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군 입대 날, 나는 마치 4박 5일 캠프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별다른 감흥 없이 들어간 훈련소. 첫날, 입고 갔던 옷가지와 서툰 편지 한 통을 박스에 담아 집으로 보냈다. 군복과 군화를 지급받고 애지중지하던 담배를 압수당하며, 나는 비로소 내가 '군인'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논산에서의 훈련소 생활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평생 63kg을 넘겨본 적 없던 마른 몸이었는데, 규칙적인 생활 덕분인지 5주 만에 70kg까지 몸무게가 늘었다. 몸이 건강해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5월의 낮더위와 밤추위를 견디며 보낸 시간들, 그리고 주말마다 초코파이와 단것을 먹기 위해 기다렸던 종교 행사는 고된 훈련 속 유일한 낙이었다.
훈련소 이후 대전으로 이동해 몇 주간의 보직 교육을 받았다. 그때 처음 이용해 본 PX의 맛과, 몇 주 만에 다시 피우게 된 담배 한 대의 해방감은 지금도 잊지 못할 '좋았던' 기억이다. 하지만 자대 배치를 앞두고 문득 밀려오는 집을 향한 그리움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마치 말년 병장이라도 된 듯 기세등등하게 교육장을 떠나 자대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원도 어딘가로 향하던 길, 잠시 들렀던 어느 휴게소의 풍경이 너무 인상 깊어 전역 후에도 몇 번이나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도착한 자대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근무 체계는 체력의 한계를 시험했다. 게다가 전입 일주일 만에 맞선임에게 욕을 하는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내 군 생활은 시작부터 제대로 꼬여버렸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전우들과 돈독해졌기에 망정이지,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100일 휴가를 하루 앞두고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다. 내 생애 첫 휴가는 그렇게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강원도의 겨울은 부산 출신인 나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사람이 누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였고, 담배 한 대 피우는 짧은 시간 동안 떠다 놓은 물이 꽁꽁 얼어버렸다. 4월까지 그치지 않던 눈을 보며, 처음 눈을 보았을 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할 수 있는 건 운동뿐이었다. 지독하게도 흐르지 않던 시간, 고되면서도 즐거웠던 전우들과의 하루하루. 요즘도 가끔 유튜브에서 '푸른거탑'을 보며 그때를 추억하곤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고민 없이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전역 후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들을 되돌리고 싶다는 후회가 밀려올 만큼, 그때의 나는 참 단단하고 건강했다.