡힌 후 휘하 장군 찰쿠치마를 기만하여 스페인에 투항하도록 함. 이는 잉카족 패망의 전환점.
아즈텍 황제 몬테수마는 코르테스를 신으로 착각하여 그와 그 병력을 테노치티틀란으로 들임. 그 결과 아즈텍 제국 정복.
그들이 계산 착오를 저지른 것은 구세계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갖지 못했기 때문. 피사로의 작전은 코르테스의 작전을 모방한 것.
→앞으로 이 책은 그러한 이점(총, 균, 쇠)가 신세계보다 유럽에 편중된 이유를 다룰 것.
식량생산은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
농경민이 된 시기와 지리적 차이는 각 민족의 운명을 결정한 주요 원인.
700만년 전 현생 인류가 대형 유인원에서 분기한 후 대부분은 사냥, 채집으로 보냈고 야생 동식물을 가축화 작물화하여 식량생산을 한 지는 약 11000년 전부터.
다른 민족, 지역을 정복하는데 있어서의 이점과 식량 생산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
1)소비할 수 있는 열량이 많아진다면 사람들도 많아진다.
야생 동식물 중 인간이 사냥, 채집할 가치가 있는 종은 소수. 대부분 종은 음식으로서 쓸모가 없다. (소화가 안된다. 독이 있다. 영양가가 낮다. 까서 먹기가 따분하다. 채집하기 어렵다. 사냥하기 위험하다.) 먹을 수 있는 동물종과 식물종을 일정한 넓이의 땅에서 90%이상 키운다면 훨씬 많은 사람이 그 땅에 의존하며 살 수 있다.
→첫번째 군사적 이점(동원할 수 있는 사람 수가 많아진다.)
가축이 먹거리를 제공하는 방식: 고기(소, 돼지, 양, 닭), 젖, 비료(소, 양, 염소, 말, 순록, 물소, 야크, 낙타, 가축의 분뇨를 비료로 사용하여 수확량을 증대시킨다. 불을 피우기 위한 연로로 사용)를 주고 쟁기를 끄는 것.
*쟁기: 농경하기 어려운 땅을 가축의 힘을 이용하여 경작. 소, 말, 물소, 발리소, 야크와 소의 잡종→BC 5000년 경에는 경작지가 흙이 무른 곳에 국한. 그러다가 1000년이 지난 후 소가 끄는 쟁기가 사용되면서 흙이 단단한 곳까지 경작지가 확대. 남아메리카도 동물이 끄는 쟁기가 도입된 19세기에야 산지에서 농경 시작.
→가축화, 농경화로 인구밀도가 조밀해지는 것은 직접적 효과.
간접적 효과는 정주형 생활이 가져오는 것. →정착생활을 하면 산아 간격이 단축(수렵채집민은 이동이 잦음. 먼저 태어난 아이가 걸을 때까지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음.)
유랑생활 VS 정주형 생활
유랑생활-수유기의 무월경, 금욕, 유아살해, 낙태 등을 통해 4년 정도의 터울 유지
정주형 생활-산아간격 2년
잉여생산 저장. 식량을 생산하지 않는 기능전문가 집단(왕, 관료 등 엘리트 집단)이 나타남.
대규모농업사회- 전쟁에 유능한 사회.
저장된 식량으로 사제, 무기숙련공, 필경사를 먹여 살림.
가축과 농작물로부터 섬유도 얻고, 그릇도 얻음(호리병박)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육상운송수단으로 이용(말, 당나귀, 야크, 순록, 낙타, 소, 개, 라마)
정복전쟁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한 가축화한 동물은 유라시아의 말
BC 1800년경 말에 멍에를 씌워 만든 전차는 근동, 지중해 연안, 중국 등 전쟁양상을 획기적으로 바꿈(ex. BC 1674년 힉소스인이 말이 없던 이집트를 정복)
안장과 등자가 발명되었을 때 훈족이 로마제국과 그 뒤를 이은 국가 위협.
AD 13C~14C. 몽골이 아시아와 러시아 정복. 이후 1차세계대전 때 트럭과 탱크가 도입되면서 말 대체.
말을 이용한 민족이 막강한 군사적 이점.
*정복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병원균.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은 동물들에 퍼져 있던 유사한 조상 병원균.
동물을 가축화한 사람은 제일 먼저 희생되었지만 곧 저항력을 진화시킴.
그들이 그 병원균에 노출된 적이 없었던 사람과 접촉하면 유행병이 돌아 유럽인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평양 섬 등 원주민을 정복할 때 결정적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