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억해
아직 유치원에 다니던 꼬마 시절, 집에 곰인형이 하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하나는 고미, 하나는 고마. 고미는 여자 곰, 고마는 남자 곰이었고, 대여섯살 난 아이가 품에 안기 딱 좋은 크기였다.
우리는 그 인형을 참 좋아했다. 나는 고미를, 언니는 고마를 매일 끼고 살았다. 고미가 입고 있던 주황색 옷, 고마가 입고 있던 푸른색 옷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지만, 여전히 고미에게는 작은 리본이 달려 있어 고마와 구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딜 가든 고미와 고마를 데리고 다녔다. 나들이를 갈 때도 곰인형을 옆자리에 앉혔고, 잠을 잘 때도 옆자리에 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고미가 사라졌다.
어느 날, 이라고 할 뿐, 누구도 정확히 고미가 언제 사라진 건지 알지 못했다. 고미는 그냥 어느 날 사라져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의식도 못 하는 새에. 나는 남은 고마를 보다가 문득 고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황색 리본을 달고 있던 고미는 집 안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린 나는 꽤나 큰 상실감에 휩싸였지만 그 마음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새로 생긴 인형들도 많았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고미는 어딘가에 잘 있을 거야, 하고 말해주었고, 무엇보다 고마가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고미를 잊지 않은 척 잊은 채 지냈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다. 나와 언니는 고마를 함께 데리고 놀았지만, 잠을 잘 때 고마를 안고자는 건 항상 언니였다. 고마는 내가 아닌 언니의 단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사실 남아있던 곰인형이 고마가 아닌 리본이 떨어진 고미였음을 알게 되었다. 알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우연히 인형의 귀 부분을 살펴보다가 리본이 떨어진 자국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나에게는 없는 인형이었던 고미가 돌아오자 반가운 한편 당황스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고마인 줄 알고 있었던 인형이 사실은 고미였다고? 이 인형이 내가 항상 끼고 자던 고미였다고? 무언가 낯설었다. 그 순간 그 인형은 고미로서도, 고마로서도 내게서 멀어진 것 같았다.
그럼 고마는 어디로 간 걸까. 고마를 발견한 것은 그리고 나서도 시간이 지난 후였다. 고마는 창문 뒤 좁은 틈새 사이에 끼어 있었다. 먼지가 듬뿍 쌓인 채로 누워 있는 고마를 보며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때 들었던 것은 고미가 사라진 걸 알았을 때와도, 고마가 사실은 고미인 걸 알았을 때와도 다른 감정이었다. 나는 슬프고 무섭고 두려웠다.
왜 난 고마를 보며 무서움을 느꼈던 걸까?
그 인형들에 대해 생각할 때면, 항상 내가 나도 모르게 잊고 살아가는 다른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반대로 나도 모르게 잊거나 외면하고 있던 어떤 것들을 생각할 때도, 창문 사이에 푹 쳐박혀 있던 고마의 모습이 언뜻 언뜻 스쳐지나가곤 한다. 잘 지내겠지, 하는 말에 가린 채 먼지 속에 누워 있던 고마. 그 속에 박혀 있었던 것은 내가 잊은 존재에 대한 미안함과 무엇이든 그렇게 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나는 왜 그 인형들을 잊어버렸던 걸까?
항상 붙어지내던 고미가 없어졌음에도 나는 괜찮았다. 분명히 괜찮았고, 곧 잊어버렸다. 그건 그렇게 하는 편이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라지거나 떠나버린 모든 것을 찾고, 공허해하고, 아쉬워하고, 서글퍼하기엔 너무 지치니까.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란 걸 알게 된 건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였다. 한때 내게 정말 중요한 존재였던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것을 미루고, 누군가 지금 혼자일 수 있음을 모른 척하고, 누군가의 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어 버리고, 어떤 소중한 기억은 점점 흐릿해져서 누구와의 것인지도 불분명해지곤 한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 창틀 사이의 고마가 떠오른다. 벌떡 일어나 창틀 위로 올라오지 않고, 내가 찾아낼 때까지 눈만 동그랗게 뜬 채 하늘을 보고 있던 고마가 말이다.
어린 내가 바라보던 고마와 고미는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면 창틀 혹은 그 너머까지 찾아보길. 눈치챘다면 바로 손을 내밀길. 관계의 회복을 시간에만 미루지 말길. 어떤 자리를 채우는 누군가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기억하길. 이는 고마와 고미가 내게 주는 조언이자 내가 나에게 바라는 소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