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노트>총,균,쇠 5~7장

by 이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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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인류역사가 갈라놓은 유산자와 무산자.



BC 4000년대에 현대의 여러 곡창지대(미국지역전부, 영국, 프랑스 많은 지역, 인도네시아, 적도 이남 아프리카 전지역)에서 식량생산이 없었고, 오래된 농업 발원지들은 오늘날 다소 건조하거나 생태학적으로 부족한 곳(이라크, 이란, 멕시코, 안데스 일대, 중국 일부, 아프리카 사헬 지대)



*왜 농업한계선에 가까운 듯 한 지역에서 농업 생산이 제일 먼저 시작했고 오늘날 가장 비옥한 농경지나 목축지에서는 오히려 늦어졌을까?



*직접 그 지역의 동식물을 가축화, 작물화함으로써 독립적으로 식량생산이 발전한 곳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농작물이나 가축을 수입. 수입할 당시부터 식량생산에 적합한 곳이었는데도 스스로 농경을 하지 않은 이유? 식량생산을 수입한 시기가 지역마다 다른 이유는?



(1)식량생산이 발원한 지역 및 시기


-가축화, 작물화된 동식물은 야생종과 형태학적으로 다름.


식량생산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시작된 지역-초승달지대의 서남아시아


-중국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강 유역


-미국 동부


(증거가 확실하고 세부적인 것까지 검토된 곳들임)


-아프리카사헬지대:소의 목축이 농경보다 먼저시작


-열대서아프리카:사헬의 농작물이 도입?


-에티오피아:서남아시아에서 도입?


-뉴기니: 어떤 농작물인지 불분명.


(독립적으로 가축화된 건지 초승달지대에서 도입된 건지 불확실한 지역들)


-서남아시아는 독립적으로 식량을 생산한 지역 중 가장 확실한 연대. 가장 오래된 곳(작물화: BC 8500년경, 가축화: BC 8000년)


-중국: 서남아시아와 비슷.


-미국동부: 6000년 정도 뒤.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사헬지대, 열대서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뉴기니는 확실한 연대가 측정된 유적지 수가 너무 적음.


-다른 곳(서남아시아)에서 가축화, 작물화한 동식물에 의존하여 식량생산을 창시한 곳.


이후 그 지역 야생식물을 작물화: 유럽 서부와 중부 (BC6000년~3500년)


서남아시아로부터 농작물과 동물을 도입한 후 적어도 한 종 식물을 작물화 (귀리, 양귀비-지중해 서부 연안에서만)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서남아시아에서 이란을 거쳐 BC7000년~6000년


밀, 보리


토착종 혹등소나 참깨가 나타난 것은 그 이후


이집트:BC6000~5000


이후 무화과와 금방동사니 작물화



2)창시작물이 들어와서 식량생산이 시작된 지역에서 그 지역 수렵채집인이 이웃 농경민으로부터 들여와 농경민이 되었을까? 농경민이 쳐들어와서 인구가 늘어나 수렵민을 죽이거나 쫓아냈을까?


이집트는 전자. 유럽대서양 연안, 미국서남부,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 지역 동식물이 가축화, 작물화된 증거 없음. 그 지역 인구가 교체된 증거도 없기 때문.


도입과정이 근대문자를 가진 유럽인이므로 책에 기록, 살해되거나 쫓겨나 유럽인으로 교체된 지역들-캘리포니아, 북아메리카서북부 태평양 연안, 아르헨티나 팜파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시베리아는 후자.


3)외부가축작물이 들어와 식량생산이 시작되고 대량으로 인구가 교체되는 현상은 선사시대에도 많은 지역에서 나타남. 문자로 된 기록은 없으므로 고고학적 증거(골격이 다르고, 토기가 발굴되는 경우)


-남중국에서 필리핀, 인도네시아로 진출(오스트로네시아인)


-적도이남아프리카로 반투족 팽창


-유럽 서남부 중부: 그리스인과 독일인의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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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식량생산민과 수렵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수렵채집민은 왜 식량생산을 했을까? 서남아시아는 왜 BC 18500년이 아니라 BC 8500년에 식량생산을 했을까? 수렵채집민의 생활이 고달프고 야만스러운 불리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당연하게 여긴다면 그건 착각.


식량생산이 육체노동의 감소, 안락증대, 굶주림으로부터 자유, 평균수명 증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1세계 사람들뿐, 식량생산자 대부분은 수렵채집민보다 잘 산다고 할 수 없고 시간효율성 면에서 노동시간이 짧지도 않다. 체격이나 영양상태도 좋지 않다. 그럼 왜 그들은 그 길을 선택했을까? 그건 선택이 아니라 그냥 ‘진화된 것.’ (7장에서 자세히 이야기)



따라서 왜 식량생산이 진화했는지, 어떤 곳에서는 진화하고 진화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함.


-유랑형의 수렵채집민과 정주형의 식량생산자가 명확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수렵채집민 중에서는 식량생산자가 아니면서 정주형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았고 이동생활을 하는 식량생산자도 많음. (뉴기니 호수 대평원의 현대 유랑민들)


즉, 수렵채집민은 유랑형 생활, 식량생산자는 정주형 생활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함. 수렵채집에서 식량생산으로 전환하는 것이 유랑형 생활에서 정주형 생활로 전환하는 것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님. 또 하나의 이분법은 식량생산자는 토지를 잘 관리하고 수렵채집민은 단순히 야생산물을 거두기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실제로는 토지를 잘 관리하는 수렵채집민도 있음(뉴기니 사람들: 사고야자나 마운틴 판다누스를 작물화 하지는 않지만 야생식물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경쟁나무를 없애거나 수로를 청소하고 가지도 쳐준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도 참마나 종자식물을 작물화하지 않고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땅에 불을 지르거나 덩이줄기를 정리하거나 토양을 파헤쳐 공기가 통하게 했다.)


-식량생산 초기단계에서는 야생먹거리와 경직된 농작물이 함께 식단에 오름. 전적인 채집활동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는 데에는 수천년의 생활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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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야생먹거리의 작물화



1)야생식물은 어떻게 작물화되었을까? 왜 어떤 식물은 작물화되고 어떤 식물은 작물화되지 못할까? 왜 그 시기가 다를까?


-식물관점에서의 작물화


인간은 식물을 작물화한 많은 동물 종 중 하나. 식물도 동물처럼 자신의 유전자를 전할 수 있도록 자손을 퍼뜨려야 함. 그 매개가 바로 동물.


많은 식물은 씨앗을 맛좋은 과육으로 감싸 동물로 하여금 먹게 하고 그 종자가 소화되지 않게 해 뱉어내거나 배설할 수 있게 함. 많은 야생식물 씨앗이 배설물 속에서 발아.


예)딸기: 씨가 여물지 않을 때 과육은 파랗고, 시고, 단단. 씨가 다 익으면 과육도 빨갛고 달고 연해진다. 딸기의 색깔이 변하는 것은 동물(새)를 유혹하는 것.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한 것.


무수한 식물 열매가 특정 동물에게 적응:딸기-새, 도토리-다람쥐, 망고-박쥐. 사초류-개미. ::의식적인 개량이 아니다. 무의식적인 과정. 인간도 무의식적 품종개량자의 실험장.


-무의식적 작물화의 선택 조건들: 최초 농경민이 선택한 야생식물.


1)크기(채집단계에서 큰 열매를 얻으려 하고 그것이 무의식적 작물화 과정을 거친다): 농작물이 야생식물보다 훨씬 큰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이유.


딸기, 완두콩, 사과, 옥수수.


2)쓴맛: 많은 야생종자는 동물이 먹지 못하도록 쓴맛이 나거나 독이 있도록 진화.


과육과 반대로 진화. 쓴맛이 나던 종자가 작물화를 통해 변화한 예.


야생 아몬드가 작물화된 과정.


쓴맛이 나는 아미그달린은 독(시안화물)로 분해.


몇그루 아몬드 나무에서 돌연변이가 생겨 아미그달린을 합성하지 못함. 고대농경민은 쓴맛없는 아몬드 나무를 과수원에 심었을 것.


(아몬드의 작물화 BC 3000년 경)


리마콩, 수박, 감자, 가지, 양배추 등도 야생조상은 쓴맛.


3)그 밖의 기준: 살이 많거나 씨 없는 과일(본래의 기능을 뒤집은 것-바나나). 기름 많은 종자(올리브-BC4000년/참깨,겨자,양귀비,아마-고대/해바라기,잇꽃,목화-근대). 긴 섬유(목화)


-돌연변이 종자의 유용성과 자연선택.


많은 식물들이 종자를 분산시키기 위한(인간들이 효율적으로 종자를 채취하지 못하게 하는) 특수기법을 갖고 있지만 그러한 기법을 갖추지 못한 돌연변이 종자만이 수확되어 농작물의 선조가 되었을 것.


ex)완두콩:꼬투리 속에 들어있는 씨앗이 발아하기 위해서는 꼬투리가 터져야 함. 꼬투리 속에 갇힌 돌연변이가 인간에게 수확되고 돌연변이가 선택되면서 작물화. 렌즈콩, 아마, 양귀비 등도 이런 과정.


야생밀, 야생보리: 줄기 꼭대기에서 자라 줄기가 흩어지면서 종자가 땅에 떨어져 번식. 돌연변이를 일으킨 유전자의 줄기가 흩어지지 못하고 줄기 끝에 매달려 있게 되었고 인간이 손쉽게 수확하게 되고 그로부터 작물화. 줄기가 흩어지지 않은 야생 밀과 보리를 선택한 것은 인간에 의해 개량된 최초의 작물. 초승달지대에서 농업이 시작된 전환점.


한해살이 식물들은 발아억제물을 이용하여 위험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진화. 종자를 두꺼운 껍질이나 외피로 감싸는 것. 그런 야생식물은 밀, 보리, 완두콩, 아마, 해바라기 등. 농경민은 이런 야생식물에 물을 주고 땅을 갈아 종자들이 빨리 발아하도록 함. 이런 식물 중 발아억제물이 없는 돌연변이 개체가 있었음. 처음에는 그런 돌연변이를 식별하지 못했을테지만 뿌리고 자라고 거두는 순환과정 속에서 돌연변이 선택.


돌연변이 개체를 어떻게 정상적인 식물과 교배하지 않고 보존했을까?


무성생식이나 자화수분하는 자웅동주는 돌연변이도 자동 보존.


그러나 대부분 야생식물은 그렇지 않다. 불화합성 자웅동주식물이거나 자웅이주식물. 자웅동주여도 자화수분하지 못하여 다른 자웅동주식물과 교배하여야 하는 식물. 돌연변이로 자화수분이 가능하게 된다. ex)서양자두, 복숭아, 사과, 살구, 체리


*농경민이 개체를 선택할 때는 여러 제각기 다른 특성을 기준으로 선택.


*하나의 식물종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다양하게 선택되어 전혀 달라보이는 농작물이 생겨남. (비트-잎(근대)->뿌리(비트)->사탕무, 양배추->잎(양배추)->줄기(콜라버)->새싹(싹눈양배추)->꽃봉오리->브로콜리)


*식물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로 변형이 생기는 경우도 많음->자연선택.(자연조건 하에서 어떤 종의 일부 개체들이 더 잘 번식하고 성공한다.)


농경이 식물들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개체의 유형도 달라진다.


-고대세계의 주요농작물과 작물화 유형


서남아시아에서 작물화되었던 여러 농작물들의 규칙적인 개발순서


1단계. 10000년 전(BC8000년) 밀, 보리, 완두콩: 먹을 수 있었고, 수확량이 많고, 재배 용이.


2단계. BC4000년. 올리브, 무화과, 대추야자, 석류, 포도 등 과실수와 견과수.


:3년~10년 정도 지나야 수확 가능->촌락생활이 완전히 정착되었다는 것.


3단계. 재배하기 어려웠던 과실수: 사과, 배, 서양자두, 체리-꺾꽂이X, 종자X 접목법으로 재배, 타화수분.


4단계. 잡초에서 출발한 농작물: 호밀, 귀리, 순무, 무, 비트, 리크, 양상추.


*다른 세계도 이와 유사한 순서.


밀보리(곡류) 완두콩, 렌즈콩(콩류)-> 곡류에서 부족한 단백질 보충.


세계 주요농작물 12종 중 5종이 곡류(밀, 옥수수, 벼, 보리, 수수)


세계 많은 지역에서 곡류와 콩류를 결합해 식량 생산을 한 이유.


중국: 벼와 기장류, 메주. 중앙아메리카: 옥수수와 완두류. 안데스: 키노아, 누에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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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수수, 아프리카벼, 진주기장, 광저기, 그라운드너트와의 결합



안데스, 아마존/ 서아프리카, 사헬 / 인도 / 에티오피아 / 미국 동부 / 뉴기니 지역에서 주식은 곡류가 아닌 뿌리 작물. 섬유 작물이 없었던 지역.


-인위선택은 자연선택을 설명할 수 있는 원리.


로마 시대 주요 농작물이 세계 어느 지역에선가 재배.


그럼 식량으로서 가치가 충분한데도 끝내 작물화하지 못한 야생식물.


떡갈나무의 도토리: 느린 성장 속도. (10년 이상) 다람쥐에 맞도록 진화, 쓴 맛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여럿. 딸기와 나무딸기가 작물화 되는데(중세) 늦은 이유: 개똥지빠귀와 경쟁하기 어려웠음. 보호망과 온실이 개발되면서 개똥지빠귀를 물리칠 수 있었다.


야생식물이 농작물로 진화한 과정은 무의식적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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